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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88973815432
· 쪽수 : 360쪽
· 출판일 : 2009-11-06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선생님도 죽고 싶어요?”
라고 물어왔다.
“글쎄, 잘 모르겠네.”
라고 대답하자,
“정말 잘 모르겠죠?”
마침내 엷은 미소를 지으며 호노카는 그대로 죽은 듯이 잠이 들었다.
잠이 든 호노카의 야윈 얼굴을 바라보며, 시시때때로 죽고 싶은 마음과 싸우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인간들, 특히 그녀에게는, 혹은 나처럼 가까스로 아직 젊은이라고 불리는 자들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현실이다. 분명 이 시대는, 물론 어떤 시대나 다 비슷하다고 하지만, 어떻든 이 시대는 인간이 살아가기에는 너무도 매력이 부족하다. 그래도 나는 호노카만큼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 듯했다.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게 더 나았다는 생각은 죽음을 원하는 감각과는 중복되는 부분이 없는 것이다.
이토록 쓸모없는 세상이 유일무이한 세계라고, 그녀는 진심으로 믿고 있는 걸까.
나는 도저히 그렇게는 생각할 수가 없다.
이곳과는 다른 어딘가가 반드시 있다.
젊음에는 노쇠에 대한
건강한 자에게는 병자에 대한
살아 있는 자에게는 죽은 자에 대한
무의식의 우월감, 오만한 마음이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고 전해져오는 것이다. 아아, 70년을 살며 부둥켜안고 온 내 이 썩어빠진 심성을 정확히 잡아내 보여주는 이런 말씀을 대체 다른 어느 누가 내 귓가에 말해줄까. 이토록 알기 쉽게, 이토록 논리정연하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련은 대등이니 평등, 존중이니 희생 같은 건 존재할 수가 없는 거야. 연애도 그렇잖아? 사랑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야. 상대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야. 겨우 그 정도로 인간은 자신의 본질적인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어.
사랑한다는 건 자신의 모든 것을 없애고 오로지 상대를 위해서만, 오로지 상대 속에서만 사는 일이야. 하지만 그런 일은 이 세상 어느 누구라도 불가능해. 아무리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라도, 아무리 서로 사랑하는 부부라도 반드시 헤어질 때가 다가와. 그때, 한 사람이 죽으면 다른 또 한 사람이 뒤따라 죽는다, 그런 이야기를 주위에서 들어본 적 있어?
모든 희망, 사랑, 저마다의 생명에는 절망과 공포와 죽음이 항상 따라다닌다. … 한 사람 한 사람의 운명의 종착점에 ‘절대적 공포’로서의 죽음이 자리 잡고 있는 한, 사랑이 공포를 극복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실상 이 공포의 근원은 결코 ‘죽음’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의 운명을 타고나 그 ‘죽음’을 두려운 것으로만 알고 살아가는 인간 그 자체이다. 그렇건만 인간은 죽음을 그저 공포라고만 감지한다. 죽음을 두려워하면 할수록, 언제 어떤 행복의 시간에도 반드시 인간의 마음속 갈피에는 공포가 들러붙어 바들바들 떨게 하는 바람에 인간을 행복의 바다에 진심으로 풀어놓을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시 한 번 분명하게 확인해두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살아간다는 일의 의미 따위가 아니라 죽는다는 것의 참된 의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