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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71932711
· 쪽수 : 280쪽
· 출판일 : 2024-10-17
책 소개
목차
에세이집을 펴내며
1 >>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내 고향 학사평 • 대청봉을 바라보며 • 엄마의 ‘동동구리무’ • 연애편지 • 식구 생각 • 꿈에 본 아버지 • 부의금 노트
어머니와의 이별연습 • 차례를 지내며 • 나의 어버이날 • 수능시험 • 63빌딩
2 >> 그리워라, 옛 동무들
꼬꼬들의 합동축제 • 고교 졸업 기념문집 <젊음> • 옛날 편지 • 대학생 야학 선생님 • 초등학교 여동창과의 만남 • 깜박 잊은 친구 아들 결혼식 • 친구의 결혼 25주년 • 이런 만남도 있었네
3 >> 가르치고 배우고
몽당연필 • 꿈을 꿀 수 있는 용기 • 박사과정을 끝내고 • 열정 • 명함 • 연구실 • 제자의 선물 • 정년퇴임 • 게재 불가 논문 • 나의 식육학 연구 • 정년 후의 인생 • 휴식하는 법 • 인도네시아 제자의 눈물 • 탄자니아 연수생들
4 >> 선인들에게 배운다
도산 안창호 • 백범 김구 • 이당 안병욱 • 박경리와 소설 『토지』 • 시인 한하운
5 >> 나를 돌아보게 하는 기행
겨울 산 • 오세암의 밤 • 금병산 • 공지천 • 마적산 • 남한산성 • 울릉도 • 영남 기행 단상 • 북간도 • 일송정 푸른 솔은 • 반 고흐 미술관 • 벨기에에서 맞은 성탄절 •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
6 >> 교수가 본 세상
축구 4강 진출 • 영원히 고정된 것은 없다 • 양극화가 세상을 망친다 • 만들어진 오리엔탈리즘 • 몸의 가치 • 금강산도 식후경 • 풀 냄새와 피 냄새 • 광우병 • 구제역 • 조류인플루엔자(AI) • 두 젊은이 • 쌀 두 말로 바뀐 운명 • 연탄 나누기 봉사
7 >> 이런 생각 저런 생각
단상 1
시공 / 어느 날 / 시간 / 봄 / 입추 /세월 / 나이 / 흰머리 / 자네 / 친구
단상 2
뭉게구름 / 눈 / 낙수 / 노폐물 / 코로나 / 청양고추 / 한국화 / 옹이 / 강의
단상 3
아름다움 / 독백 / 혼돈 / 집착 / 설렘 / 그리움 / 느림 / 흔들림 / 관계
저자소개
책속에서
●에세이집을 펴내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래서 자기의 생각을 외부로 발산하고 싶은 본능이 있다. 곧 인간은 자기의 생각과 느낌, 알고 있는 사실을 표현하고, 또 타인에게 전달하고 싶어 한다. 아주 오래전의 인류가 그들의 일상을 바위에 새긴 것이 그 증거이다. 심지어 알타미라의 어두운 동굴에서도 그림으로 그들의 생활상을 표현하려 했다. 사회적 동물로서 인류의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내면의 자기 생각을 드러내 보이려는 행태는 두 가지 형식으로 전개된다. 하나는 일기와 같이 자기만의 고백을 기록하여 간직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의 내면세계를 타인에게 알려 공감을 얻거나 인정받고 싶어 하는 심리이다.
내면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자기만의 고백으로 진행될 때는 훨씬 자유롭다. 그러나 대개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타인과 공유하거나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으로 발전한다. 자기표현에 대한 모순된 욕망의 심리이다. 그래서 자기 글을 남에게 보이려고 생각하는 순간, 바로 글쓰기는 심적 부담으로 다가온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강조하거나 자세히 설명하려 들기 때문이다.
근래에 나는 대학에서 정년퇴임을 하고, 약간의 아쉬움과 홀가분함 속에서 중장년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나의 전공은 농업, 그중에서도 식육학食肉學이었다. 말하자면 내 전공은 자연과학 중에서도 응용과학의 영역이다. 그러하니 지금까지 전공을 살려 강의용 교재 등 여러 권의 식육학 관련 책을 썼지만, 그것은 드라이한 과학서일 뿐이었다.
이제 퇴직으로 식육학의 현장을 떠나고 보니 인간의 삶, 곧 인간과 사회를 아우르는 삶의 넓은 스펙트럼을 내 사유의 목표로 삼고 싶었다. 나는 그 목표를 그리워하는 본능적 열정과 현실적 능력의 한계 사이에 고민하고 있다. 그래도 꿈을 찾아 한발 한발 나가다 보면 그 간극을 줄일 수 있을 것이리라 믿었다.
