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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시대의 인간과 사회

재건시대의 인간과 사회

(현대사회구조연구)

칼 만하임 (지은이), 정환용 (옮긴이)
  |  
전남대학교출판부
2016-01-15
  |  
3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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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시대의 인간과 사회

책 정보

· 제목 : 재건시대의 인간과 사회 (현대사회구조연구)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학 > 사회학 일반
· ISBN : 9788968492723
· 쪽수 : 554쪽

책 소개

사회심리학적 시각에서 계획의 필요성을 제시한 고전. 저자는 경제적 과정들도 사회적, 심리적, 문화적 과정들과 연계되어 있다는 시각에서 계획과 규제의 원리를 경쟁의 원리와 대비하여 설명하고, 계획의 적법성논거의 일면을 제시하고 있다.

목차

서론 사회재건시대의 유의의 / 1
제1편 현대사회의 합리적 및 비합리적 요소
Ⅰ. 계몽의 문제 / 44
Ⅱ. 본 연구의 세 가지 출발점 / 46
Ⅲ. 근본적 민주화의 원리 / 51
Ⅳ. 증가하는 상호의존성의 원리 / 57
Ⅴ. “합리성”이라는 말의 다양한 의미에 대한 명료화 / 59
Ⅵ. 실체적 합리성의 증가 없는 기능적 합리성 / 67
Ⅶ. 사회생활에서 비합리성의 사회적 원인들은 추적할 수 있는가? / 70
Ⅷ. 도덕성에서 합리성과 비합리성의 사회적 원인들은 추적할 수 있는가? / 78
Ⅸ. 도덕성의 비합리적 경향 / 83
제2편 현대문화위기의 사회적 원인
Ⅰ. 지적생활에서 사회적 요인들의 역할발견을 가로막는 장애물들 / 90
Ⅱ. 문화에 대한 사회의 영향을 분석하는 두 가지 방법들 / 92
Ⅲ. 첫 번째 과정: 엘리트수의 증가 / 99
Ⅳ. 두 번째 과정: 엘리트들의 배타성 붕괴 / 100
Ⅴ. 세 번째 과정: 엘리트들의 선발을 지배하는 원리의 변화 / 101
Ⅵ. 네 번째 과정: 엘리트구성의 변화 / 106
Ⅶ. 자유대중사회에서 공중의 형성 / 111
Ⅷ. 사회에서 지식계급의 지위 / 114
Ⅸ. 대중사회에서 지적생활의 문제 / 123
Ⅹ. 특히 독재정권에서, 문화생활의 규제에서 발생하는 일부 문제 / 125
제3편 위기, 독재정권, 전쟁
Ⅰ. 사회해체와 인격해체 간의 상관관계 / 136
Ⅱ. 인성에 관한 약간의 공리적 신념 / 140
Ⅲ. 상이한 불안의 형태들과 그것들의 행태에 대한 영향. 동물과 인간사회의 붕괴 / 146
Ⅳ. 조직되지 않은 불안에서 조직된 불안으로 / 151
제4편 계획수준에서의 사고
Ⅰ. 인간의 사고와 의지에 대한 방향수정 / 170
Ⅱ. 계획하지 않은 행동들과 계획된 행동들 / 180
Ⅲ. 두 사고유형의 불명료한 공존의 징후로서 이론과 실제 간의 긴장 / 190
Ⅳ. 발명적 사유의 단계에서 개인과 독특성 / 201
Ⅴ. 역사에서 독특성과 일반성 그리고 그것들이 논리에 제시하는 문제들 / 206
Ⅵ. “매개의 원리들”의 발견에 관한 장애물 / 219
Ⅶ. 설립, 계획, 그리고 행정의 개념들 / 223
Ⅷ. 계획의 의지적 및 감정적 측면들 / 227
Ⅸ. 변환하는 인간의 문제 / 234
제5편 자유를 위한 계획
Ⅰ. 사회적 기법의 개념 / 282
Ⅱ. 사회적 기법발달의 일부 국면들 / 298
Ⅲ. 사회적 통제의 개념 / 314
Ⅳ. 사회적 통제들의 분류 / 325
Ⅴ. 사회통제의 필드에서 변환의 법칙들 / 372
Ⅵ. 사회적 통제의 역사로서 의회 및 민주정치의 역사 / 392
제6편 계획 수준에서의 자유
자유에 대한 진정한 이해: 행동을 위한 서곡 / 442
참고문헌 / 459
색인 / 517

