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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우공이 전하는 세상 사는 이야기

한 우공이 전하는 세상 사는 이야기

정영배 (지은이)
  |  
전남대학교출판부
2015-01-20
  |  
12,0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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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우공이 전하는 세상 사는 이야기

책 정보

· 제목 : 한 우공이 전하는 세상 사는 이야기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68491726
· 쪽수 : 254쪽

책 소개

정영배의 아홉번째 수필집. 1부 '지독지정', 2부 '관수유술 심관기란', 3부 '우답불파', 4부 '인일시지분 면백일지우', 5부 '수오지심', 6부 '여행은 독서요 교육이다'로 구성되었다.

목차

서언 5
애독자 여러분! 13
제1부 지독지정 15
제2부 관수유술(觀水有術) 심관기란(心觀其瀾) 53
제3부 우답불파(牛踏不破) 99
제4부 인일시지분(忍一時之忿) 면백일지우(免百日之憂) 133
제5부 수오지심(羞惡之心) 155
제6부 여행은 독서요 교육이다 185

저자소개

정영배 (지은이)    정보 더보기
약력 전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 전남대학교 대학원 졸 전 여수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미국 브리감영대학교 연구교수 전 한국 영어영문학회 회원 여수대학교 교무처장 역임 여수대학교 학생처장 역임 여수대학교 학생생활지도 연구소장 역임 여수대학교 도서관장 역임 人間時代 학술 및 편집고문 文藝思潮 수필부문 신인상 수상 文藝思潮 문인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번역물 놋활 (The Bronze Bow) 붉은 조랑말 (The Red Pony) 수필집 晩秋閑想 아침이 오는 소리 인생 연가(人生戀歌) 회오(悔悟)의 향기 사랑의 현자(賢者)들 삶 속에 흐르는 행복의 메아리 바르게 산 자들이 누리는 幸福 향기 그윽한 인생 모년(暮年) 한 우공(遇公)이 전하는 세상 사는 이야기 여수지부 45년 사(황원(荒原)에서 피워 올린 아름다운 꽃) 삶 속에 흐르는 생명의 소리 눈 속에 봄을 기다리며 노을도 붉게 타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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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머리말]

