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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73373093
· 쪽수 : 740쪽
· 출판일 : 2010-10-30
책 소개
목차
전학생|도난사건|교실동화|출생기|화살표|도벽방지전략|방관자들에 대한 반추|과거는 흘러갔다|암행일지|시간퇴행법|강박사출설|독침|물안개|살인지령이 염사된 컴퓨터 바이러스|초생성서 제1장|나그네쥐를 아시나요|돌발사태|백량금|될성부른 연쇄살인범은 떡잎부터 알아본다|동천법사|최면요법|먹잇감들|조개잡이|과거를 묻지 마세요|사기수업|마지막 가을비 내리는 날 목로주점에서|초생서생 제2장|술래잡기|몰카|접촉사고|다리위의 빨간 양산|미궁|말세예감|월영산|초생성서 제3장|안전점검|천하협객|신선이 살던 마을|토하리|서정시인|천세교|철가방|하얀솔개|풍류행화원|초생성서 제4장|향운장|보따리장사|야간통화|백장|직업에는 귀천이 있다|천생연분|회상기|도살자와 성직자|별난 아이|정면승부|어는 날 갑자기|신도시|목불|살구꽃이 만발해 있던 마을|초생성서 제5장|여름날|달맞이꽃|일필휘지|기녀수첩|달빛연주|무처약전|해독제|네크로필리아|소견서|기적을 보여드립니다|폐교에서|산사의 겨울|손자병법|황사의 계절|시인이 있어야 할 자리|의사를 불러주세요|깡통들|일급시각장애인|재산목록 제1호|자비로운 세상을 위해서|천불전
작가약력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나는 태어날 때부터 왼쪽 안구가 함몰되어 있었다. 거리에 나가면 본의 아니게 남들로부터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남들이 내게 보내는 시선은 각양각색이었다. 동정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도 있었고 혐오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자주 곁눈질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아예 시선을 회피해 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한쪽 눈으로 바라보아도 저물녘 돌담길로 숨어드는 굴뚝새는 검은색이고 한쪽 눈으로 바라보아도 한밤중 논둑길에 피어 있는 달맞이꽃은 노란색이다. 한쪽 눈으로 바라보아도 소나무에는 소가 열리지 않고 한쪽 눈으로 바라보아도 개머리에는 개뿔이 돋지 않는다. 육안으로 포착할 수 있는 것들이 모두 진체(眞體)가 아니거늘 한쪽 눈으로 본다고 무엇이 달라지며 양쪽 눈으로 본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나는 조금도 괘념치 않고 주어진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 <화살표> 중에서
봄은 내게 살인충동을 불러일으키는 계절이다. 봄에 피어나는 세상의 모든 꽃들도 내게 살인충동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나는 살구꽃을 보면 걷잡을 수 없이 강렬한 살인충동에 사로잡힌다. 지천에 햇빛이 생금가루처럼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는 봄날. 현기증이 날 정도로 만발해 있는 살구꽃. 꽃잎들은 바람이 불지 않아도 함박눈처럼 어지럽게 허공에 흩날린다. 나는 봄이 되면 자주 살구꽃잎들이 함박눈처럼 어지럽게 흩날리는 풍경 속에서 내가 살해한 시체를 간음하는 몽상에 사로잡힌다. …(중략)… 대부분의 인간들은 사랑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면서 살아간다. 사랑이 욕망의 또다른 이름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사랑은 종족보전의 본능이 성욕이라는 괴물을 거룩하고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치장하기 위해 조제한 일종의 최음제(催淫劑)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최음제에 속아서 알몸이 되고 최음제에 속아서 애무를 하고 최음제에 속아서 성교를 한다. 사랑은 허명이요 착각이다. 사랑이라고 이름 붙여진 일체의 행위들은 종족보전의 본능이 조장하는 번식놀이에 불과하다. ― <암행일지(暗行日誌)> 중에서
“이제 더 이상 구차하게 억울함을 하소연하지는 않겠소. 여러분들은 모두 한낱 떠돌이 좀도둑에게 연쇄살인범이라는 누명을 씌워서 목숨을 처단한 공범들이오. 내가 만약 후생에 다시 태어나서 여기 모인 사람들을 한 명이라도 만나게 되면 그때는 반드시 오늘의 대가를 죽음으로 되갚고야 말겠소. 아무리 가까운 인연으로 다시 태어나더라도 기필코 내게 목숨을 바칠 각오들을 하시오.”
내가 유언을 끝마치자 청맹과니들의 격분하는 소리가 높아지면서 다시 돌들이 날아오기 시작한다. 집행관이 위엄 있는 목소리로 청맹과니들의 행동을 저지시키고 대기하고 있던 궁사를 불러낸다. 궁사는 우직해 보이는 인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우직해 보이는 인상도 소름이 끼친다. 집행관을 맹신하고 있다는 증표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이윽고 궁사가 시위에 화살을 먹인다.
“저 천인공노할 죄인을 즉시 처단토록 하라.”
마침내 집행관의 추상 같은 명령이 떨어진다. 궁사가 신중한 동작으로 화살을 겨냥한다. 비천한 떠돌이 좀도둑으로 살아온 한평생이 종말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부분이 없다. 오로지 억울하다는 생각 하나뿐이다. 나는 증오심이 끓어오르는 목소리로 궁사에게 한 마디를 던진다.
“화살이 시위를 떠나는 순간 당신도 무고한 사람을 죽인 살인자가 되는 것이오.”
― <시간퇴행법>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