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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동양철학 > 불교철학
· ISBN : 9788974790950
· 쪽수 : 322쪽
· 출판일 : 2015-03-10
책 소개
목차
추천의 글 | 저자의 말
1장 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
낯선 것을 선택할 때 비로소 시작되는 변화 |어설픈 위로보다 정직한 ‘진단’과 ‘처방’을 | 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것을 살피다 |무엇이 되는 것보다 어떠한 사람이 될 것인가 | 나의 선택이라고 해서 늘 당당한 것은 아니다 |공부해서 남 주자|나의 말도 의심하고 헤아려 보라 |만족과 감사의 기도만 할 것인가 |이미지와 감성에 속지 말라|진실을 피해 가는 모호한 문법을 버려라 |그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를 허락하라 |당신은 실감나게 살고 있는가 |추하다는 것은 누구의 생각인가 |행복의 내용을 바꾸어야 할 때 |길은 묻는 자에게만 열린다
2장 쉽지 않지만 가야만 하는 길을 선택하라
길은 묻는 자에게만 열린다 |아무것도 없을 때 내어줄 게 더 많다 |빵만으로는 삶을 아름답게 가꿀 수 없다 |쉽지 않지만 가야만 하는 길을 선택하라 |작은 일은 작지 않고 그대로 하나의 전체다 |버리고 행복한 사람 -비노바 바베 1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아지다 -비노바 바베 2 |나는 오늘도 출가한다 |간디의 일곱 가지 사회악 |새롭게 출발하는 부부를 위한 6가지 생각
3장 아름다운 만남은 어떻게 오는가
공감이 수행이다 |이만하면 넉넉한 삶이다 |사랑, 연습하면 무르익는다 |온전한 마음을 주면 풀꽃도 우주가 된다 |아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7명의 관심사병들과 함께한 템플스테이 |쌀 한 톨은 하늘보다 무겁다| 느낌표와 물음표로 오는 봄 |우리 모두 표정을 기부하자 |평등은 법으로 보호받고 가슴으로 나눠야 한다 |사랑하지만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 |느리고 자세하고 따뜻하게 바라보라 |강남 아파트와 혜월 선사 |낮은 곳에서 깊어지리라 |내가 뿌린 말의 씨앗들은 어디서 어떻게 열매 맺었을까 |아름다운 만남은 어떻게 오는가 |달은 어디에나 있지만 보려는 사람에게만 뜬다
4장 스님의 반성문
아름다운 풍경이 종교를 망친다 |오늘 붓다의 말씀이 매력적이지 않은 이유 |말은 곧 삶의 전부이다|성 프란치스코의 기도문과 반야심경|종교는 아무 힘이 없음으로 강한 힘을 갖는 것 |삶의 기적은 합당한 진리 위에서 일어난다 |두 개의 검정고무신 |수행한 이여! 그대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는가 |냉철한 통찰이 함께하지 않은 명상은 환각제일 뿐이다 |봄꽃은 다른 꽃의 향기를 탐하지 않는다 |초심은 늘 현재진행형이어야 한다 -행자에게 보내는 편지1 |천 길 낭떠러지에서 한 걸음 내딛다 -행자에게 보내는 편지2 |깨달음이 이기는가. 사랑이 이기는가 -행자에게 보내는 편지3|마음 닦는 사람을 넘어 세상의 스승이 돼라 -행자에게 보내는 편지4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작지만 큰 삶의 변화와 혁명은 일상에서 ‘익숙함’과 ‘낮선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부디 익숙한 생각과 감각의 습관에서 탈출하라.
아프다고, 괴롭다고 말하는 이들이여, 위로 받기 전에 냉엄하게 스스로를 진단해 보라. 내 삶은 방향을 제대로 잡았는가, 나는 지금 남의 삶을 눈치 보며 흉내 내고 있지는 않은가. 진정한 힐링은 나를 내 삶의 주체로 세우고 독창적으로 살아갈 때 가능하다.
세상이 혼란하고 힘든 것은 사람들이 못 배워서가 아니라 잘못 배워서다. 인류 역사는 학벌과 지식의 총량이 부족해서 갈등과 불화가 발생해 온 것은 아니다. 가야 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을 분명하게 알지 못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기 때문에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어 온 것이다.
오늘날 우리 모두가 성찰하고 숙고해야 할 대목은 모든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가, 혹은 죽이고자 하는가, 라는 궤도와 함께 나의 의도와 욕망이 진정 생명이 생명다움일 수 있는 가치와 의미가 있는가, 라는 문제이다. 타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해서, 나의 선택이고 자유라고 해서, 의미 없고 가치 없는 것들에 몰두하는 삶의 방식을 걷어 내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그러한 의도와 행위는 또한 소중하고 엄숙한 자기 생명을 무익하게 만들기 때문에, 당신의 욕망은 유죄라고. 그 죄명은 ‘인생을 낭비한 죄’ 라고 말하고 싶다.