이른 아침이면 밖에 나가 1시간여 동안 공원의 트랙을 돌다 온다. 이곳에 나오는 사람들은 늘 나오는 사람들이고, 이들과 같이 어울리다 보니 자연 세상 사는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 모두가 평범한 사람들이고, 세상을 바르고 선하게 살려는 사람들이다. 사철의 변화에도 상관하지 않고, 일편단심(一片丹心) 변함없이 이렇게 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살을 에는 한동(寒凍)에도 하루의 시작을 이렇게 하며 사니, 이제는 거의 습관처럼 굳어져 버렸다. 몸이 아파 드러눕게 되면 우선은 가족들에게 미안한지라 이 일이 힘든 일인데도 열심히 하며 산다.
어쩌다가 하루라도 빠지게 되면 무슨 변고라도 있나 하고 서로 걱정을 한다. 이렇게 서로 걱정을 하는 것은 밤새 연고의 변을 당하기 쉬운 세월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 말년은 축복이 아니고 고통인데도, 힘들다는 내색(內色)은 거의 하지 않는다. 그저 필연의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열심히 산다.
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기 자랑이 좀 있기는 해도, 평범하기 그지없는 세상 사는 이야기들이다. 기죽지 않으려고 좀 잘난 체하기는 해도, 남을 헐뜯거나 해가 되는 이야기는 결코 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 좀 어수룩하게는 보여도, 중심을 세우고 사는지라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사는 사람들이다.
인간 관계는 가까운 사람들 간의 관계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은 아내요 자식들이다. 이들에게 잘하며 살면 힘들다는 말년도 덜 힘들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일이 잘못되어도 먹고 사는 일에 궁해서는 안 된다. 누가 뭐라고 해도 쌀뒤주 단속은 잘해야 하고, 쌀뒤주의 밑바닥을 긁는 소리가 들리면, 가정은 동토(凍土)처럼 얼어붙어 살기 힘든 곳이 된다. 절검(節儉)하며 사는 자는 들어온 복도 아끼며 산다 하거니와(儉者惜福), 열심히 일하며 살고, 절검을 성가지본(成家之本)으로 삼고 사는지라, 말년을 따뜻하게 사는 사람들 같다.
부부가 서로 화합하여 사는 일이 그렇게 쉽지는 않고, 한 가족이 단합하여 사는 일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라. 각자도생(各自圖生)으로 자기의 일을 좇으며 살다 보면 서로를 잊고 살기가 쉽고, 서로의 생각이 다르다 보면 각자의 생각대로 살기가 쉽기 때문이다. 한 가족이 단합하여 살기가 어려운 일인데도 잘하며 살면, 이런 사람을 일러 생활의 달인이라 할 것이다. 그냥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요, 서로 화합하여 바르게 사는 일은 더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생명의 길고 짧음은 하늘에 맡기고, 서로 미워하지 않고, 서로 사랑하며 살면, 우리가 사는 가정은 이 세상에서 가장 살기에 좋은 행복의 요람지가 된다. 남편과 아내는 늘 가정의 중심에 서고, 그들이 서로 화합하여 살면 이를 금실 상화(琴瑟相和)라고 한다. 그러면 자식들도 이를 본받아 부모에게 효도하고(昊天忘極) 형우제공(兄友弟恭)하며 살게 된다. 이게 곧 다름 아닌 지상의 천국이요, 이 일이 이웃으로 이어지면 이웃과도 화합하여 사는 따뜻한 이웃이 된다.
예술은 기쁨과 위로라고 하거니와, 우리 모두는 한 가정을 다스리는 위대한 예술가들이다. 가정이 힘으로 다스려지면 힘이 난무하는 곳이 되지만, 피와 땀으로 열심히 갈고 다듬어 이룩한 가정은 우리에게 큰 기쁨과 위안을 준다.
