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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인문 에세이
· ISBN : 9788975551772
· 쪽수 : 548쪽
· 출판일 : 2014-09-04
책 소개
목차
머리말 / 서문 / 책소개 / 저자의 편지
1장 팀바바티
2장 팀바바티의 사자 여왕, 마리아
3장 신의 사자: 사자 사람들
4장 아프리카의 사자 사제
5장 크레도: 아프리카의 전설
6장 사냥꾼인가 사냥감인가?
7장 위대한 사냥꾼 그리고 포식자
8장 위대한 지식이 전하는 백사자 전설
9장 백사자 유전자
10장 그레이트 짐바브웨: 사자들의 쉼터
11장 짐바: 황금사자 성지
12장 사자 사제 그리고 독수리 무당
13장 지하로 흐르는 황금의 강
14장 팀바바티의 날개 달린 사자
15장 태양신의 아이들과 놀기
16장 백사자와 마술사들
17장 사자, 별의 짐승
18장 신들의 탄생지
19장 사막의 사자: 야생의 사자들
20장 나일 자오선: 북쪽의 신성한 땅, 남쪽의 신성한 땅
21장 황금: 지하 태양
22장 텐딜, 백사자 엄마
23장 노획물 사냥
24장 백사자: 미래의 예언자
25장 빙하기와 설雪사자들
26장 유대의 사자
후기 / 출판사의 보충: 마라의 이야기 / 감사의 말 / 옮긴이의 말 / 용어해설 / 주
책속에서
1. 인간이 자연의 주인이라는 생각은 커다란 착각이다
“서양인들은 자신이 모든 생물의 주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은 기껏해야 길들여져야 할 것들이며, 무시되고, 부서져야 하고, 심지어는 깡그리 없애 버려야 할 것들이라고 봅니다. 이 세상은 이제 매우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부인. 나무나 동물, 다른 생명체는 필요하지 않고, 인간만이 빛나는 미래를 가져올 수 있다는 믿음이 팽배합니다.” 그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이런 자세가 인류의 마음에서 철저하게 지워질 때까지 서구화된 인간들은 모든 지상의 삶에 위험 요소로 남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대항해야 하나요, 크레도” 하고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화가 났다기보다는 슬픈 목소리였다.
“우리는 과거와 같은 위대한 영적 세계로 돌아가야 합니다. 즉 모든 삼라만상이 하나의 위대하고 서로 연결된 전체의 일부라는 창조적 세계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특별히 우월한 피조물이라는 못된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이 잘못된 생각 때문에 우리는 파멸의 경지에까지 몰리게 된 것입니다.”
두꺼운 안경 속의 동공이 커지면서, 침통한 표정으로 그는 말을 잠시 멈췄다.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너무 멀리 와버렸습니다. 옛날 아프리카 사람들은 동물, 새들, 물고기나 나무들과 어울려 살았습니다. 우리 주위의 모든 것과 우리 자신은 하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프리카의 신들은 동물과 인간의 양면을 모두 가졌습니다.” 크레도 무트와(143-144쪽)
진화 이전의 관점에서 보면, 인류는 생태계의 한 부분이었다. 포식자 사자를 모방하여 사냥과 육식을 함으로써 인간은 동물의 왕이자 땅의 지배자로서 먹이사슬의 정점에 도달했다. 이렇게 되자 인간은 자신을 특별나고 잘난 존재로 생각하여 우쭐댔다. 무당의 지혜에 의하면 이는 대단히 잘못된 인식이며 행동이다. 우리는 동물의 세계에서 다른 존재들과 다르지 않고 우월하지도 않으며, 단지 그중 하나에 불과한 존재다. 우리의 이기심은 또 다른 허상으로서 자신을 전능한 존재로 믿게 만들었다. (150쪽)
2. 아프리카의 위대한 현인 크레도 무트와는 백사자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자는 왕의 상징이자 대리물입니다. 왕의 토템이지요. 아프리카 사람들의 사고 밑바닥에는 환생과 윤회의 사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부족원이 죽으면 토템 동물로 환생한다는 믿음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줄루 사람들은 사자를 고의로 죽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왕을 상징하는 신성한 동물이기 때문이지요.” 크레도 무트와/아프리카의 위대한 사자무당(87쪽)
나의 뒤에 아프리카의 가장 성스러운 동물인 팀바바티의 백사자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영물이 이 흑인의 땅에서 사라져, 아프리카 전역에서 찾아볼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이 영물은 지구상에 변화를 가져오는 사자使者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첫 백사자는 400여 년 전에 태어났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때 별 같은 것이 오늘날 팀바바티라고 불리는 지역에 떨어졌습니다. 처음에는 사자만이 아니고, 표범 등 다른 동물들이 하얀 색깔을 지니고 태어났습니다. 아프리카 영양들과 새들까지 태어났습니다.
