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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사상/사회사상사 > 사회주의/공산주의
· ISBN : 9788971996393
· 쪽수 : 1124쪽
· 출판일 : 2015-01-26
책 소개
목차
개정판 서문 7
개정판 옮긴이 서문 10
한국어판을 내면서 15
옮긴이 서문 18
머리말 28
서장 38
21세기의 초엽에 서서: 소련 붕괴 후의 북한 - 이정식 42
1부 식민지 시대
제1장 한국 공산주의의 기원
1. 시베리아에서의 한인 급진주의 70
2. 중국과 민주에서의 한국 공산주의 80
3. 소련과의 협상 87
4. 분열의 심화와 코민테른의 간섭 93
5. 아시아 공산주의운동의 파종播種 101
6. 자유시사변과 그에 따른 영향 108
7. 모스크바의 극동 ‘피압박인민대회’ 114
8. 파벌투쟁의 심화 127
9. 지령에 의한 화해 131
10. 국내의 공산주의 134
11. 초기 국면의 개요 148
제2장 시련의 시기
1. 파벌투쟁의 지속 158
2. 제2차 조선공산당과 그 와해 164
3. 제3차 조선공산당 181
4. 제4차 조선공산당과 당의 해체 185
5. 코민테른, 안내자와 개혁자 188
6. 민족주의, 공산주의, 협동전선 193
7. 국제노선의 좌경화와 그 반향 211
8. 협동전선의 해체 219
9. 프롤레타리아 문예운동 230
10. 제1세대 한국 공산주의자들의 사회경제적 배경 234
11. 실패와 그 근본 원인 244
제3장 노동자, 농민, 유격대
1. 1925년 이후 만주에서의 한인 공산주의운동 256
2. 중국 내에서 한인 공산주의자들의 활동 297
3. 소련의 역할 310
4. 일본 내의 급진적 한국인들 311
5. 1928년 이후 국내의 공산주의 322
6. 김일성의 등장 338
7. 1945년 이전의 한국 공산주의에 대한 몇 가지 관찰 375
2부 해방 후(1945~1953년)
제4장 미군정기의 한국 공산주의
1. 조선인민공화국의 출현 387
2. 남한에서의 공산당 출현 394
3. 미국의 초기 정책과 한국의 ‘좌익’ 399
4. 공산당의 강령 402
5. 파벌투쟁 405
6. 당과 외곽단체의 강화 415
7. 경쟁적 합작 공세 435
8. 남한공산당 내부의 투쟁 455
9. 남로당의 조직구조 465
10. 공산당과 미군정 간의 격증하는 충돌 468
11. 공산폭동과 군부반란 479
12. 평가 484
제5장 소련 ‘후견’하의 북국 공산주의
1.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권력 참여 490
2. 김일성의 등장 503
3. 민족주의자들에 대한 탄압 527
4. 새로운 공산국가의 구조와 정책 531
5. 북한에서의 통일전선운동 544
6. 북조선노동당의 창립 551
7. 해방 이후 일 년간의 주요 흐름 562
8.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립 565
9. ‘국내파’에 대한 탄압 581
10. 소련 대對 미국 587
제6장 한국전쟁과 북한
1. 공산주의자들의 정치적 통합과 재편 596
2. 군사력 강화와 전쟁의 발발 602
3.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3차 전원회의 618
4. 제4차 전원회의와 그 여파 623
5. 전시의 주요 문제 630
6. 정전과 박헌영 일파의 숙청 661
7. 정전 무렵의 북한 682
3부 북한
제7장 강행군의 시대
1. 당의 재건 704
2. 전후 초기의 최고 정치 엘리트 721
3. 당의 기초 확립 728
4. 군소 정당과 통일전선 735
5. 당의 대 사회단체정책 741
6. ‘특수 문제’로서의 지식인 문제 744
7. 군과 정치 749
8. 당내 무기로서의 민족주의의 등장 752
9. 탈脫스탈린화와 조선노동당 제3차 대회 760
10. 1956년 당시 조선노동당의 성격 763
11. 정치적 위기 769
12. 종파주의 문제의 해결 776
13. 김일성의 패권 789
14. 소련의 모델에 따른 경제발전 793
15. 3개년계획하의 농업정책 801
16. 3개년계획의 평가 803
17. 5개년계획 804
18. 변혁기의 통일정책과 외교정책 815
제8장 유일체제의 형성
1. 유일체제 형성의 정치학 846
2. 조선노동당 제4차 대회 852
3. 경제발전과 그 목표 860
4. 공산주의 세계의 동요 866
5. 통일 문제 882