힘들이지 않고 이룬 것 중에 오래 지속되거나 아름다운 것은 없다. 한 가정을 이루는 데 쉽게 이룬 자는 없고, 모두가 열혈(熱血)을 바쳐 천신만고(千辛萬苦)와 우여곡절(迂餘曲折)의 터널을 수없이 넘으며 산다.
이 세상을 살다 가되 좋은 가정을 남기고 가면, 이보다 더 잘한 일은 없다. 훌륭한 음악가가 좋은 선율(旋律)로 세인(世人)을 감동케 해도 좋은 가정을 이루지 못하고 가면, 결코 잘한 일은 못 된다. 제아무리 위대한 예술가가 불후(不朽)의 작품을 남기고 간다 해도, 좋은 가정을 이루지 못하고 가면, 가장 잘해야 할 일을 잘못하고 가는 것이 된다.
인생의 길은 끊임없이 전진하는 자의 것이다. 내 시대는 끝났다 하여 방 안에 틀어박혀 어두운 생각만 하며 살면, 취생 몽사(醉生夢死)의 생활이나 다를 바가 없다.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할 일을 찾아서 행하고, 무위도식(無爲徒食)의 부끄러운 삶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의 숨길이 가쁘지만 늦추지 말고, 보조(步調)의 폭을 넓히며 살아야 한다.
길은 평탄치 않아 힘들고, 태산 준령이 가로막아 힘들게 해도, 풍파는 언제나 전진하는 자의 벗이 된다. 힘들지 않게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힘들지만 잘 극복하며 사는 데서 기쁨과 행복을 느낀다.
사는 법을 다 알고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막힌 것은 뚫어서 살고, 굽은 것은 바르게 펴서 살고, 험산 준령은 넘어서 정복해야 한다. 되돌아보니 잘못한 일이 너무 많고, 후회 막급할 일이 더 많아 부끄럽지만, 다시 돌아와 배울 수 없는 것은 돌아올 길이 없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아침이 있고, 낮이 있고, 일몰이 있듯이, 인생 또한 생명을 불태워 살다가도, 심지에 기름이 다하면 불은 자연히 꺼진다. 그것은 필연의 이치이고, 오래 살지 못함을 탄할 것이 아니요, 열심히 살지 못함을 탄해야 한다.
인생은 대장정(大長程)이라 할 만큼 길고 긴 여정이다. 내 나이 벌써 산수(傘壽)에 이르렀으니, 아득하다 할 만큼 긴 여정이었지만, 일순(一瞬)으로 흘러가 버렸다. 여생이 얼마일지는 모르지만, 결코 길지는 않을 것이다. 남은 세월이 얼마가 되든, 꾀부리지 않고 열심히 살다가야(不怠爲善) 그간의 잘못을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다.
바르게 사는 길은 험한 길이지만, 그 길보다 더 안전한 길은 없다. 고루 거각(高樓巨閣)이 꼭 좋은 것은 아니고, 초가 누옥(草家陋屋)도 정들여 살면 좋은 것이다. 산해 진미를 즐기다간 큰 탈이 붙지만, 소식(疏食)은 아무리 먹어도 탈이 없다. 평범한 것을 사랑하며 살고, 평범한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를 천상의 선율로 여기며 살아야 한다.
아침에 나가 보면 어제 버린 쓰레기들이 널브러져 있다. 철부지 꼬마들이 놀다 가면서 이렇게 어질러 놓은 것이다. 깨는 자 따로 있고(裂之者不可無), 주워담는 자 따로 있다더니(拾之者不可無), 치우는 자들이 따로 있어 공원은 늘 깨끗하다. 그들이 철이 들 때까지는 감내(堪耐)하며 기다려줘야 한다. 우리 모두는 이렇게 하며 손자놈들을 키워내지 않았는가. 쥐를 성급하게 잡으려다가는 독을 깨는 욕속부달(欲速不達)의 우를 범한다.
거센 비바람과 따가운 햇살을 많이 받을수록 열매는 알차고 튼튼하다. 공원 트랙을 도는 시간은 나를 비우고, 나를 채워넣는 시간이다. 오늘도 건강만세를 구가하며 열심히 시작하고, 바르게 행하며 살면, 세상을 잘 살다 가는 것이 될 것이다.
이 책을 내는 데에 몇 사람이 많은 고생을 했다. 김 창권과 그의 아내 박 은경, 그들의 딸인 김 해늘새롬 그리고 내자 안 명자에게 깊은 감사의 염(念)을 표한다.