저자소개

칼 만하임 (지은이)    정보 더보기
헝가리 출신의 독일 사회학자로 고전사회학과 지식사회학의 선구자이다. 1893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나 부다페스트 대학, 하이델베르크 대학 등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 강사를 거쳐 프랑크푸르트 대학 사회학과 교수가 되었으나, 1933년 나치를 피해 영국으로 망명했다. 런던 정치경제대학에서 사회학을 강의했고, 1945년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런던 대학 교육연구소 교수로 재직했다. 그는 세기말,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극좌에서 극우까지의 다양한 사회운동, 사회주의 혁명 등 격동의 시기를 직접 보고 경험한 연구자이기도 하다. 지멜의 강의를 듣고, 루카치가 조직한 토론 집단에 참여했으며, 막스 베버의 형제인 알프레트 베버 밑에서 공부하고, 마르크스·하이데거·후설·딜타이 등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독일 역사주의, 마르크스주의, 현상학, 사회학, 영미 실용주의를 통합하려고 시도했다. 또한 그는 지식이나 진리를 특정한 이해관계를 표현하는 이데올로기로 바라보는 지식사회학을 정초했다. 마르크스주의, 그중에서도 루카치의 ‘허위의식’에 영향을 받은 지식사회학은 지식 자체 또는 진리의 독립성을 부정하고 지식이나 진리가 존재에 의해서 규정을 받는다고 보았다. 영국에 정착한 후에는 민주적인 사회 계획과 교육으로 현대 사회의 구조를 포괄적으로 분석하려고 시도했다. 주요 저작으로는 《사유의 구조》, 《지식사회학》,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 《재건기의 인간과 사회》, 《정치 교육으로서의 사회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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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환용 (지은이)    정보 더보기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졸업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졸업 영국 쉐필드 대학교 (Univ. of Sheffield) 도시 및 지역계획학과 졸업) (도시 및 지역계획학 박사) 전남대학교 경영대학(원)장 (역임) 한국지역개발학회장 (역임) 국토정책위원회 위원 (역임)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위원 (역임) 전남대학교 경영대학 경제학부 지역개발전공교수 (정년퇴임) 전남대학교 경영대학 경제학부 명예교수 (현재) 저서 및 역서 도시계획학원론 (박영사) 계획이론 (박영사) 도시관리론 (박영사) (중역판: 城市管理學(楊開忠, 楊開忠ㆍ李順成ㆍ宋映鉉 譯, 北京: 科學出版社, 2015) 반동의 길 (헤르만 파이너 저, 전남대학교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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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머리말]