6. 당내 독재와 유일사상을 향하여 888
7. 전쟁 준비의 강조 891
8. 최고위 간부들의 숙청 902
9. 조선노동당 제2차 대표자회 904
10. 세 발로 걷기: 1960년대의 경제적 성과 922
11. 국제관계에서 주체사상의 적용 928
12. 비틀거리는 ‘남조선해방’ 투쟁 967
13. 제5차 당 대회 977
14. 제5차 당 대회 이후 997
15. 미래를 향하여 1019
옮기고 나서 1023
이정식-한홍구 대담: 이정식이 걸어온 학문의 길 1025
참고자료 1081
찾아보기 1091
리뷰
책속에서
소련 붕괴의 가장 큰 피해자가 누굴까 묻는다면 물론 그 제도하에서 생활을 영위하던 수천수백만의 주민이었다고 할 것이다. 특히 이 제도하에서 은퇴하여 생활보조금을 받고 있던 수많은 노인은 졸지에 거지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소련 국외를 살펴보면 소련의 원조에 의존하고 있던 군소 국가들도 극심한 타격을 받았다. 소비에트연방 체제가 무너지면서 통상교역도 끊어지고 대외원조를 계속할 기관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1991년 12월 소련 붕괴 당시 북한은 김정일 총비서의 통치하에 놓여 있었는데 뜻하지 않았던 이 일은 김정일과 북한에 두 가지 난제를 안겨주었다. 하나는 격심한 경제적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소련 붕괴를 설명하는 일이었다. 두 번째 문제가 경제 문제 못지않게 중요했던 것은 소련 붕괴는 북한 체제가 신봉해왔던 마르크스의 유물사관唯物史觀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44쪽)
외교안보 문제의 해결을 통한 대외환경의 개선은 북한 경제 재생의 열쇠라고 하겠다. 외교정상화에 따른 해외로부터의 투자와 외화 유입은 북한이 이미 발표한 30개에 육박하는 각종 경제개발구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그리고 남한과의 경제협력과 교역이 가져올 이익 그리고 국제적 경제협력과 교역이 가져올 이익에 대해서는 언급할 필요도 없다.
21세기 초 조선로동당은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소련 붕괴라는 돌변 상태에 처한 김정일 총비서는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을 포기하는 용단을 내렸다. 그 대신 그는 ‘사랑과 믿음’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당의 건설을 약속했다. 과연 그가 지향했던 ‘어머니당’은 어떠한 경제체제를 택해야 할 것인가? 소련이 붕괴된 전후를 통해 러시아뿐 아니라 중국, 베트남, 쿠바 등 여러 나라는 참으로 다양한 실험을 거듭했는데 배울 것이 많다. 세계는 과연 김정은 제1비서가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지 주시하고 있다. (63쪽)
초기 단계의 한국 공산주의운동이 갖는 의미를 다각도로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그 당시 아시아 공산주의운동이 질서가 잡히고, 세력이 강대하며, 새로운 소련 지도자들이 이에 대해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그릇된 판단이다. 상황은 흔히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혼란스러웠다. 레닌주의는 무척 강력한 것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법을 지닌 것은 아니었다. 당시 서구의 대對아시아정책과 비교해보면 레닌주의의 장점은 쉽게 나타나지만, 엄격한 아시아적 관점에서 볼 때 레닌주의는 그 기본적인 장점과는 무관한 약점들을 지니고 있었다. 레닌주의가 초기에 극동에 미친 영향력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이들 약점을 더욱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아마도 여기에는 이론과 실천의 양면에서 핵심적이고도 상호 관련된 두 가지 문제가 놓여 있을 것이다. 첫째는 민족주의와 공산주의의 관계 문제이고, 둘째는 혁명단계에 관한 문제다.