제1부 지독지정

(어미 소가 갓 나온 송아지를 핥는 정이라는 뜻으로,
부모의 정이 지극할 때 쓰는 말이다.)

어미 소가 새끼를 낳게 되면 쉼 없이 핥아서 양자 간에 정을 나눈다. 이를 지독지정 또는 지독지애(?犢之愛)라고도 한다. 새끼가 갓 나오면 어미는 새끼 몸에 묻어 있는 분비물을 부단히 핥아서 깨끗하게 해주고, 새끼 또한 그런 데서 비로소 어미에 대한 사랑과 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모정의 두터움은 동물이라 하여 인간보다 못하지는 않다. 지독지정은 거의 본능적이라 할 만큼 위대한 것이다. 부모는 제 자식의 잘못을 모를 만큼 맹목적인 사랑으로 키운다.(莫知其子之惡)
이렇게 자란 자식들은 부모의 은덕을 모르고 살지만, 제 자식을 낳아 길러본 다음에야 부모의 은덕을 알게 된다.(養子息知親力) 부모의 은혜는 하늘보다 높아 호천 망극(昊天罔極)이라 하지만, 부모 계신 곳을 향해 그리움을 표시한다 하여 이를 망운지정(望雲之情)이라 한다. 부모님에게 잘하며 사는 자 중에 잘못된 자가 없으니, 명심하여 살자 하여 이 글귀를 권한다.