본 역서는 칼 만하임(Karl Mannheim)의 『재건시대의 인간과 사회』(Man and Society in an Age of Reconstruction, 영어판: 1940년간)를 번역한 것이다.
칼 만하임(1893년∼1947년)은 헝가리태생의 사회학자로, 부다페스트대학교((Univ. of Budapest)에서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1921년에 독일 하이델베르크(Heidelberg)에 이주하여, 하이델베르크대학교(Univ. of Heidelberg)에서 5년간 강의했고, 프랑크푸르트대학교(Johan Wolfgang Goethe Univ. of Frankfurt am Main)에서 사회학 및 정치경제학 교수로 1930년∼1933년까지 근무했다. 그는 귀화인이고 유태인이었기 때문에 나치정권에 의해 교수직에서 추방된 후, 영국에 망명하여 1933년부터 10년간 런던경제대학(London School of Economics)에서 사회학강사로 강의하였고, 1945년∼1947년까지 런던대학교(Univ. of London)의 교육연구소(Institute of Education)에서 교육사회학 교수로 근무했다.
20세기 고전사회학의 창설자중 한 사람이고, 지식사회학이라는 새로운 사회학분야를 개척한 그는, 영국망명이후 민주적 계획과 관련된 저술에 몰두했다. 그의 대표저서는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독어판; Ideologie und Utopie, 1929: 영어판; Ideology and Utopia, London: Routledge, 1936)와 본 번역서이며, 그의 사후에 출간된 『자유, 권력, 그리고 민주계획』(Freedom, Power and Democratic Planning), (N. Y.: Oxford Univ. Press, 1950)도 있다.
독일과 영국의 양쪽 시각에서 현대사회문제를 고찰할 기회를 가진 저자는, 어떻게 특정한 사회적 조건하에서 자유질서의 무계획성이 무정부로 변하고, 한때 사회적 과정의 균형을 유지했던 자유방임의 원리가 정치적 및 경제적 생활의 양면에서 혼돈을 가져왔는가를 바이마르공화국(Weimar Republic)의 자유민주장치의 실패를 통해 주시하였다. 그는 현대사회의 불안이 단기적인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구조적 변화에 직면했다고 생각하고, 위기 속의 서양사회가 어떻게 붕괴의 단계를 벗어나고 있는가를 알 수만 있다면, 아직도 여러 문제들에 직면해 있는 많은 국가들이 사회적 변화과정의 부정적 측면들을 회피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저자는 현대사회문제를 여러 각도에서 연구하고 지난 십여 년의 변화들에 대한 상이한 해석들을 숙고한 후에, 현시대에서는 계획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저자는, 이상적으로 계획된 사회는 계획하지 않은 사회에서의 견딜 수 없는 삶과 비교하더라도 감옥이나 구속복이 아닌가, 즉, 계획사회는 개인을 완전한 노예상태로 인도 하지는 않는가, 그렇지 않으면 계획을 통해 사회문제를 제거하고 개인의 발전을 물론 사회진보를 가져오는 사회적 통제의 수단인가라는 근본적인 철학적 질문을 제기한다. 계획에 대한 이러한 상반된 태도는 인간사에 대한 간섭을 혐오하는 자유주의의 사상과, 인성의 새로운 가능성들을 탐구하기 바라는 실험의 열정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계획과 비개입에 대한 이론적 논의의 뿌리는 계획옹호론자와 자유시장주의자 사이에 1930년대∼1940년대 사이에 벌어진 대논쟁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논쟁의 핵심은 계획이 사회적 행동에 대한 선택과 장애를 명료화하여 자유를 신장하는 것인가 또는 자유시장질서와 개인행동에 과도한 개입과 통제로 자유를 제약하는 것인가이다. 계획, 규제, 그리고 정부규모를 줄이고 민간기업과 시장의 경쟁력을 제고를 모색하는 시장주의자의 주장에 대해 계획을 통해 시장실패에 대처하고 사회의 진보를 유도하려는 계획옹호론자들 사이에의 논쟁은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본 역서는 사회심리학적 시각에서 계획의 필요성을 제시한 고전적 저서이다. 계획의 적법성에 대한 대부분의 논의가 경제적 관점에서 접근하는데 비해, 본서는 경제적 과정들도 사회적, 심리적, 문화적 과정들과 연계되어 있다는 시각에서 계획과 규제의 원리를 경쟁의 원리와 대비하여 설명하고 있다.
본 역서는 서론과 6개의 편(編), 그리고 참고문헌으로 구성되어 있다. 3개편(제1편, 제2편, 그리고 제4편)은 저자의 독일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1935년에 독일어판으로 출간했고, 나머지 4개편(서론, 제3편, 제5편, 그리고 제6편)은 영국에 정착한 후 강의나 논문으로 발표한 내용을 보완하여 본서의 내용으로 정리하여 출간하였다,