엄정하면서도 친근할 수 있고,침묵하면서도 귀 기울일 수 있으며, 여럿이 함께할 수 있으면서도 홀로 있을 수 있고,비우면서도 나눌 수 있음에도 왜 우리는 한쪽으로만 시선을 고정한 채 살았을까.
올바른 사유, 우리를 행복에 이르게 하는 사유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도 헛된 욕망을 내려놓아야 한다. 욕망이 눈을 가리면 정직한 판단이 흐려지고 무지가 욕망을 충동질하여 또 다른 욕망을 낳게 만든다. 다음은 연민과 자애의 눈으로 세상을 정직하게 바라보라. 그 다음은 끊임없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많은 사람들의 말과 삶에 편견 없이 귀 기울이는 성찰을 해야 한다. 이미 그대들도 알고 있다, ‘묻지 않으면 진리가 내게로 오지 않는다.’는 것을.
모두가 공감하고 감동하는 말은 복잡하고 정교한 이론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그 사람 삶의 모든 과정에서 탄생한다. 울림을 주는 말은 짐짓 생각하고 꾸며낸 것이 아닐 터! 그래서 ‘모두가 행복한 길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서, 뭇 생명의 소리를 듣는 현장에서, 그들에게 응답하는 길을 모색할 때 말의 씨앗은 움튼다. 또한 그가 가고 있는 길 위에서 말은 탄생한다.
마음에 깊이 갈무리되고, 의미를 동반하지 않는 재미는 쉽게 싫증나고 더 자극적인 것을 원하게 한다. 싫증과 자극의 악순환은 변태를 낳고 병이 된다. 때로는 몸으로, 깊은 사색으로 견디고 체험하고, 그 힘겨움이 여과되면 사는 참맛을 느낀다. 진정한 재미는 같은 것을 되풀이해도 더욱더욱 새롭고 깊이 있는 기쁨으로 오는 것이다. 바람소리는 그 소리를 귀로 들을 때 비로소 바람소리가 되고, 꽃향기는 그 냄새를 코로 맡을 때 마침내 꽃향기가 되리라.
무엇을 ‘수행’이라고 이르는가. 염불과 찬송이 수행인가. 기도와 불공이 수행인가. 참선과 묵상이 수행인가. 교리 공부와 설교가 수행인가. 사원과 교회에서만 행하는 실천이 수행인가.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청년 김예슬이 말한 대로 진리와 자유, 정의와 우정이 담겨 있으면 모든 종교적 실천 행위가 수행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성스러움으로 치장한 허울뿐이다. 설령 사원과 교회를 벗어나 종교적 의례와 수행법이 아니더라도 진리와 자비가 실리면 모든 행위는 수행이라고 할 수 있다.
수행은 대안 운동이다. 대안은 ‘그름’을 물리고 ‘바름’을 앉히는 일이다. 오염된 마음을 걷어내고 청정한 마음을 모시는 일이다. 무한 소유와 소비에서 살아가는 재미를 느끼기 보다는 절제와 나눔에서 정신을 성숙시키고 성장하면서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는 일이 수행이다. 서로를 착취하는 경쟁에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상생으로 사는 일이 수행이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해악을 끼치는 가해자가 된다면, 우리는 그 즉시 피해자가 된다. 왜냐하면 가해하는 당신의 마음은 곧 고통과 분노가 기반이 되어 평화로움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정 지혜롭다면 모든 사람과 동물 그리고 물과 흙, 돌멩이, 풀꽃에게도 자비심을 나눌 줄 알아야 한다. 이웃에게 자비심을 나눌 때 그 순간 우리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채워지게 된다. 결국 자비심의 최대 수혜자는 자기 자신이 된다. 자비심! 그것은 더불어 평등하고 평화롭고 환희롭게 살아가는 깊은 지혜이며 실천이다. 오로지 이 길뿐이다. 이 세상 어느 누가 아프지 않겠는가.
거래의 관계는 긴장과 불화, 원망을 낳지만, 고마운 관계는 이해와 배려, 사랑을 길러 준다. 관계를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삶은 극락과 지옥의세계로 갈라진다.
자비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말을 조심해야 한다. 지금도 나는 불보다 말이 더 무섭다. 꺼진 불도 다시 보고한 말도 다시 생각한다. 그리고 좋은 말을 하기보다는 말실수를 줄이는 것에 더 신경이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