세상을 바르게 살려면

내 나이도 어언 산수(傘壽)의 준령(峻嶺)을 넘어섰다. 이젠 우산을 받쳐 써야 바깥의 재앙을 막을 수 있는 나이여서(산수), 하는 수 없이 처소를 방으로 옮겨, 방을 지키는 방안 통수(統帥)가 되었다. 하지만 예나 다름없이 글도 쓰고, 우직할 정도로 꾀부리지 않고 사는지라, 세인(世人)의 기민한 눈에는 한 우인(愚人)으로 비쳐질 것이다.
우공이 산을 옮겼다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교훈도 있고 하여, 이번에 표제(表題)의 글을 제현(諸賢) 앞에 내놓게 되었다. 잠시 세월을 잃는 셈치고 읽어보기 바란다,
마음이 즐거우면 종일 걸어도 지치지 않지만, 마음에 근심이 있으면 조금만 걸어도 싫증이 난다. 그래서 근심 없이 살라 하였지만, 근심 없이 살기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근심할 시간도 없이 바삐 사는 사람들에게도, 근심은 순간순간 찾아들어 그들을 괴롭힌다. 하여튼 사람은 근심의 바닷속에서 살다가 죽을 때에도 근심하며 죽는다. 그러나 기왕 살 바에는 높은 친화력으로 근심과 벗하여 사는 길을 찾아야 한다.
노루를 잡으러 가는 자의 눈에는 토끼가 보이지 않는다 하였다. 큰일을 꾀하는 자는 작은 일에 매어서는 안 된다. 작은 근심에 매여 살다간 큰 노루를 놓치는 우(愚)를 범하기 때문이다. 하루하루를 즐거운 마음으로 살기를 힘쓰면, 인생 여정(人生旅程)이 길다 해도 근심을 이기며 살 수 있을 것이다.
여러 나무가 한군데 모여 살면 좋은 숲을 이루어 살지만, 제아무리 큰 나무라도 혼자 서 있으면, 고고(孤高)하게 보일는지는 몰라도, 숲을 이루지 못하고, 외롭고 쓸쓸하게 사는 나무가 된다. 가족은 서로 단합하여 살아야 하고 그러지 못하면 그보다 더 불편할 수가 없다. 서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한 집에서 매일 보며 사는 일보다 더 힘든 일은 없기 때문이다.
빚을 얻으면 근심을 얻고, 부채는 자유인을 노예로 만든다. 절검(節儉)을 성가지본(成家之本)으로 삼고, 부채 없는 세상에서 자유 만세를 구가(謳歌)하며 살아야 한다. 가난하게 사는 것을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요, 정직하게 살지 못함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부정하게 들어온 것은 꼭 부정하게 나간다. 부질없는 재욕(財慾)으로 욕심을 채우고, 부정하게 끌어들인 돈으로 호의 호식하며 살다가는 죽을 때 구더기에 뜯겨 죽는다.
옷을 입되 소박하고 정(淨)하게 입을 것이요, 밥을 먹되 소식(疏食)으로 배를 채워 살면, 몸도 가볍고 머리도 맑아 좋을 것이다. 너무 사치스러운 옷은 다른 사람들의 눈을 현란(絢爛)하게 하고, 주지 육림(酒池肉林)의 기름진 음식은 돈족(豚族)처럼 몸을 불리는 악식(惡食)이 된다.
내 노옹(老翁)의 길에 들어선 지 오래지만, 내 시대가 끝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부터 나에게 열려오는 시간은 새로운 자세로 맞을 것이요, 하루를 열흘처럼, 1년을 10년처럼 아끼며 살면, 진홍빛 노을을 더욱 붉게 태우는 빛나는 여생(餘生)이 될 것이다.
인생은 광주리를 들고 과일을 따는 여인과 같다고 하였다. 과일을 따다가 해가 지면, 과일이 채워진 그대로 돌아서야 한다. 내 광주리는 얼마나 채워졌는지는 모르지만, 아무리 아쉬워도 여한(餘恨) 없이 돌아서야 한다. 연기자가 무대 위에서 열혈(熱血)을 뿜다가도, 하던 일이 끝나면 무대 뒤로 표연(飄然)히 사라진다. 인간 또한 그와 다를 바가 없어서 때가 되면 하던 일 다 접고 돌아서야 한다. 빈 바구니로 돌아서는 자의 발길엔 회한(悔恨)의 눈물이 서릴 것이다.
위편 삼절(韋編三絶) 이라는 말이 있다. 책을 맨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지게 읽었다 하여 하는 말이다. 책을 읽는 자의 구도적(求道的) 열정이 없이는 결코 가능하지가 않다. 밥만 먹고 살 셈을 치면 책을 읽을 필요가 없지만, 밥만 먹고 살면 마소와 다를 바가 없어서 인간은 날로 우매(愚昧)해진다. 그러나 늘 책 읽기를 벗하여 살면 세상을 변화시키는 큰 힘을 얻을 것이다.