서론은 저서의 저술배경과 목적, 구성 및 내용에 대해 간략히 정리했다. 제1편과 제2편은 대중사회의 붕괴에 따른 부정적 현상들과, 현대문명의 최근변화들과 관련된 문제들과 함께, 심리적 위기들에 대한 관심을 기술했다. 제3편은 정신적 부패, 독재정권, 그리고 전쟁을 조장하는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심리적 원인들을 검토하여 이들의 사회생활에 대한 부정적인 효과를 논의했다. 제4편은 사고가 사회적 과정에서의 욕구들과 계획을 필요로 하는 새롭고 어려운 문제들에 순응하는 것을 고찰했다. 제5편과 제6편은 당면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면서, 민주주의와 조화되는 계획, 자유를 신장할 수 있는 계획의 방향을 제시하면서, 결론을 맺고 있다.
본 역서에서는 규제되지 않은 경기순환, 자유경쟁, 경쟁적 자본주의에 기초한 자유방임적 자본주의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계획된 민주주의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최대한의 자유와 자결을 허용하는 계획형식의 발견이 중요하고, 계획하지 않은 사회에서 발생하는 혼돈을 피하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자유와 계획의 원리가 결합하는 사회적 장치의 발견이 중요하고 사회의 재건과 인간의 개조를 위한 계획을 강조한다.
저자는 합리성을 주어진 상황에서 사상(事象)들의 상호관계에 대해 지적통찰이 발현되도록 하는 사고행위로 보면서, 실체적 합리성과 기능적 합리성으로 구분한다. 전자는 합리적인 목표수립과 수단의 합리화를 추구하는데 비해, 후자는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을 가장 효율적으로 조화시키기 위한 관련 조직 및 조정에 대한 숙려성을 의미한다고 이해한다.
저자는 국가가 사회개혁을 책임지고, 과세를 통해 소득에서 형평성의 증가를 가져오며, 부자로부터 가난한 사람에게 재산이전을 시도하는 경우에는, 이미 자유주의적인 의미에서 비(非)개입의 전통은 포기한 것으로 생각한다. 사회보험은 적극적인 개념의 국가를 지향하는 거대한 진전이다. 국가의 경기순환조정, 상이한 통화조작, 대기업이나 은행 등의 붕괴에 따른 여러 형태의 보조금이나 공적지원, 공공토목사업의 조장, 확대되는 공공시설 등은 사회복지에 기초한 적극적인 국가개념으로의 변환을 의미하고, 이는 조금도 민주적인 책임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계획은 궁극적으로 근본적인 평등이라는 의미에서 민주주의의 확산을 인도하고, 장기적으로 계획된 사회에서 기회의 평등을 만드는 요인들 중 하나로 여긴다.
민주국가들에서 진정한 자유주의는 개성을 함양해야 하고, 모든 유형의 계획과 사회적 기법을 암시하는 보완자로서 행동해야 하며, 자유를 희생하여 질서를 획득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계획은 자유를 위한 계획을 의미하고, 사회의 원활한 작동이 의존하는 사회진보의 그러한 영역들을 지배하지만, 동시에 창조적인 진화와 개성을 위한 최대의 기회를 제공하는 영역들을 규제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없는 것을 의미한다.
본서를 번역함에 있어 우리말로의 의미가 통하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고, 가급적 의역을 삼가고 직역(直譯)하여 저자의 뜻을 전달하려했다. 그러나 의미전달을 위해 필요한 부분에는 괄호 안에 한자(漢字)를 넣어 이해의 편의를 도모했고, 독자의 이해를 위해 역자의 간략한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괄호 안에 밑줄을 쳐서 나타냈다. 본서 각 페이지의 측면번호(側面番號)는 원저의 페이지를 나타낸다.
본 역서는 계획의 적법성논거의 일면을 제시함으로서 계획이론의 학적기반을 확립하는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아울러 시장과 정부, 경쟁과 규제 자유와 계획 등의 대립되는 시각에서 상호의 역할과 범위에 대한 이해의 시각을 다양화하여 조화로운 접근을 모색할 수 있다. 따라서 본 역서는 계획과 계획이론을 공부하는 학자 및 학생들의 학문적 정체성 확립과 연구방향설정을 위한 중요한 참고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아울러 본서는 실무적인 측면에서 효율적인 정책수립집행의 방향과 내용을 제시하는 참고서로 활용될 수 있다.
역자는 대학에서 계획이론을 공부하고 강의하면서, 앞으로 시간이 되면 계획관련분야의 고전적인 저서들을 번역해서 학계에 소개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본 역서는 역자의 정년퇴직을 계기로 평소의 생각에 따라 번역한 결과물의 하나이다. 처음의 의욕과는 달리 예정보다 많이 지체되어 이제야 출간하게 되었다. 본 역서를 출간하도록 정년퇴직교수에게도 도움을 준 전남대학교 관계자 여러분과 출판부 관계자 여러분께도 감사한다. 본 역서의 출간에 많은 관심과 배려를 해준 학과의 여러 교수님들께도 고마움을 전한다. 아울러서 항상 격려해주고 원고의 일부 내용을 교정해준 아내(김혜경)의 도움은 큰 힘이 되었다.