그러나 막상 컴퓨터 앞에 앉으면 혼란스러운 생각에 주저주저하게 된다. 내 생각을 정리하여 글로 표현하는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기를 쓰듯, 자기 생각을 고백하면 글쓰기가 쉽다는 점을 안다. 일기책은 나만의 비밀스러운 창고이니, 잘 쓰고 못 쓰고 남을 신경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작가는 독자의 반응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내가 전에 벨기에 겐트대학교 방문 연구교수를 끝내고 귀국하여 『벨기에 이야기』라는 책을 출간했을 때, 어느 친구가 “유럽으로 출발하기 전부터 책을 내고자 계획하셨군요”라고 덕담을 했다. 그러나 벨기에 체류기를 쓸 목적으로 여행을 하고 글을 썼다면 책으로 출간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그냥 순수하게 내가 보고 체험하고 느낀 사실들을 단순 기록한다는 생각으로 썼기 때문에 글이 모일 수 있었고, 그래서 그 글들을 정리하여 책으로 펴낼 수 있었다.
연구소와 대학에 몸담았던 동안, 바쁜 일상에서 잠시 일탈하여 안식할 수 있었던 것은 나와의 대화였다. 가끔 생활에서 느낀 생각이나 자연에서 받은 단상을 적어 두곤 했다. 일종의 내 시공간에서 즐기는 취미였다. 분명 자연과학도의 책무와는 거리가 먼 영역이다. 아마도 그런 행위가 나에게는 그리움과 안식처를 제공했고, 때로는 놀이였나 보다. 글을 통해 자신과 소통하며 위로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그 글들이 쌓여 내가 살아온 작은 역사가 되고, 삶을 바라보는 나의 눈이 된 것이다.
몇십 년 동안 간간이 써 놓은 기록이 이제 버리기 힘든 유산이자 계륵鷄肋이 되었다. 새삼 돌이켜 보니 기록은 존재에 관한 확인 작업이었고, 고독에 대한 위로였다. 그리고 나를 지탱하고 이끈 꿈의 실천 행위이기도 하였다. 이번에 용기를 내어 그 글들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였다. 오래 묵은 체증이 가시듯이 시원하면서도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다.
이 글들을 모아놓고 보니, 안식하고 싶다는 본향에 대한 그리움, 나이를 먹어가며 변해가는 일상사에 대한 소박한 고찰, 산과 들을 돌아다니면서 얻은 자연 과 생명에 대한 사색, 대학 시절부터 몸담아 온 흥사단 활동과 민족에 대한 관심 등으로 나눌 수 있었다.
책으로 묶으면서 지극히 개인적이거나 힘들고 슬픈 내용은 제외하였다. 그렇지만 유년과 청소년 시 절부터 중장년에 접어들기까지 가슴에 머물렀던 속살은 모두 들춰내었다. 이 책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독자들이 이 고백에 공감할 수 있다면 나에게는 큰 기쁨이다. 우리 모두 호모 사피엔스이니 말이다.
2022년에 출간된 『세상의 모든 고기』에 이어, 이 책도 나의 둘째 딸 지수가 솜씨를 발휘해 삽화를 그 려줘 아버지로서 흐뭇하다. 지수의 도움으로 책이 훨씬 예뻐졌다. 『벨기에 이야기』(2003)부터 인연을 이어 와 『세상의 모든 고기』(2022)도 출판해 주신 학민사의 양기원 대표가 이 책도 맡아주셨다. 너무나 감사하다.
라일락lilac은 우리말로 수수꽃다리이다. 원뿔 모양의 꽃차례에 달리는 꽃의 모양이 수수를 닮아 ‘수수꽃다리’라고 한단다. 4월이면 수수꽃다리의 매혹적인 향기가 사방으로 퍼진다. 꽃말은 ‘첫사랑, 젊은 날의 추억, 우정’ 등이다. 그래서 라일락은 그 진한 향기로 인해 젊은이들에게 어울리는 꽃이다. 꽃의 이미지보다 향기로 인한 느낌이 더 강렬하다.
라일락 향기와 관련한 여러 추억이 있다. 라일락 향기는 어릴 적의 ‘동동구리무’와 ‘박가분’을 생각나게 한다. 나의 어린 시절, 부모님은 농사일 때문에 언제나 바쁘셨고, 자식들에게 보리밥과 죽이라도 먹이려고 애쓰셨다. 그러니 자식의 공부보다 당장 먹고사는 일에 급급하셨다.
새벽 일찍 밥을 해놓고 논밭으로 나갔다가 어두워지면 집에 돌아오셨던 어머니였다. 내가 기억하는 어릴 적 어머니의 얼굴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