이 피조물들은 보존되고 보호되어야 하며, 하얀 색깔을 띠고 나온 이유가 조사되어야 합니다. 무관심, 인종 차별, 종교적 광신주의 등등으로 아프리카는 중요하고 아름다운 것을 많이 잃었습니다. 만일 영국 사람들이 그들이 노략질한 것을 런던탑에 보존하면서, 그것을 방어하고,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 군사력을 동원하는 것도 불사하는 것이 옳다고 한다면, 이 성스러운 동물을 보호하는 것이 무엇이 잘못이란 말인가요? 위대한 예언가들이 많은 예언을 설파한 동물이 아니던가요?
백사자가 울음을 그치게 되는 날이 이 세계의 마지막이 되리라는 말이 항간에 있습니다. 하늘에서 태양이 영원히 없어지는 전조前兆가 되는 것입니다.
팀바바티의 백사자, 지구로 떨어진 별들의 사자들이 우리나라의 역사의 한 페이지에서 사라져서는 안 됩니다. 더 이상 말 할 수는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크레도 무트와(322-323쪽)
3. 사자가 멸종되고 환경이 파괴되는 것은 지구의 인간에게 최후가 다가오고 있음을 상징한다
아프리카 샤머니즘에 입문하고 나서, 나는 소유권을 보는 눈이 전적으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단순히 한 개인이 땅을 살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해도, 자기의 개인적 이익을 위해, 토지상에 있는 자연 자원을 파괴할 권리가 주어지는 것이라고 오해해서는 안된다. 한 개인이 단순히 동물을 살 수 있는 돈이 있다고 해도, 동물을 학대할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고대 아프리카에서 소유권의 개념은 아주 고도로 세련된 것이었다. 왕이나 추장의 역할은 일종의 땅의 관리자이지, 소유권자는 아니었다.
왕들은 무당들을 통하여, 땅을 수호하는 신의 대리자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조상님들의 의견을 물어 정사를 돌보았다. 이 자연의 순리에 대한 인식은 지금은 완전히 없어져 버렸다. 내가 백사자 뒤에 숨겨진 의미가 무엇일까 하고 탐구해 온 지난 몇 년 동안에도 회복 불가능한 변화들이 자연의 질서를 망가뜨렸다. 수천 년을 지탱해 온 구조가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헤일 수 없이 오랜 세월을 지속해 온, 스테르크폰테인 계곡 동굴에서 벌어진 호미니드-송곳니 고양이 사건 훨씬 전부터, 태초 인간의 사자-인간의 전통이 슬프게도 종식을 고하고 있다. 오늘날 지구상의 가장 오래된 기본구조가 엄청난 속도로 붕괴되고 있다. 원시림과 희귀종이 격감하는 동시에, 우리의 가장 오래된 토착문화들인 부시맨ㆍ호주 원주민ㆍ아메리칸 인디언, 그 외 인류의 원래 12종족, 그리고 이 종족들의 태곳적 지혜가 절실히 필요한 이 변화의 시대에 모두가 소멸했다. 수천 년을 별 탈 없이 생존해 온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종족들이 이 지구를 떠나는 것이, 현시점에서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가 전 지구적 대량 자기-파괴 시대로 급속히 접어들고 있다고 해도 크게 무리는 없으리라. (444-445쪽)
과학이건 샤머니즘 성격이던 간에 내게 전해진 정보를 종합해 보니, 자연적인 재해는 현 시점의 파괴적인 인간의 자세와 관행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결론지었다. 이것이 계속되면, 우리 지구 자체의 생존을 위협할 것이다. 그 해결책은 지구 자체에 있는 것이고, 이제 와서야 현대의 과학자들이 지구를 살아있는 유기체라고 보듯이, 지구와 우리 인류의 재 연결에 달려있는 것이다.