변소에 갈 적마다 책을 들고 들어가 고성대독(高聲大讀)으로 책을 읽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웃 사람들이 그의 책 읽는 소리를 듣고, 그가 변소에 앉아 소우(消憂) 중인 것을 알았다고 하니, 이런 이야기는 결코 평범한 이야기가 아니다.
독서 삼도(讀書三到)라는 말이 있다. 눈으로 읽으면 안도(眼到)요, 입으로 읽으면 구도(口到)요, 마음으로 읽으면 심도(心到)라 하였다. 눈으로 읽되 눈을 한군데로 모아 읽을 것이요, 입으로 읽되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며 읽지 않을 것이요, 마음으로 읽되 마음을 집중하여 읽을 일이다.
마음이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視而不見), 들어도 듣지 못하며(聽而不聞), 밥을 먹어도 그 맛을 모른다 하였다.(食而不知其味) 책을 읽되 마음을 집중하여 읽을 것이요, 그렇지 못하면 공연히 시간만 낭비하는 무위(無爲)한 독서가 된다.
각자 도생(各自圖生)으로 세상 살기가 힘들지만, 그래도 틈을 내어 조금씩 책을 읽으면, 마음에 큰 빛을 얻어 살고, 나와 이웃을 변화시키는 큰 동량이 될 것이다.
녹명(鹿鳴)이라는 말이 있다. 글자 그대로의 뜻은 사슴이 운다는 뜻이지만, 그 뜻이 깊어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다른 짐승들은 먹이를 보면 목숨을 걸고 달려들어 자기 몫을 챙기지만, 사슴은 울음을 터뜨려 자기 가족이나 동료들을 불러모아 같이 나누어 먹는 데서 나온 말이다.
혼자 살면 우선은 편하여 좋을지 모르지만, 이 세상의 어느 것도 나와 관계없는 것은 없다. 그래서 인간을 관계적 존재라 하거니와, 인간관계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 간의 관계라고도 할 수 있다. 가장 가까운 가족들이 서로 사랑하며 살고, 이웃과 서로 화합하여 살면, 세상은 좋아져서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다.
몸은 늙어서 어수룩하게 보여도 중심을 잡고 살아야 하고, 적은 지식으로 잘난 체하다가는 식자 우환(識字憂患)의 화를 입는다.
늙은이의 장광설(長廣舌)을 좋아할 사람은 없고, 나이가 들수록 말수가 는다 하였으니, 될 수 있는 한 말수를 줄여야 한다. 말을 하되 몇 마디로 줄여서 하고, 늘 바르고 온유한 말로 주변을 따뜻하게 해야 한다.
나이가 많으면 그냥 살지는 않았을 터인즉, 혹시라도 얽힌 것이 있으면 다 풀고 가야 한다. 젊었을 때는 좌충 우돌 얽히며 살았지만, 지금은 그럴 나이가 아니다. 앞날이 불가측(不可測)한데, 지금 얽히면 어찌하겠는가. 푸는 일에 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니,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 그간 소원(疏遠)했던 마음을 풀면 감사한 마음을 갖게 할 것이다.(解其紛)
슬프다고 슬픈 기색을 하지 말고, 화난다고 노기를 띠지 말고 늘 편안한 안색을 유지하며 살아야 한다. 징분 질욕(懲忿窒慾)이라 하였으니, 분을 꾸짖고 욕심을 억제해야 한다. 참기를 계속하면 화내지 않고 살 수 있을 것이다.(和其光)
세상을 살되 몸이 부실하면 세상 사는 맛을 잃는다. 늘 누워 있기를 일삼으면, 이처럼 좋은 세상도 살기가 싫고, 누리고 있는 부귀 영화도 뜬구름처럼 날아가 버린다. 건강은 만복의 근원이니, 다동(多動)에서 건강의 본을 찾고, 세상의 소요와 번뇌에 휘말리지 말고, 늘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며 살면, 만수(萬壽)를 향유(享有)하는 행복도 누릴 것이다.
책을 쓰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책을 쓰는 순간은 나를 구원하는 참 행복한 시간이다. 세상 번우(煩憂)한 일을 다 잊을 수 있으니 이런 행복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졸권(拙券)이기는 해도 힘들여 썼으니, 쉬어가는 셈치고 읽으면 힘든 세상살이를 잠시 잊을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되 주마간산격(走馬看山格)으로 읽지 말고, 행간(行間)의 뜻까지를 잘 헤아려 읽으면, 참으로 잘하는 독서가 될 것이다. 독자 여러분의 건승과 완독의 기쁨을 누리기를 기원하면서 이만 줄인다.

