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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부운

망부운

양회석 (지은이)
  |  
전남대학교출판부
2019-02-25
  |  
12,0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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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부운

책 정보

· 제목 : 망부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신화/종교학 > 중국의 신화와 전설
· ISBN : 9788968496042
· 쪽수 : 258쪽

책 소개

전남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총서 12권. 한반도의 백의민족에게 망부석이 있다면, 중국의 소수민족인 백족에게는 망부운이 있다. 돌아오지 않는 낭군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그대로 돌이 되어버린 여인! 이것이 망부석이다. 망부운도 기본적으로 같다.

목차

1. <망부운>을 말하는 이유 / 7
2. 백족과 민간설화 <망부운> / 11
2-1 백족과 사라진 왕국 / 11
2-2 민간설화 <망부운> / 20
3. 정율성과 오페라 <망부운> / 31
3-1 정율성과 아련한 조국 / 31
3-2 오페라 <망부운> / 48
4. 소수민족의 애잔한 자화상: 민간설화 <망부운> / 133
4-1 머리말 / 133
4-2 설화 <망부운>의 탄생 / 135
4-3 <망부운>의 채록과 그 배경 / 144
4-4 <망부운>의 장르적 특성 / 157
4-5 <망부운>의 심층 함의 / 161
4-6 맺음말 / 167
5. 대중화주의의 편견: <망부운>과 <무산신녀> / 171
5-1 머리말 / 171
5-2 중심과 주변? / 173
5-3 두 설화의 문헌기록 비교 / 179
5-4 두 설화의 구전자료 비교 / 189
5-5 맺음말 / 196
6. 이방인이 품은 간절한 소망: 오페라 <망부운> / 199
6-1 머리말 / 199
6-2 설화에서 오페라로 / 202
6-3 아련한 조국 / 215
6-4 예술적 반역 / 222
6-5 맺음말 / 227
7. <망부운>에 거는 기대 / 231

부록 1. 백족 설화 <백왕의 전설>: 남조 국왕의 탄생 / 237
부록 2. 백족 설화 <녹각장 마을>: 나무꾼을 사랑한 공주 / 243
후기 / 255

저자소개

양회석 (지은이)    정보 더보기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중국문학으로 문학석사와 문학박사를 취득했다. 현재 전남대학교 중어중문학과 명예교수이다. 중국 복단대학과 양주대학, 일본 교토대학에서 방문학자로 연구했다. 저술로≪장자 내편-도와 함께 하는 웅혼한 삶≫, ≪장자 외편-젊은철인의길찾기≫, ≪노자 도덕경-아름다운 말 성스러운 길≫, ≪도연명 전집 1ㆍ2≫(공저), ≪고시원-한시의 근원을 찾아서 1ㆍ2ㆍ3≫(공저), ≪인문에게 삶의 길을 묻다≫, ≪서상기≫(역서), ≪소리없는 시, 소리 있는 그림≫, ≪어느 동양학자의 산띠아고 까미노≫ 등, 다수의 저ㆍ역서와 논문이 있다. 한국중국희곡학회 회장, 중국인문 학회 회장, 전남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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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1. <망부운>을 말하는 이유