서론 사회재건시대의 유의의

Ⅰ. 대륙과 앵글로 색슨의 관점에서 본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위기

본서의 독일어판은 “독일에 있는 저자의 은사들과 학생들”에게 헌정되었다. 따라서 그 책은 원래 자신들의 삶 속에서 변환시대의 엄청난 변화를 경험했던 그 사람들에게 바쳤다. 만일 본서가 영어판으로 출간된다면, 그 책의 기능은 자동적으로 바뀐다. 본서의 영역판은 이 경험들을 바탕으로 실제로 살아온 그 사람들을 위한 자기계몽적인 시도가 더 이상 아니고; 그러한 변화에 대해 단지 풍문의 지식만을 가지고 있고 아직도 전통적인 안정성의 환상에 둘러 싸여있는 세상에 대해, 이 사람들의 입장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관점들 간의 차이를 축소하거나 은폐하려해서는 안 된다. 서방제국에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붕괴 그리고 전체주의체제의 채택은 소수의 국가들에 국한된 지나가는 위기의 징후들로 보이는 한편, 위험지대 내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 변환을 현대사회의 바로 그 구조 속의 변화로서 경험한다는 사실을 가장 분명하게 표현하였다.
이러한 격동을 모면한 그 사람들의 경우에, 세상은 아직도 전쟁의 영향에서 고통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위안이 되고 있다. 그들은, 독재정권들이 종종 역사의 노선에서 비상사태의 임시해결책들로서 확립되었다는 것을, 반성하면서 기꺼이 자위한다. 이와 반대로 위기에 관해 직접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그 사람들에게는, 비록 그들이 독재정권에 대한 신랄한 반대자들이라고 하더라도, 사회질서와 인간들의 심리상태 양자는 철저히 변화하고 있다는 신념으로 결합되어있다. 게다가 만일 이 독재정권이 해악이라면 조만간 확산될 해악이다. 그 사람들은, 우리가 이러한 순간의 고요함에 우리스스로가 기만당하지 않아야 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는 것을 불가능하지 않도록 하면서, 새로운 기법들을 획득하는데 그 지식을 사용해야한다고, 더욱더 확신한다. 경험의 차이는 서로 조화되지 않고; 그 차이는 고립된 사실들의 해석과 전체로서 입장의 진단이라는 양면에 영향을 미친다. 인간과 사회문제에 관한 한, 서로 다른 국가들과 집단들 간에 아이디어의 지속적인 교환이 있어야한다. 사실들 자체보다는 오히려 국가에 만연된 풍조에 의해 정당화된 준거의 틀에 부합되도록, 잘못된 가정(假定)들에 국가스스로가 싫증나게 하거나 사상(事象)들의 의미를 왜곡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다. 여기서 과장된 비관주의는 과장된 낙관주의와 똑 같이 위험할 수 있다. 여러 상이한 국가들에서 살고 있으면서 다양한 관점들을 스스로 확인할 기회를 운명적으로 제공받은 그러한 사람들의 과업은, 의견의 차이들이 새로운 통합을 위해 정반대가 되도록 하거나 혼합되도록 하는 형식으로, 항상 이 태도들의 갈등을 고려하고 그 사람들 스스로 잘 해결하도록 했다.
저자는 독일의 관점과 영국의 관점 양면에서 바로 이 문제에 대해 사유하는 것을 학습할 최대의 혜택을 받았다. 본서의 현재 형태는 먼저 저자의 독일에서의 경험에 의해, 그리고, 나중에는 영국식 사유방식에 의해 영향을 받았으며, 그래서 본서는 두 경험들을 조정하기 위한 것이다.
