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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추리/미스터리소설 > 영미 추리/미스터리소설
· ISBN : 9788972758440
· 쪽수 : 364쪽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마을 사람들은 그가 솥뚜껑만 한 주먹으로 맥주 캔을 찌그러트리는 모습을 보러 로흐두 마을 술집에 모이곤 했다. 랜디 두건의 말투에서는 비음 섞인 미국 억양이 살짝 묻어났는데, 그의 설명에 따르면 한때 미국에서 레슬링 선수로 활약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선망의 눈초리로 바라봤다. 이유인즉슨 랜디는 세상에 안 가 본 곳이 없고, 모든 걸 다 봤으며, 안 해 본 일이 없는 듯했기 때문이다. 플로리다에서는 노상강도를 만나 총으로 쏴 죽였지만 경찰은 오히려 그의 용감한 행동을 칭찬했다. 캐나다에 있을 때는 벌목 일을 했고, 알래스카에서는 곰을 총으로 쏴서 잡았다. 그는 로흐두에 사는 그 누구보다 많은 지역을 다닌 인물이었다.
[……] 고지 사람들은 랜디 두건을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따라서 만약 랜디가 누군가의 비난이나 경쟁에 직면하지 않았더라면, 상황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별다른 부침 없이 흘러가고 잔인하게 변해 버릴 일도 없었을 터였다.
해미시는 리모컨 버튼을 쉼 없이 눌러 음악 방송부터 퀴즈쇼까지 이리저리 채널을 오가다가 어느 순간 멈추고 자신이 랜디 두건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놀라운 심정으로 텔레비전 화면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레슬링 프로그램이었다. 화면에는 랜디와 비슷한 체격에 똑같은 모양의 베니션 블라인드 같은 선글라스를 끼고, 똑같이 술이 달린 가죽옷에 화려한 모자를 쓴 선수가 나오고 있었다. 아나운서가 “그리고 이번에는 우리의 헤비급 레슬링 챔피언, 랜디 새비지, 마초맨입니다” 하고 소개를 했다.
해미시는 텔레비전 앞으로 다가갔다. 혹시 같은 사람인가? 아니, 아니었다. 텔레비전 속의 선수는 훨씬 체격도 좋고 훨씬 더 근육질이었다. 유일하게 비슷한 점이라고는 옷차림뿐이었다. 랜디 두건에게 마초맨이라는 별명을 지어 준 게 누구였더라? 해미시는 생각했다. 분명히 랜디 자신이었다. 그는 자기가 미국에서 레슬링 선수였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다시 말해, 랜디는 그 별명을 차용하고 미국 레슬링 영웅 중 하나의 옷차림을 따라 하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가 진짜 레슬링 선수였을까? 그가 한 말 중에 진실이 있기는 할까? 자기가 미국인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술에 취했을 때는 강한 스코틀랜드 억양으로, 그것도 저지대 스코틀랜드 억양으로 말하는 것만 봐도 아니지 않은가.
아치는 초인종을 누르고 기다렸다. 대답이 없었다. “랜디?” 그는 조심스럽게 불러 보고 나서 다시 큰 소리로 불렀다. “랜디!”
어쩌면 워낙에 뻔뻔한 성격이라 약속도 잊고 잠이 들어 버렸을지도 모르겠다고 아치는 생각했다. 그는 안으로 걸어 들어가 좁은 통로에 잠시 서 있었다. 혹시 랜디가 여자와 함께 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는 마을 여자들에게는 조금의 관심이나 호의도 보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 속이야 누가 알겠는가. 아치는 거실 문손잡이를 돌리고 문을 살짝 밀어 연 후 안을 들여다보았다. 불이 환하게 켜진 거실은 텅 빈 듯했다. 다음으로 그는 침실 문을 빙 돌아 부엌으로 들어갔다. 거기에도 랜디는 없었다.
점점 대담한 기분을 느끼며 그는 거실로 다시 천천히 걸어갔다. 다른 마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마초맨의 진짜 정체가 궁금했기에 거실을 뒤지면 랜디의 옛날 사진이나 신문 기사 같은 것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바로 그 순간 그는 공포의 비명을 내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