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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추리/미스터리소설 > 영미 추리/미스터리소설
· ISBN : 9788972757870
· 쪽수 : 272쪽
책 소개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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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책속에서
해미시는 평소처럼 아무 생각 없이 부엌으로 들어갔다가 놀라서 눈을 끔뻑거렸다. 지금까지 브로디 부부의 부엌이 이렇게 깨끗한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까닭이었다. 앤절라는 입에 거품을 물 정도로 흥분해서 트릭시가 어떻게 도움을 주었는지 그에게 설명했다.
“그분이 들고 가던 게 이 집 의자 아니었나요?”
“맞아요, 그 가여운 부부 집에는 가구가 거의 없더라고요. 두 사람은 거기서 민박을 시작하고 싶어 하거든요. 그건 우리 할머니가 쓰시다가 물려준 낡은 의자에 지나지 않아요.”
민박을 운영하려는 사람이라면 낡았어도 실용적인 물건을 원해야 하지 않을까? 해미시는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는 혹시 그 의자가 꽤 값어치 나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생겨 불쾌한 기분이 되었다. 하지만 고가구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없으니 속수무책이었다.
부엌에 파리가 윙윙거렸다.
“아, 문을 닫았어야 하는데.” 앤절라가 말했다. “진절머리 나는 파리 떼 같으니.”
“저쪽에 파리약 스프레이가 있네요.” 해미시가 가리켰다.
“저런 스프레이는 오존층에 구멍을 내요.” 앤절라가 말했다.
“그렇겠죠. 하지만 부엌에 파리가 우글거리는데, 환경만 생각하고 있기는 힘들잖아요.” 그의 고지 억양은 화가 나면 강한 치찰음을 냈다. 그는 오존층 어쩌고 하는 얘기는 분명히 트릭시의 입에서 나온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트릭시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왜 그는 이토록 억울한 기분이 드는 것일까?
“해미시, 사람이 성공을 원치 않는 것처럼 보이는 건…… 그러니까…… 음…… 그저 치기 어려 보일 뿐이에요.”
“당신도 야망 같은 건 전혀 품고 있지 않잖아요, 할버턴스마이스 양. 그게 아니면 혹시 야심 찬 남자와 결혼하는 것으로 자신의 야망을 대신 실현하려 마음먹고 있는, 시대에 뒤떨어진 여성인 거예요?”
“이 차 맛이 정말 형편없네요.” 프리실라가 말했다. “그리고 당신도 형편없어요. 원래 굉장히 친절하고 상냥한 사람이잖아요.”
“프리실라, 지금 나더러 치기 어린 게으름뱅이라고 해 놓고 내가 상냥하길 기대하는 거예요!”
“어머, 그랬네요.” 그녀가 그의 셔츠 소맷자락에 한 손을 올려놓았다. “미안해요, 해미시. 우리 다시 시작해요. 내가 방금 여기 도착해서 당신이 내게 톱밥 불린 맛이 나는 차 한 잔을 따라 준 거예요. 그리고 우린 토머스 부부 얘기를 하는 중이고요.”
해미시는 갑작스러운 안도감을 느끼며 프리실라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는 두 사람의 마음 편한 우정을 소중히 여기고 있었기에 그것을 잃고 싶지 않았다.
프리실라도 미소로 화답하더니 곧 한숨을 내쉬었다. 해미시는 멀쑥하게 키만 크고 비쩍 마른 외모에 야망이라곤 없었다. 하지만 그가 미소 지어 녹갈색 눈동자가 그 야윈 얼굴에서 가늘어질 때면, 그는 마치 존 벌링턴은 전혀 알지도 못하고 절대로 속할 수도 없는 훨씬 오래되고 깨끗한, 그런 세상에 속한 사람처럼 보였다.
폴이 말했다. “그렇지만 아내는 뭐든 철두철미하게 하는 걸 좋아해요. 심지어 로흐두 정화 캠페인도 시작하려 하고 있어요.”
“도덕 정화요?”
“아니요, 길거리 청소요.”
해미시는 부두를 따라 이어지는 길을 쭉 훑어봤다. 휴지 조각 하나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리고 아내는 브로디 선생 댁을 찾아가서 흡연 반대 운동을 시작하는 것에 관해서도 상의할 생각이에요.”
“이런, 이런. 거기 가서 그런 얘기 하시면 위험할 텐데.” 해미시가 말했다. “의사 선생 본인이 굴뚝처럼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거든요.”
“나도 알아요. 트릭시도 매우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말했어요. 아내는 의사가 담배를 피우는 건 자신의 환자에게 암을 선물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했어요. 그리고 아내는 브로디 부인을 찾아가서 의사 선생의 다이어트에 관해서도 상의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브로디 부인이 남편에게 어떤 걸 먹게 하는지 당신도 봐야만 해요. 감자튀김은 물론이고 아무거나 막 먹게 하거든요. 콜레스테롤 과다 섭취라고요.”
해미시는 마음이 불편했다. “사람들을 너무 귀찮게 하는 것도 안 좋아요. 브로디 선생은 나이가 쉰일곱인데, 마흔 정도로밖에는 안 보여요. 내 기억으로는 그동안 몸이 아팠던 적도 없었던 것 같고요.”
“아, 뭐가 그분에게 최선인지는 트릭시가 잘 알 겁니다.” 폴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들은 침묵 속에 걸어갔다. 해미시는 전에 로흐두에 살았던 비쩍 마르고 병약한 데이비드 커리를 떠올렸다. 그에게는 독재자 같은 어머니가 있었는데, 데이비드는 그런 어머니를 숭배했다. “엄마가 제일 잘 아세요”라는 말이 그가 가장 자주 하던 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술에 취한 채 도끼를 들고 어머니를 뒤쫓아 다녔고, 해미시가 그 겁에 질린 여인을 구해 주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