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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문화/문화이론 > 종교문화
· ISBN : 9788970095370
· 쪽수 : 400쪽
책 소개
목차
머리말
1. 불교, 교리로 읽는다
신이 아닌 인간의 종교 / 석가+모니+불 / 부처님이 열반한 해가 기준! / 깨달음의 목적과 그 방법 / 뒤탈 없이 가장 편안하게 잘사는 방법 / 대답할 가치가 없는 소리 / 바로 이것 / 60명의 예순 가지 그림 / 헤르만 헤세와 무아 / 신과 진리의 차이 /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 신들의 나라와 인간의 나라 / 반야의 이해 부족 / 선, 유치한 발상 / 보시, 부끄러운 몸짓 / 재가자를 위한 배려 / 출가와 재가의 역할 구분 / 수행과 문화권의 차이
2. 불교, 역사로 읽는다
대승의 일방적인 표현 / 보다 대중적이고 쉬운 불교 / 비밀불교 /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 변화에만 치중했던 비극 / 초세속적인 불교와 세속적인 호국의 만남 / 순간적인 깨달음과 순차적인 깨달음 / 끝나지 않는 돈점논쟁 / 조계산에 의지해 있다 / 중국식으로 개조된 변형불교
3. 불교, 문화로 읽는다
플라스틱 과일로 제사를 지내다? / 차 말고 우유! / 수행자의 옷 / 낡은 옷의 화장 / 발우 / 부처님이 그리워 조각하다 / 오래도록 밝은 등 / 수미산과 사찰 / 천국과 극락 / 탑과 부도 / 울긋불긋 단청 / 걸식과 보시의 문화구조 / 천사와 천진불 / 승려와 노동 / 막대한 복을 쌓은 마왕 / 육식과 혐오식품 / 부처님이 두 번이나 금지한 개고기 / 걸식과 5신채 / 율장과 청규의 아이러니 / 탑의 유래 / 염라대왕 / 제와 재의 착각 / 사후 세계와 49재 / 민간요법과 주문 / 인간복제 / 상상의 꽃 / 닥꽝과 짜장면 / 남녀차별과 축원장 / 무분별의 속뜻 / 인과법에 도전장을 내밀다 / 숭고한 아름다움 / 미꾸라지와 용 / 인도 용과 중국 용 / 제사는 쇼일 뿐이다 / 부처님 뼈에 대해 논하다 / 인도사리와 중국사리 / 매트릭스와 금강경 / 비둘기와 까마귀의 운명
4. 불교, 인물로 읽는다
출가인은 왕에게 절하지 않는다 / 원효는 승려인가 / 법장의 핸디캡 극복 / 가장 짧은 졸업논문 / 김교각과 원측
5. 불교, 윤리로 읽는다
다름의 미학 / 유목문화와 농경문화 / 치사랑과 내리사랑 / 차별의 시대는 끝났다 / 상하문화와 좌우문화 / 결혼만 하지 않는 사회 / 음식이 남으면 과감히 버려라 / 고기 먹는 승려 / 오른쪽과 왼쪽 / 제사의 명암
6. 불교, 스마트폰으로 읽는다
빨리빨리와 통신 / 리니지의 모순성 / 일방통행과 쌍방향 / 완제품과 미완의 제품 / 삼성과 애플 / 스마트 세상과 화엄의 세계관 / 스마트 세상과 선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부처님은 스스로도 말씀하신 것과 같이 뭇 생명들을 어리석음에서 깨달음으로 인도해 주시는 ‘길잡이(導師)’이신 분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의지의 대상이 될 수는 있어도 믿음의 대상은 아닌 것이다.
부처님과 같은 경우도 차를 마시지 않았다. 이는 부처님께서 율장에서 스님들에게 녹수낭(?水囊, 거름망)으로 물을 걸러 마시라고 하는 것을 통해서 분명해진다. 녹수낭의 사용은 그 속에 혹시나 생명체가 있을까를 우려한 것이다. 이는 인도가 물이 풍부한 지역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 동시에 차가 필요하지 않음을 나타낸다. 사실 부처님과 인도불교만을 놓고 본다면, 차보다는 우유가 훨씬 더 적합한 음료이라고 하겠다.
원효의 이러한 천재성과 위대함이 때로는 인식의 오류를 불러오는 경우가 있다. 그 가장 대표적인 것이 원효가 출가자라는 인식이다.
원효가 고의로 파계하여 김춘추의 딸이었던 요석공주와의 사이에서 설총을 낳게 되는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이다. 이러한 돌연한 행동은 신라라는 철저한 신분제 사회에 갇힌 원효가 울분을 토하는 한 방식이었다. 또한 이는 동시에 이후 그의 사상이 거사라는 보다 자유로운 신분을 통해서 민중불교 쪽으로 전향되게 되는 중대한 계기가 된다. 이는 원효가 스스로 파계를 행한 뒤 자신을 소성(小姓 혹 卜姓)거사, 즉 ‘미천한 거사’라고 자임하고 나선 것을 통해서 분명해진다.
원효는 자신의 행위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으며, 또한 자의에 의해서 자신의 삶을 변화시켰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원효 사후 그를 모신 소상(塑像)은 거사상(居士像)에 다름 아니었다. 혹자는 원효가 8지(地) 보살이었기 때문에 이 같은 무애행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이는 재가보살일 뿐이므로 원효를 출가인이라 일컬을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