우리는 진화를 단순히 생리적인 사건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만일 무당들과 조상의 정령으로부터 우리가 무엇인가 얻을 것이 있다면, 이 시점의 인류의 도전은 우리의 의식을 향상시키는 정신적인 진화에 그 본질이 있는 것이다. 현재의 우리의 대량(생산, 소비)라는 사고방식은 단지 파멸에 이르게 할 뿐이다. (448쪽)
현대 서구인들의 의식은 고작, 그리스도가 탄생한 2,000년 전(물고기자리 시대), 마지막 천문학이 시작한 때 정도로밖에 연장이 되지 않는 듯하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를 유일한 신의 아들이라고 하고 있다. 만일 우리의 의식을 그 이상 연장시킬 수 있다면, 많은 무당들이 그렇게 할 수 있듯이, 우리는 꽤 많은 수의 이러한 ‘신의 자식’이, 인류에게 정신적인 깨달음을 일깨워주려고, 이 지구상에 보내졌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453쪽)
고대 아메리카 대륙의 날개 날린 사자 신인 퀘찰코아틀같이, 이집트의 매의 머리를 한 사자 신인 호루스같이, 메소포타미아의 사자 무당 왕인 미쓰라스같이, 이제 나는 날개 달린 백사자가, 우리의 태양 사자 신 또는 가시면류관을 쓴 그리스도(그들의 죄로 고통받은 것이 아니고, 우리들의 죄로 고통을 받은)와 어떻게 동일시 될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백사자는 인간의 진화가 물리적이고 유전적인 문제일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정신적이고 영혼의 문제라는 것을 일깨워 주는 하늘에서 온 상징이다. 우리가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우리가 단순히 물리적인 인간이 아니라, 육체로 이루어진 윤리적이고 정신적인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453쪽)
4. 멸종되어가던 백사자가 다시 출현한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왜 백사자가 바로 오늘날 다시 나타났는가이다. ‘두려움으로 의식이 얼붙은 인류’라는 정령과 접속하였을 때 얻은 정보는, 백사자가 빙하기적인 조건에서 우전적인 선구자라는 문제에 빛을 던져준다. 백사자가 여기에 온 것은 조기 경고 신호인 것처럼 보이며, 지구를 향한 인류의 포악한 정신적인 태도가 지구를 빙하기로 빠트릴 위험에 직면하게 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우리에게 불어넣어 주기 위해서다. (464쪽)
빙하기가 임박하여 세계의 종말이나 대재난이 임박하였다는 생각이 극단적으로 치달으면 아주 겁이 난다. 하지만 백사자의 메시지는 그 두려움에 굴복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들은 이 공포를 극복하라는 상징으로 여기에 온 것이다. 그리고 파멸로 치닫는 우리의 의식도 변화시키려고 온 것이다. 인간 심장의 상징으로서, 그들은 용감한 것의 힘과 진정으로 사자의 마음이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치려고 여기에 왔다. 우리는 하나의 종으로서 육체적으로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정신적으로도 진보할 수 있다. 우리는 용기ㆍ믿음 그리고 사랑이라는 원리를 불러일으켜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샤먼들이 이해하기에, 사랑은 신이 현재한 상태에서의 믿음이다. 이는 우리가 혼자가 아니며 모두가 연결되어서 하나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467-468쪽)
무당의 세계에서 사자 사냥과 관련하여, 나에게 전해진 엄청나게 충격적인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사자 한 마리가 사살이 될 때마다 한 인간의 영혼이 없어진다.”