본서에는 “모든 책은 저마다의 운명을 지니고 있다.”(Hlibent sua fata libelli) 라는 옛 격언을 확실히 적용할 수 있다. 본서의 여러 편(編)들을 저술할 때, 저자는 자유민주사회의 붕괴하는 경향들에 의해서 길러진 경험들의 철저한 영향아래 있었다. 저자의 관심은 바이마르(Weimar)공화국에서 주로 자유민주장치의 실패를 주시했고; 저자는 현대대중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그 공화국의 무력함을 입증했다. 저자는 어떻게 특정한 사회적 조건 하에서 자유질서의 무계획성이 무정부로 변하고, 어떻게 한때 사회적 과정의 균형을 유지했던 자유방임의 원리가 이 발전단계에서, 정치적 및 문화적 생활의 양면에서, 혼돈의 결과를 가져 왔는가를 검토했다.
이 경험들 때문에, 저자는 낡은 관념의 자유방임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느꼈고; 산업사회의 현재단계가 아니라면 어떤 형태든 계획이 불가피했다는 것을 인식했다. 저자는, 만일 계획이 사회의 자발적 세력들의 뜻을 곡해하지 않는다면, 이 계획이 어떤 형태를 취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조금도 분명하지 않았다. 저자는 그 당시에는 자유 및 민주국가들에 관한 연구로부터 무언가를 배우는 것에 대해 많은 희망을 갖지 않았는데, 이는 저자가 민주체제는 이미 갈 데까지 갔다는, 중부유럽에 널리 파급된 느낌을 본의 아니게 공감했기 때문이다.
이 회의적 사고방식은 저자의 개인적 취향들과 조화되지 못했다. 본서는, 그렇다고 해도, 자유와 개인적 책임이 모든 가치 중에서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견해에 의거하여 저술되었다. 그러나 저자와 저자를 좋아하는 그 사람들은 자기기만으로부터 몹시 보호받고 싶어 했다. 자유민주의의 위기에서 발생한 것에 대한 실제적인 기술과 이론적 분석이, 저자에게는 자유와 자결의 장점들에 관한 단순한 이념적 주장보다도 더 중요하게 생각되었다.
저자는, 이 실패에 대한 구체적 분석이, 적어도 해악의 원인에 대해 주의를 끌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회조직은, 순수한 열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질병의 원인에 대한 진지한 연구에 의해서만 치유될 수 있다.
본서의 독일어판은 이러한 의미에서 기본적으로 완전하고, 현대사회의 작용을 설명하려는 저자의 시도에서 하나의 단계를 표상한다. 독일어판과 비교하여, 영어판은 거의 새로운 작업인데; 이는 일부는 거기에 새로운 편(編)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지만, 또한 원래의 부분들은 재작성하고 더욱 정교화 했기 때문이다. 이미 지적한 것처럼, 사고방식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최근에 저자가 자유민주주의가 거의 흔들리지 않고 작용하는 국가에 살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자유민주주의의 원리들에 대한 효과를 근거리에서 연구할 기회를 저자에게 제공했다. 비록 그것이 저자의 경험구조를 확대하고 우리시대의 민주주의 활력에 관해 저자의 뿌리 깊은 회의론에서 저자를 자유롭게 하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환경에서 저자가 단순한 탐구자의 정신에서 직면하기를 바라지 않았던 특정한 사실들에 당면했다. 저자는, 이 국가의 일시적인 안정 때문에, 우리 모두가 일촉즉발의 상태에 있고, 폭발을 실제로 경험한 그러한 사람들은 우리 서양사회의 기저에 틈이 크게 벌어져 있는 분화구의 본질과 깊이에 대해 보다 큰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저자로 하여금 망각하게 만드는 낙관론에 항상 양보하고 싶어진다.