광주시립오페라단 브랜드공연1
정율성 오페라
망부운

처음 듣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망부운(望夫雲)’이라는 단어가 어쩐지 친숙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아마도 ‘망부석(望夫石)’ 덕분이리라. 돌아오지 않는 낭군(夫)을 하염없이 바라보다(望) 그 자리에 선 채로 돌(石)로 굳어버린 여인! 이것이 망부석이니, 망부운은 글자 그대로 돌 대신 구름이 되어 버린 여인일 터이다.
<망부운>은 중국 대륙을 사이에 두고 우리와 지리적으로 대척을 이루는 지점에 살고 있는 소수민족 백족(白族)의 민간설화이다. 한민족이 살고 있는 한반도가 중국 대륙의 동북쪽에 있다고 한다면, 백족들이 모여살고 있는 대리백족자치주(大理白族自治州)는 운남성(雲南省)의 한 모서리로 대륙의 서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
정율성은 한반도에서 태어나 주로 중국에서 활동하였던, 항일투사이자 중국 3대 혁명음악가로 알려져 있다. 또 군가와 혁명 음악이 그의 음악 세계를 대변한다고 여기기에, 그가 오페라도 썼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게다가 그 오페라의 제재가 ‘특별’하다는 점을 아는 자는 더욱 적다. 정율성은 왜 하필이면 한민족이 사는 한반도와 정반대쪽에 살고 있는 백족의 민간설화를 주목했던 것일까?
백족은 그 명칭부터 우리에게 어쩐지 낯설지 않다. 유달리 흰색을 좋아해서 우리가 백의민족으로 자처하듯이, 그들 역시 하양을 좋아하기에 자칭 백족이라 일컬어지기 때문이다. 지금은 인구가 겨우 185만 남짓에 불과하고, 대리백족자치주를 중심으로 하는 아주 좁은 지역에 거주하고 있어, 백족은 중국의 전형적인 ‘소수’민족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때는 남조(南詔)와 대리(大理)라는 왕국을 세우고서, 중원의 당(唐)과 송(宋) 왕조에 당당히 맞섰던 역사를 갖고 있다. 백족이라는 민족적 정체성 역시 이들 두 왕국을 거치면서 형성되었는데, 이는 우리가 통일신라와 고려를 거치면서 한민족이라는 의식을 형성했던 점과 비슷하다. 비록 지금은 중국의 여러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로서 전형적인 ‘소수’의 애잔한 모습이지만, 그들은 여전히 화려한 과거를 기억하고 있다.
높은 창산(蒼山)을 등지고 드넓은 호수 이해(洱海)를 안고 있는 백족의 자치주 대리는 아름다운 곳이다. 그곳에는 겨울이면 특이한 자연현상이 발생한다. 창산의 여러 산봉우리 가운데 유독 옥국봉(玉局峯)에 매번 섣달이 되면 유난히 새하얀 구름 한 줄기가 피어오르는 것이다. 마치 고운 여인이 산봉우리에 서서 이해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서 뭇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그런데 이 구름이 피어나면 대리 일대에는 사나운 바람이 일고, 호수물이 순식간에 뒤집혀 흰 물결이 하늘을 찌른다. 호수 밑바닥에 있는 노새 모양을 하고 있는 너럭바위(돌 노새)가 물 위로 드러날 때까지 바람이 분다. 이를 백족 사람들은 ‘망부운’이라 불렀다. 이러한 자연현상에 백족들은 자신들의 화려한 과거와 애잔한 현재를 실었으니, 이렇게 해서 태어난 신화전설이 바로 <망부운>이다.