이 시기의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아시아의 공산주의는 민족주의운동을 지원해야 하며, 부르주아 민주혁명을 조장하고, ‘민주혁명’의 첫 단계로 아시아와 서구 간에 높아져가는 불화를 이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대내적인 공산주의운동은 육성되어야 했으며, 그들의 순수성과 단결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수호되어야 했고, 공산주의자들은 결정적인 2단계에 지도력을 장악하기 위한 준비를 갖춰야만 했다. 레닌주의는 어떤 목적을 위해 일정 기간 민족주의와 공산주의가 서로 협력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전제 위에 서 있었지만, 레닌은 이 두 가지 운동의 어떤 동화同化에도 전적으로 반대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공산주의운동은 최고의 충성대상이어야 하고, 그 독자성을 유지해야 하며, 엄격하고 순수하며 확고한 국제주의 원칙에 입각한 것이어야 했다. 이 점에 관한 한 초기의 한국 공산주의자들은 레닌 정부에 크나큰 실망을 안겨주었다. (중략)
이 무렵의 사건들은 공산주의 이론과 실천의 상호관계에 대한 흥미로운 내막을 잘 드러내 보여준다. 마르크스와 레닌은 공산주의와 아시아 양자에 대한 기본적인 이론적 가정에서 ‘오류’를 범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이런 가정에 입각해 이루어진 똑같이 기본적인 전술적 결정에서는 ‘정당’했던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런 역설을 받아들이지 않고는 극동에서 공산주의의 역할을 이해할 수가 없다. 마르크스와 레닌은 모두 민족주의와 공산주의가 동화될 수 없다거나 동화되어선 안 된다고 가정하는 오류를 범했다. 그러나 레닌이 공산주의운동은 민족주의를 이용하고 민족주의와 손잡고 이를 통해 일해야 한다고 가정한 점은 올바른 것이었다. 사실상 아시아에서의 공산주의는 민족주의를 지속적인 기반으로 삼아 민족주의와 통합되고 상호작용할 수 있었던 곳에서만 성공을 거두었다. 만약 이것이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기본적인 교의 중 하나, 즉 민족주의와 공산주의는 동화될 수 없다는 교의와 모순되는 거라면 그 교의에는 많은 오류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더욱 중요한 또 다른 교의, 즉 마르크스주의는 ‘성공한’ 혁명의 과학이라는 교의를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다. (148~149쪽)
1930년에 접어들자 동북아시아의 공산주의운동은 절망적인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민족주의운동을 장악하려던 도박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물론 일본에서는 이런 기회가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 일본의 공산주의자들은 민족주의운동과 투쟁해야 했으며, 반제국주의 혹은 소련에 치우친 국제주의를 받아들였다. 그들에게는 러시아만이 진정한 조국이었다. 이와 달리 중국 공산주의자들은 통일전선을 이용해 민족주의를 자신들의 무기로 삼는 단계까지 거의 도달했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 이들은 실패했고, 민족주의는 국민당의 무기가 되고 말았다. 한국에서도 공산주의운동이 민족주의운동에 흡수된다면 자신들도 광범위한 민족운동의 지도력을 상실하게 될 거라는 이론을 따르는 젊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전도유망했던 민족단체 신간회가 해산되었다.
동북아시아의 어느 곳에서나 공산주의운동은 기본적으로 이론에 도취된 젊은이들에 의해 전개된 소부르주아운동이었으며, 학생·노동자·농민에게 영향을 미치기 위해 산발적인 행동을 취하는 사상단체들의 운동이었다. 그러나 농민들은 이 시기가 끝날 때까지 거의 조직되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단지 몇몇의 산업 중심지에서만 조직되었으며, 이들이 급진주의를 위해 치러야 했던 대가는 너무나 큰 것이었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운동을 저버렸다. 다만 끊임없이 배출되는 젊은 학생층만이 급진주의의 메아리를 들을 수 있었고, 따라서 당의 소부르주아적 성격은 영속화되었다. 그러나 1930년 중국은 또다시 예외에 속했다. 학생이나 도시노동자와는 동떨어진 지역에서 새로운 공산당이 출현했다. 이로써 중국의 공산주의자들만이 농민과 농업혁명에 중점을 두라는 코민테른의 새로운 권유를 실천에 옮길 수 있었다. (250~25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