Ⅱ. 자유방임의 원리와 현대사회에서 조절불량의 주요 원인으로서 무계획규제원리의 충돌

저자는 우리사회가 단기간의 불안이 아니라 구조의 근본적인 변화에 직면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이러한 인식이 예방적 조치들에 대한 유일한 보증이기 때문이다. 왜 위기지대 속의 서양사회가 붕괴의 단계를 통과하고 있는가를 우리가 알 수만 있다면, 아직도 상대적인 평화를 향유하고 있는 국가들이 민주적인 계획에 의해 사상(事象)들의 장래추세를 통제하는 것을 배우고, 그래서 그 과정의 부정적 측면들, 즉, 독재, 국교신봉, 그리고 야만을 회피하는데, 얼만가의 희망은 있는 것이 아닌가? 저자에게는, 문제를 여러 각도에서 연구하고 지난 십년의 변화들에 대한 상이한 해석들을 숙고한 후에, 우리의 당면시대에서는 계획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고 여겨졌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계획은 독재정권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매우 다른 형태를 취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계획된 사회체제의 본질은 물론 기능도 우리의 진정한 자유들이나 민주적 자주결정의 아이디어에 대해 어떠한 희생도 요구하지 않는다.
자연히 누구든지 계획이 독재정체와 모든 자유의 억압으로 쉽게 타락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현실주의자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그것이 저자가 계획에 대한 사고를 즉석에서 거부하는 것을 방지하려는 바로 그 현실적인 태도이다. 사회구조와 정부의 현대기법에서 변화에 대한 정확한 분석은- 본서에서 제시하려는 것처럼-우리에게 어떠한 다른 대안도 일임하지 않았다. 때문에 본서의 진단에 대한 합의는 현대사회의 기술적 및 구조적 기반들이 완전히 변환되었는가를 독자가 시인할 것인지 여부에 좌우된다. 이 가정이 주어진다면, 계획과 자유방임 간에는 더 이상 어떠한 선택도 없고, 오직 좋은 계획과 나쁜 계획 간의 선택만이 존재한다. 저자 자신은 사회질서와 통제의 기법들이 한 인민집단의 “선량한 생활”에 대한 개념을 다른 인민집단에게 강요하는 것을 허용되지 않은 시대에 살고 싶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질서와 그것에 대한 통제기법들을 선택할 수 있는 어떠한 권력도 보유하지 못했다. 그 기법들은 이미 존재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대부분은 최고로 유익하게 그것들을 결합하거나 주조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들 가운데서, 기본적으로 전제적인 남용의 방지를 담보하는 어떠한 계획의 형태가 존재하는가 여부에 대한 질문을 밝히는 모든 이론적 기여, 그리고 계획의 소중한 현대적 요소들과 독재정권의 퇴행하는 개념 사이를 판별하는 모든 탐구는, 이론적 중요성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현재에 이르기까지 역사는 계획을 진정으로 시도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망각해서는 안 되는데,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실험들은 동양의 전제정치 또는 군사독재전통들의 정신과 혼합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의 전체주의국가들에 대한 고지식한 연구와 기술은 매우 부적절하고; 지난 십년의 구체적 경험들에 비추어 사실들에 대한 이론적 분석으로서만 가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할 수 있다.
현실주의는 인간이 이상주의적인 미래를 예언하는 것을 방지한다. 뿌리 깊은 민주전통을 가진 서양제국이, 적시에 국면을 이해하고 새로운 상황에 충족되도록, 그 국가들의 옛 전통을 재활성화 하는데 아주 열정적이어야 하는 단 한 번의 기회만 있다는 것을 매우 심각하게 논의해야한다. 그러나 오늘날 이 재생은 단순히 분위기의 문제가 될 수는 없다. 새로운 정책도 역시 이론적 해석과정이 동반되어야하므로, 최대한의 자유와 자결을 허용하는 계획의 형식이 발견될 수 있다. 현재의 발전단계에서, 사회의 성공적인 조직을 운에 맡길 수는 없다. 널리 보급되어 있는 추세는 “얼렁뚱땅”의 정신으로는 성공적으로 영향을 받거나 왜곡될 수 없다. 상황의 압력이 증가하고 민주적 문명에 대한 위협이 점점 명백해지는 한, 왜 우리의 사고관행이 변환되지 않아야 하는가에 대한 어떠한 논리도 없다.
만일 우리가 사회세력들을 효과적으로 감독하려한다면, 우리는 단기적인 이익들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것에 몰입해서는 안 된다. 새로운 정책형태는 아주 높은 차원의 지각, 그리고 실험을 좋아하는 의식에서만 성공할 수 있다.
만일 이 역사의 국면에서, 상황이 우리를 통제하도록 하는 대신에 우리가 당면한 상황을 통제하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모든 이용가능한 과학적 에너지들을 민주체제의 위기와 파멸의 원인들을 연구하는데 사용해야한다. 동시에 우리는, 독재국가들에서의 심리적 변화와 제도상 조직의 발달이 기본적 상황- 후기산업시대에서 보편적이 되고 있는 상황-에 반응하는 상이한 방법들이 있다는 것을, 편견 없이 이해하려고 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의 연구는, 비록 우리가 독재적인 해결책들을 모방해야한다는 의미는 아니더라도, 너와 관련된 문제 (tua res agitur)라는 느낌에 의해 널리 보급되어져야한다. 반대로, 우리는 그 상황을 연구하는데 우리스스로 몰두함으로써, 우리 가운데 유사한 위기가 발생한 때에는, 우리 자신의 방법인 서양민주전통의 정신으로 그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 전체주의적 해결책은 이 국가들이 갑자기 연루되어 구체적인 난관들을 다루어야 하는 현혹적 시도일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망각하지 않아야한다. 사생활에서조차, 개인은, 그가 상황을 이론적이며 실제적으로 통제하지 않을 때에는, 공격적으로 행동하고 타인의 자유에 독재적 제약을 가하려한다. 정신적 속박은 종종 무지의 무력함과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때문에 위기의 시대에 자유민주사회의 난점들과 그 사회의 실패를 이해하고, 독재정체라 불리는 강요된 해결책들을 연구하는, 양자 모두가 중요하다.