백족의 민간설화 <망부운>은 특이한 자연현상인 ‘망부운’을 이렇게 설명한다. 옥국봉에 피어오르는 구름은 남조 왕국 공주의 화신이요, 호수의 노새 모양의 너럭바위는 공주가 사랑하던 사냥꾼의 화신이라고. 공주와 사냥꾼은 신분을 뛰어넘는 지고지순한 사랑을 조상신의 도움으로 성취한다. 그렇지만 외래 종교와 결탁한 음모 세력에 의해 그들의 사랑은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그렇지만 공주와 사냥꾼은 이에 굴복하지 않고 구름과 너럭바위가 되어 저항하고 있다고 백족은 믿고 있다.
백족의 생활 터전에서 매년 일어나는 특이한 자연현상을 기반으로 자신들의 화려했던 역사와 애잔한 삶을 담고 있기에, <망부운>은 백족 고유의 설화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이를 보는 중원의 시각은 놀라울 정도로 뜻밖이다. 백족의 고유성을 애써 외면하거나 부정하는 것이다. 심지어 구체적으로 <망부운>은 중원의 신화전설인 <무산신녀>의 파생물이라고 꼭 집어서 주장하기조차 한다. 원래부터 소수민족은 한족의 영향 하에 있거나 아예 예속되어 있다고 보는 편견이다. ‘서북공정’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이런 점에서 백족 민간설화 <망부운>은 중심과 주변, 다수와 소수라는 현실적 논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거대 국가 중국의 야망이 결코 과거의 일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율성은 1957년 중앙민족가무단(中央民族歌舞團)을 따라 운남성을 방문하였을 때, <망부운>을 주목하였다. 그는 쉬쟈뤼(徐嘉瑞)가 장편서사시로 정리한 <망부운>에 크게 공감하고서 그와 함께 오페라를 창작하기 시작하였다. 1959년에 극본을 완성하여 두 사람의 이름으로 출판하였고, 1960년에 마침내 작곡을 마쳤다.
정율성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당시 일본식민지로 전락한 조국에서 태어나, 중국으로 건너가 조국의 독립에 헌신하였다. 마침내 일본이 항복하였지만, 정율성은 고향이 있는 남한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북한으로 파견되었다. 그리고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중국 정부의 요청으로 중국으로 돌아가서 여생을 마쳤다. 그가 오페라 <망부운>을 썼던 시기는 바로 동족상잔의 비극에 대한 아픈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였을 것이다. 게다가 중국 사회는 대중의 실제 삶보다는 이념 투쟁이 강조되는 ‘극좌’적인 분위기가 휩쓸고 있었다. 조국은 아련하고 현실은 암울했던 것이다. 이를 대하는 정율성의 내심은 어떠했을까? 오페라 <망부운>이 그 답을 들려줄 거라고 기대한다.
백족의 민간설화로서의 <망부운>이든지 정율성의 오페라로서의 <망부운>이든지, 읽고 보는 이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그래서 우리는 <망부운>을 넓고 깊게 찬찬히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2. 백족과 민간설화 <망부운>