노학(老鶴)의 꿈
(만 리를 품다)

나의 한 지인(知人)으로 김 창권이라는 젊은이가 있다. 젊은이치고는 놀라울 정도로 많이 아는 사람이어서, 무슨 일을 맡겨도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간다. 그의 처도 그와 비슷한 수준으로 많이 알고 있고, 그의 딸 김 해늘새롬은 아직 꼬마인데도 컴퓨터 1급 기사이고, 1분이면 600자 이상을 타파(打破)하는 달인 급이다.
내가 이 가족에게 눈독을 들인 것은, 내가 하고 있는 이 까다롭고 어려운 일을 그들만이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이들에게 일을 맡기면 일거삼득(一擧三得)의 효과를 거둘 수 있어서 그렇게 하고 있다.
그 전에는 전남대학교의 정 숙현 선생이 맡아서 했지만, 그간 너무 많이 부려먹어서 미안한 생각이 들고, 더 이상 그의 일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요즘 부쩍 많이 하게 되었다.
내 나이도 찰(滿) 대로 차서 면밀(綿密)함이 옛날과 같지 않아, 하는 수 없이 그들에게 의존하며 산다.
그런데 이번에 이 책을 내면서 책의 제목을 “한 우공(愚公)이 전하는 세상 사는 이야기”로 정하고, 김창권 지인에게 혹시 좋은 생각이 있느냐고 넌지시 물었더니, “노학(老鶴)의 꿈 만리를 품다”를 참고하라며 내놓는 것이었다.
중국의 시인 두보의 노학지심(老鶴之心)이 머리에 떠올라, 좋을 듯했지만 깊이 생각해 보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직 우공(愚公)의 수준을 넘지 못하는 처지인지라 언감생심(焉敢生心) 노학의 꿈이 마치 나의 꿈인 양 내놓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학에 대한 이야기나 할까 하여 붓을 들었다.
학은 두루미라고도 하고, 또 다른 이름이 많은 데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새여서 우리와는 친근감이 가는 새다. 다리는 유별나게 길고, 목도 길고, 부리도 길고, 꼬리는 짧고, 색은 새하얀 새로 만인의 사랑을 받는 새다.
논이나 갈대밭 늪지에서 엉금엉금 걷는 모습이 성자와도 같고, 한 다리는 세우고, 다른 한 다리는 약간 들어 올리고 서 있는 모습이 외로워 보이지만, 점잖은 모습은 선비들의 모습을 방불케 한다. 조용히 명상하며 서 있는 것 같아도, 눈은 먹이의 동정을 늘 엿보고, 먹이가 눈에 들어오면 긴 다리를 몇 번 움직여 긴 부리로 먹이를 낚아채서 먹는다. 긴 부리로 먹이를 잡아 목으로 삼켜 내리는 모습은 단연 압권이다. 쌍을 지어 나는 일은 거의 없고 있으면 늘 혼자이니 고고(孤高)하게 보이는 새다.
평소 성품이 조용하고 담담하며, 연작(燕雀: 제비와 참새)처럼 까불지 않고, 다른 새들처럼 먹이에 목숨을 걸고 싸우는 그런 새는 아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짐승들처럼 헛배를 불려 둔중하게 몸을 불리는 새도 아니다. 홍곡(鴻鵠: 기러기와 고니)처럼 만리 장천을 날아 먼 북에서 남으로 둥지를 찾아 개척하는 새도 아니고, 무엇을 쟁취하여 크게 이루려는 야심이 있는 새도 아니다. 점잖고 의젓하며, 성질이 급하거나 열정이 넘치는 새도 아니고 겁이 많은 새도 아니다. 나는 것도 다른 맹금(猛禽)들처럼 단숨에 천 리를 치닫는 빠른 새도 아니다.
수명은 1000년이라고 하나, 기실 그런지는 알 길이 없고, 천연 기념물로 보호받는 새이니 천하 만인의 사랑을 받는 새이기도 하다. 사람이 수를 늘리며 오래 살면, 학처럼 오래 산다 하여 학수(鶴壽)를 누린다고도 한다. 예부터 한 번에 힘을 많이 쓰는 짐승 중에 오래 사는 짐승은 드물다. 옛말에 지자(知者)는 즐기며 살고(知者樂), 인자(仁者)는 오랜 수를 누리며 사는지라 인자수(仁者壽)라고도 한다. 학은 인자측에 속하여 그렇게 의젓하고 점잔한 것이 아닌가 싶다.
학은 움직임이나 성격이 선비의 것을 닮았고, 청담(淸談)을 즐기고, 풍류에도 무심치 않는 그런 선비에 비유된다. 선비는 풍요와 화려함에는 거리가 멀고, 가난하지만 늘 책을 벗하여 사는 데서 기쁨을 느끼며 산다. 선비는 고독하게 보여도 고독하지 않고, 부족하게 보여도 마음에 풍요를 느끼며 산다. 선비는 의지가 굳은지라 궁하게 살아도 흔들리지 않고, 늘 바른 마음으로 사는 데서 안심 입명(安心立命)을 누린다. 벼슬에 안달이 난 세상이지만, 부귀 영화에는 뜻이 멀고, 늘 깨끗한 마음과 고절(高節)을 굽히지 않는 고사(高士)의 길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는다.
도중예미(塗中曳尾)라는 말이 있다. 거북은 진흙이나 개펄에서 꼬리를 끌며 살아도 사는 것이 좋고 즐겁게 사니 기쁘다는 뜻이다. 작록(爵祿: 벼슬과 녹봉)에는 탐하지 않고, 빈한에서 낙도(樂道)를 얻고, 초야에 묻혀 사는 것을 편하게 여기는 선비를 일컫는 말이다. 주위에서 손가락질을 해도 글을 읽으며 사는 백면서생(白面書生)의 길이 좋아 그 길에서 만족하며 산다.
학은 새 중의 새요(群鷄一鶴), 점잖이 행하는 모습은 신선과도 같다. 학이 노는 모습을 보면 번거로운 세속의 일을 잊게 하고, 학이 우는 소리를 들으면 선계(仙界)의 선율(旋律)을 듣는 것과 같다. 바람결을 따라 춤추는 모습(仙雲野鶴)은 한 폭의 선화(仙畵)를 보는 듯하고, 월하(月下)의 밤에 나무 가지에 앉아 잠든 모습은 선인(仙人)이 잠든 모습과도 같다.
시인 두보는 노학의 마음은 만 리에 이른다고 하였으니, 노학의 마음은 곧 노학의 꿈일 것이다. 김 창권 지인이 나를 학에 비유하여 책의 제목을 ‘노학의 꿈’으로 하라고 살며시 내밀었지만, 욕심은 나지만 언감생심 어찌 받아들일 생각을 하겠는가. 세상 공부 더 많이 하고,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써서 세상 계도(啓導)에 더 힘써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은 그저 평범하고 꾀부리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우공의 길이 제격인 것에 깊이 만족하며 살고 있다.
학은 하늘과 땅을 벗하여 오르 내리는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지만, 그의 행하는 모습이 사람들의 가슴속에 높은 선비의 모습으로 자리 잡아 오늘에 이르렀다.
선비는 학문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늘 학문에만 매달려 살 수는 없다. 학문은 많이 할수록 좋지만, 많이 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고, 그 근본을 알아 정통하는 데 있다. 제아무리 많은 학문을 했다 해도, 세상을 바르고 편하게 하는 데 이용되지 못한다면 무용한 것이 된다.
책을 읽되 뼈가 빠지게 읽을 일이요, 세상일을 많이 행하되 뼈가 빠지게 행해야 한다. 어중간하게 했다간 죽도 밥도 아닌 어중간한 것이 된다.
내가 책을 쓰는 것은 내가 잘 갖추어져 있으니, 나를 본받아 살라 하여 쓰는 것은 아니다. 그간 잘하지 못한 것이 있으면 서로 바로잡아 바르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나의 염원과 소망을 글로 썼을 뿐이다. 이것이 곧 나의 꿈이요, 이 꿈이 만 리에 미치기를 기원하면서 이만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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