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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운동지혈사 - 하

한국독립운동지혈사 - 하

박은식 (지은이)
  |  
서문당
1999-02-10
  |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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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운동지혈사 - 하

책 정보

· 제목 : 한국독립운동지혈사 - 하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사 일반
· ISBN : 9788972433927
· 쪽수 : 236쪽

목차


제1장 민족의 약력
제2장 甲申獨立黨의 혁명 실패
제3장 甲午東學黨의 대풍운
제4장 日本人의 閔妃弑害와 儒林의 義擧
제5장 독립협회의 활약
제6장 日本人이 이권을 침탈하고 억지로 의정 6조를 체결하다
제7장 保護勒約에 국민이 크게 통곡하다
제8장 만국평화회의의 밀사
제9장 伊藤이 황제를 핍박하여 선위케 하고 7조협약을 강제로 체결하다.
제10장 伊藤이 軍隊를 다 해산시키고 參領 朴勝煥이 자살하다
제11장 各地義兵의 略歷
제12장 伊藤이 陸軍?司法 兩部를 폐지하다
제13장 세계를 진동시킨 義俠의 聲聞
제14장 나라가 합병된 후에 순절한 여러 사람 및 志士團
제15장 120명의 謀殺寺內案
제16장 총독의 탐욕포악한 행정
제17장 사법제도의 불법
제18장 憲警機關의 확대


제12장 일본인의 야만, 잔학한 살육
제13장 일본인의 만행
제14장 간교한 술책
제15장 우리 대표들이 파리회의에 청원서를 제출하다
제16장 각 방면에서의 호소
제17장 각국인의 동의
제18장 부녀와 아동의 애국열
제19장 姜老俠이 齋藤에게 투탄하다
제20장 의친왕과 대동단
제21장 북한의병단의 활동
제22장 呂運亨의 渡日 선전
제23장 일병의 노령 한국교포 학살
제24장 聯通制의 大?案
제25장 대한광복군의 과감한 행동
제26장 徐相漢?金榮哲?朴在赫 삼열사
제27장 美議員團이 내한했을 때의 광경
제28장 일본이 비적 토벌의 구실로 군대를 파견?강점하다
제29장 우리 의병들의 四戰四捷의 뛰어난 공격
제30장 왜적이 우리 양민을 대거 학살한 참극을 빚다
제31장 서양 신문들의 한일전쟁 및 일병의 죄악에 대한 논평

저자소개

박은식 (지은이)    정보 더보기
황해도 황주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밀양, 호는 겸곡(謙谷)·백암(白巖)이며, 필명으로 무치생(無恥生)·태백광노·창해노방실(滄海老紡室)·백치(白痴)를 사용했다. 그는 한국 근대사상 격동기에 활동한 유학자, 근대 학교 운동의 선구자, 교육 사상가, 언론인, 역사가로서 애국계몽운동과 독립운동에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그리고 국내뿐만 아니라, 격동하는 중국으로 1911년 망명한 후 그곳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어려서부터 주자학을 배우며 성장한 주자학자였으나, 변화와 다양한 사상을 접하면서 주자학 사상의 한계를 인식하고,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양명학(陽明學)으로 학문적 전환을 결단했다. 그는 이러한 사상적 변화와 함께 1898년 <황성신문>의 주필이 되었으며 독립협회에도 가입해 활동했다. 그 후 경학원 강사, 한성사범학교 교관을 역임하면서 교육 개혁에 관한 글을 쓰고, 1904년 ≪학규신론(學規新論)≫을 간행했다. 1905년 일제가 한국을 강제로 보호국으로 만들자 <대한매일신보>의 주필로서 이를 비판했다. 그는 이후 복간된 <황성신문>에서 일제의 침략을 고발하는 항일 언론 활동을 1910년 폐간될 때까지 펼쳤다. 또한 1906년 교육계몽단체인 서우·서북학회의 기관지인 <서우>·<서북학회월보>의 주필로 논설을 써서 계몽 활동에 진력하고, 서우사범학교·오성학교·서북협성학교 교장으로서 교육에 힘썼다. 1909년 <유교구신론(儒敎求新論)>을 발표해 유교 개혁을 주장했다. 이어 장지연(張志淵) 등과 함께 대동교(大同敎)를 창건해 유교 개혁 운동을 전개했다. 1910년에는 양명학 보급을 위해 ≪왕양명실기(王陽明實記)≫를 간행하고, 한문교과서 ≪고등한문독본≫을 저술했다. 병합 후에는 독립운동과 국혼이 담긴 역사서의 집필을 위해 1911년 중국으로 망명했다. 만주의 환인현(桓仁縣)에 있는 윤세복(尹世復)의 집에 1년간 머물면서 저술에 집중했고, 대종교(大倧敎) 신도인 그의 영향으로 대종교에 입교했다. 이때 ≪동명성왕실기(東明聖王實記)≫, ≪발해태조건국지(渤海太祖建國誌)≫, ≪몽배금태조(夢拜金太祖)≫, ≪명림답부전(明臨答夫傳)≫, ≪천개소문전(泉蓋蘇文傳)≫, ≪대동고대사론(大東古代史論)≫을 집필했다. 1912년 상해로 가서 신규식(申圭植) 등과 함께 동제사(同濟社)를 조직하고, 동포들의 자녀 교육을 위해 박달학원(博達學院)을 설립했다. 1914년에는 홍콩으로 가서 중국어잡지 <향강(香江)>의 주간이 되었다. 이 시기에 강유위(康有爲)·양계초(梁啓超)·당소의(唐紹儀)를 비롯한 중국혁명동지회 인물들과 친교를 맺었다. ≪안중근전(安重根傳)≫을 저술하고, 망명 후 꾸준히 집필하던 ≪한국통사≫를 간행했다. 상해에서 이상설(李相卨), 신규식, 유동열(柳東說) 등과 함께 신한혁명당(新韓革命黨)을 조직해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또 신규식 등과 함께 대동보국단(大同輔國團)을 조직해 단장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이후 한국인촌의 여러 학교를 순회하면서 한국 역사에 대한 강연으로 독립사상을 고취했다. 또 ≪발해사(渤海史)≫와 ≪금사(金史)≫를 한글로 번역하고, ≪이준전(李儁傳)≫을 저술했다. 1919년 3·1운동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맞았다. 이때는 대한국민노인동맹단을 조직해서 활동했다. 1919년 8월 상해로 가서 임시정부, 블라디보스토크의 대한국민의회 정부, 서울 한성정부의 통합에 의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을 지원했다. 임시정부의 기관지인 <독립신문>의 사장이 되었으며, 대한교육회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동시에 ≪한국독립운동지혈사≫의 집필을 시작해 1920년 12월에 간행했다. 이후 ‘건국사’를 쓰고야 말겠다는 각오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24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에 추대되었으나 이듬해 11월 1일 서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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