2-1 백족과 사라진 왕국

중국 대륙 서남부에 위치한 운남성에는 한족(漢族) 이외에도 25개의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 백족은 이들 여러 소수민족 중의 하나이다. 백족의 백(白)은 희다는 뜻이어서, 우리 민족을 가리키는 백의민족을 연상시켜 준다. 백족은 총 인구수가 185만 8,063(2000년 기준)이며, 운남성의 대리백족자치주(大理白族自治州)에 약 80%가 모여살고 있다.
중국 한적(漢籍) 자료에 의하면, 원래 북인(僰人), 파인(擺人), 민가(民家) 등으로 불러 왔지만, 흰색을 유난히 좋아하는 민족이기에 그들의 요청에 의해 백족(白族)이라는 공식 명칭이 확정되었다고 한다. 백족은 초기에 운남성으로 내려온 티베트계 기마 목축민 문화와 남쪽 타이계의 논벼 경작 문화 두 가지를 받아들였고, 훗날에는 한족 문화와 접촉하며 영향을 크게 받았다. 오래 전부터 작은 규모의 국가 형태를 이루었던 것으로 보이는 이들은, 중원이 당(唐)나라였을 적에는 남조(南詔)를, 그리고 송(宋)나라였을 적에는 대리(大理)라는 통일 왕국을 세워 당당히 중원과 겨뤘던 민족이었다. 특히 남조 시절, 당나라의 20만 군대를 궤멸시킨 이른바 ‘천보전쟁(天寶戰爭)’은 남조가 중원에 예속된 한갓 ‘지방정권’이 아니었음을 잘 보여준다. 이처럼 당당하던 백족의 왕국은 13세기 몽골 군대에 의해 대리국이 멸망하여 그 지배 아래에 처하게 되면서부터 점점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고 만다. 특히 명(明)대에 이르면 강력한 한화(漢化)정책이 시행되었던 바, 한족 병사가 대량으로 토착화되면서 한문화의 유입이 한층 심화되었다. 위에서 말한 백족의 별칭인 민가(民家)는 백족 지역에 대규모로 주둔하던 한족 병사와 대를 이루는 개념이다. 즉 군(軍)과 대비를 이룬다는 의미에서 민(民)인 것이다. 아무튼 명나라의 강력한 한화 정책의 결과, 백족은 풍속이나 습관 등의 면에서 한족과 매우 유사하게 바뀌었다.
언어적으로 보면 백족은 티베트・버마 어군에 속하며, 고유 언어인 백어(白語)를 일상어로 사용하지만 다수가 한어(漢語)를 아울러 사용한다. 독립적인 문자는 없고 일찍부터 한자를 차용하였다. 7-8세기경부터 한자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10세기경에는 우리의 이두나 향찰과 비슷한 백문(白文)을 사용했다. 그러나 명대 이후 백문은 쇠퇴해 버렸고, 지금은 ‘대본곡(大本曲)’이라 불리는 우리의 판소리와 비슷한 설창예술의 대본 등에 사용될 뿐이다. 대중들이 일상에서 활용하는 상용문자가 아니었다는 의미이다. 백족의 일상 언어를 자연스럽게 표기할 수 있는 음성문자(한자의 차용이 아니고, 로마자화한 것)로는 1958년에 ‘백족문자방안’이 처음 제정되었고, 이후 몇 차례 수정을 거치면서 이를 보급하고 있는 중이다.
생업은 대리(大理) 분지의 경우 논벼 경작을 위주로 하나, 그 밖의 지역에서는 밀, 옥수수 등도 재배한다. 특산물로는 대리석과 전통 염색 등이 꼽힌다. 우리가 흔히 최고의 석재로 여기는 대리석은 대리에서 나는 돌이라는 의미인데, 고급 건축 자재로 쓰일 뿐만 아니라 각종 공예품으로 가공된다. 전통 염색은 찰염(扎染)이라고 부른다. 전통적 문양을 내기 위해 무명천을 먼저 실로 군데군데 단단히 홀친(扎) 다음 염색 통에 넣는다. 이렇게 염색을 마치고 그늘에 말린 다음 손바느질 했던 실밥을 뜯어내면 각양각색의 기하학적 무늬가 탄생한다. 지금도 현지인은 물론 외지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다. 백족은 건축 기술 또한 뛰어나 그들의 전통가옥은 아름다운 것으로 유명하다. 때문에 주변 민족의 가옥이나 사원의 건축에 그들을 목수로 초빙한다고 한다.
인구 숫자로 보면 백족은 중국의 55개 소수민족 가운데 제법 규모가 큰 민족처럼 얼핏 보인다. 아래 도표에서 볼 수 있듯이 14번째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때 중원의 제국과 당당히 겨루었던 왕국의 후손치고는 현재의 규모는 초라하다. 중국 땅에 거주하는 우리의 교포, 즉 조선족보다도 적으니 말이다.

다시 백족의 자치주인 대리의 실정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역시 초라할 정도로 좁은 지역이다. 한반도는 물론이거니와 남한에도 크게 미치지 못한다. 게다가 그 지역 안에서조차 백족은 ‘소수’일 뿐이다. 2015년 기준으로 대리의 인구가 358.44만 명인데, 그 중 한족(漢族)이 가장 많아 172.61만 명을 차지하는 반면, 백족은 121.79만 명에 불과할 따름이다. 나머지는 여러 소수민족이 차지한다. 백족이 차지하는 비중은 겨우 1/3을 넘는 정도이니 ‘백족자치’라는 말이 무색하다.
한마디로 백족의 현재 상황은 애잔하기 짝이 없다. 앞서 지적하였듯이 백족은 한때 중원의 왕조와 당당히 겨루는 왕국을 수립한 주인공들이었다. 남조는 13대 왕에 걸쳐 근 250년을 통치하였고, 대리는 22대에 걸쳐 300년을 넘게 통치하였다. 백족이라는 민족의식은 바로 이러한 남조와 대리를 거치면서 형성되었는데, 이는 통일신라와 고려를 거치면서 한민족이 형성된 것과 비슷하다. 또한 남조와 대리의 영토 역시 상당한 크기를 자랑했다. 최소한 한반도를 크게 뛰어넘는 크기의 강토를 보유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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