이것이 독재적 요소들을 계획과 분리되어야 얼마간의 희망이라도 있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아마도 정치사의 다음 국면에서, 사회적 장치들은, 한편으로는 계획되지 않은 사회적 과정에서 발생되는 혼돈을 피할 수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권력과 독재의 팽창을 기본적으로 목표로서 취급되지 않도록 보장하기 위해서, 자유와 계획의 원리들을 결합할 사회적 장치들이 발견될 수 있다. 이것은 오직 사고, 실험, 그리고 정치적 행동에 의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정치적 문제를 권력의 문제로도 그리고 성공적이거나 또는 성공적이지 않은 사회조직의 문제로도 사료하는 버릇이 들면 들수록, 그 사람이 전자의 측면은 물론 후자의 측면도 강조해야 되는 것처럼 보여서 이상주의자가 덜 되지는 않는다. 이것이, 얼마나 개인적 자유들(individual liberties)*을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효율성 양자를 보전하기 위해 제약하지 않고 남겨둘 것인가를 결정하는, 사회적 통제들의 결합을 발견하는데 우리의 모든 지적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도록 만든다.
본서에서 채택한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옹호하는 방법은 통상적 방법과는 차이가 있다. 그 통상적 방법은, 문제를 단순히 이념적인 것으로 사료하지 않고, 어떤 종류의 자유, 민주주의, 그리고 문화가 개조된 사회체제하에서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구체적인 사회적 분석의 수단으로 설명하려한다. 자유, 민주주의, 그리고 문화에 대한 통상적인 옹호는, 자유가 본질적으로 연대화보다 양호하고, 자결은 독재보다 좋고, 자생문화가 개성표현에 대한 검열보다 좋다는 것을 제시함으로서 논의를 일반적으로 종료시키기 때문에, 이념적이라고도 기술할 수 있다. 어떠한 이성적인 사람도, 문제가 추상적인 형태로 발생하는 한, 이 이념적 방법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에게는 이것이 너무나 시시한 승리로 보인다. 우리는 오늘날 어떠한 추상적 형태의 자유가 어떠한 추상적인 형태의 연대화보다 나은가 여부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다. 오히려, 문제는 서로 다른 국가들에서 어떠한 구조적 변화가 19세기에 널리 보급되었던 자유, 문화, 그리고 민주주의의 유형이 몰락에 이르게 됐는가를 발견하는 것이다. 우리가 깨달은 재난적인 상황은 진단될 수 없고, 고전적 자유주의에 관한 논쟁들이 상대적으로 발달되지 않은 사회학과 함께 그 논쟁을 그저 반복하고, 이전의 사회발달단계에서 그리고 완전히 다른 구조에서만 타당한 분석들에 적용하여 스스로 치유되도록 홀로 놔둔다.
이 긴급한 문제들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단지 이념적 가정들 또는 보편적인 적용을 위한 추상적 원리들로서 사료하는 한,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우리는 자연과학자가 동물학상의 종(種)을 조사하면서 그 종이 생존할 수 있는 독자적인 환경과의 관계를 연구하는 것처럼, 우리가 사회학적으로 그 문제들을 분석하는 위치에 있을 때만, 그 문제들을 진정으로 해결하려고 고심하기 시작한다. 동일한 방법으로 정치조직에 관한 원리들과의 관련성은, 기구(機構)가 사회에서 기능하도록 허용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 기구를 폐지시키는 사회과정들을 인지하는, 경험적 수단에 의해서만 발견될 수 있다.
그러나 사회만을 대상으로 하는 경험적 분석에 의존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경험주의는, 만일 이론이 새로운 문제들과 확대된 경험에 적합하도록 구성된다면, 이론적 질문들에 대해서만 응답한다. 한때 자유와 계획에 관한 대립된 개념들이 진정으로 조화되지 않는가 여부에 대한 가설적 질문은, 우리가 기꺼이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을 바꾸고 새로운 사고수준에 도달하지 않으면 응답할 수 없다. 오로지 양자가 사상(事象)들에 대한 가설적인 자연 질서를 방해하기 때문에, 맹목적 규제와 충분히 숙고된 계획 간의 명확한 구별을 하지 않는, 그 사람들은 사려 깊게 계획된 사회와 독점적 집단의 이기적 책략 간의 차이를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 전제주의자의 관료제를 방어하는데 유용했던 말투를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은, 왜 계획이 오늘날 자유주의가 국가간섭에 대해 투쟁했던 시대의 관료적 간섭이 의미했던 것과는 약간 다른 의미여야 하는가를 절대 이해할 수 없다. 계획이라는 말이, 만일 그것이 우연한 간섭과 조정된 통제 간을 구별함이 없이 모든 종류의 규제를 포함한다면, 왜 바로 이 세대에서 계획이 진정한 유의의를 갖기 시작해야 하는가에 대해 너무 모호하여 어떠한 단서도 제공할 수 없다.
누구든지 모든 정치적 사유가, 시대의 특수한 여건에 따라서, 그 사유의 근본적 의미인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ad hoc)가 자동적으로 형성된다는 것을, 이 보기에 의해 논증할 수 있다. 이 기본개념들에 대한 보다 철저한 분석은, 사람의 연령에 따른 사회적 및 정신적 경험들의 고유한 특질들을 절대적인 것처럼 고려하고 그래서 아이디어에 대한 일반적 정의에 그 경험들을 포함하는, 무의식적 경향을 항상 나타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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