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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72759799
· 쪽수 : 152쪽
책 소개
목차
어제는 봄 009
작품해설 154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나는 이선우 경사가 나를 ‘작가님’이라고 부를 때마다 매번 놀랐다. 그것은 내가 등단 10년 만에 처음 들어보는 호칭이었다. 동네 사람 누구도 내가 글을 쓰는 줄 몰랐고 집안 식구 누구도 나를 글 쓰는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다. 나도 나를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내 이름으로 된 책 한 권 없었고 이름 옆에 ‘소설’이라는 연관 검색어를 붙여도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조차 되지 않았다. 아무런 작가 단체에도 가입돼 있지 않았고 단편소설을 매해 이런저런 문예지에 투고해도 한 번도 회신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나는 10년째 병에 걸려 있었다. 청탁을 받지 못하는 등단 작가라는 저주에,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울분에, 장편소설만 당선되면 이 모든 게 한 방에 해결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 고문에.
윤소은의 친부 윤지욱. 그는 주위에서 좋은 남편이자 좋은 아빠라는 평을 종종 듣는 사람이었다. 그는 돈이 많이 드는 취미 생활에도 관심이 없었고 못 봐줄 만한 술버릇도 없었다. 같이 사는 가족들을 불편하게 하는 까칠함도 없었고 전전긍긍함이나 의심도 없었다. 철두철미함도 없었고 결벽증도 없었다. 그에겐 없는 게 꽤 있었다. 그중에 제일 없는 것은 성욕이었다.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간 다섯 살 때였다. 처음으로 가는 소풍이었다. 코코몽 도시락에 꼬마 김밥을 싸서 아이를 유치원 버스에 태워 보냈다. 경진시의 많은 교육기관에서 그러는 대로 아이의 유치원에서 소풍을 간 곳은 능이었다.
소풍을 다녀온 그날 오후 유치원 담임이 전화를 걸어왔다. 아이가 능에 들어서서부터 내내 울었다고 했다. 그냥 운 것도 아니고 바들바들 떨면서 울었다고 했다. 벌도 나무도 흙도 다 무섭다며 울음을 그치지 않아서 소풍 내내 부담임이 안고 있었다고 했다. (중략)
그날 저녁 아이는 거실에 앉아서 무언가를 그리고는 주방으로 걸어와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아이의 그림을 보고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스케치북엔 형체를 알기 힘든 검은 선들이 가득했다. 아이가 스케치북 한 면을 검은 물감으로 채운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굳어가는 내 얼굴을 올려다보며 아이가 말했다.
“엄마. 이게 오늘 갔던 숲이야. 늑대가 가득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