이 말에는 영원히 저주하는 듯한 그 무언가가 있다. 이에는 이, 목숨에는 목숨이라는 식의 인간세계의 거친 정의관이 아니다. 여기서 상관관계는 하나의 영혼 대 생명인 것이다. 사자의 삶에 대응한 인간의 영혼이다. 저울의 균형에는 그것에 관한 성스러운 정의의 고리가 있는 것이다.
샤먼들은 이 세상과 영적 세계를 넘나들 수 있기 때문에, 죽음 자체가 문제되지는 않는다. 자연은 탄생, 아이의 출산, 죽음의 끝이 없는 사이클이다. 따라서 죽음 그리고 재탄생은 자연의 일부이다. 생에서 죽음을 용인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가 자연의 순리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또 하나의 지표가 되리라. 우리는 조만간 죽는다. 문제는 우리의 영혼은 어떻게 되는가이다. 샤먼들은 실제 세계의 모든 것에 영혼이 있다는 것을 안다. 따라서 궁극적으로 죽는 것은 없다. 나는 인과부마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그는 아직도 존재한다. 그는 정령의 세계에서 아직도 나를 인도하고 있다. 비극적인 것은 인간의 영혼은 그를 사살함으로써 죽었다는 것이다. (476쪽)
미래를 보자. 아는 인과부마한테서 태어난 대여섯 마리의 사자 새끼들이 팀바바티에 서식하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 중 몇몇은 피부색이 놀랄 만큼 하얀 편이다. 녹색의 눈을 가진 쌍도 있다. 나는 이런 것들이 그들이 백색 유전자를 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믿는다. 백사자가 언젠가는 응당 그들의 왕국인 팁바바티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인간의 의식이 다시 한번 상향이 될 준비가 되기 전까지, 그리고 우리 인간이라는 동물이 백사자가 주는 진정한 의미에 대해 마음을 열 준비가 되기 전까지는 그들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477쪽)
스테르크폰테인에서 베들레헴까지, 인간 시원의 요람으로부터 그리스도 탄생지의 이름을 딴 장소에까지 이 사자가 태어난 것은, 새로운 메시아의 강림을 암시하면서, 진정으로 기적적인 일이 실생활에서 벌어진 것으로 나를 숨막히게 했다. 나는 ‘그리스도’라는 단어가 ‘부처’가 가진 의미와 동일하고, 안데스의 하얀 신인 ‘퀘찰코아틀’이 가진 의미와도 동일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깨달은 자이다. 깨달음의 전달자인 백사자도 그들과 같은 신성한 의미를 지닌다. 나에게 베들레헴에서의 백사자 출현은, 우화적으로 고대 경전에 나오는 깨달음 보지자가 신화가 아니라 당면한 현실이 되었다는 선언이다. (483쪽)
나는 이 예언적인 백사자가 출현한 것이 인류의 모든 일에 항상 관여하셨고, 지금도 임재하시고 있는 신성한 창조자가 한 일이라고 믿는다. 신의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을 정점으로 하는 2천 년 전에 베들레헴에서 벌어진 일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지만, 어떻게 인류가 이 신의 사자-아들을 대접할지는 두고 보아야 한다. 지구와 신의 피조물에 대한 우리의 행동이 우리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신의 가장 위대한 계율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예수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주가 첫 번째이다. 너의 신인 주를 네 마음을 다하여, 너의 영혼을 다하여, 너의 온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 두 번째는 “너의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 이것보다 더 큰 계율은 없을지니.”
우리 인간들은 ‘이웃’이 단순히 옆집에 있는 ‘인류Homo Sapiens’라는 종만이 있지 않다는 것을 망각한다. 우리의 ‘이웃’은 자연의 법칙과 신의 섭리에 따라, 이 지구를 우리와 함께 공유하라는 모든 놀라운 창조물들인 식물ㆍ동물, 그리고 광물들이다. 위대한 삶의 순환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고, 우리는 하나다.
이제는 이를 기억해야 할 시점이다. 그리스도 의식의 가장 오래된 원리에 따르면, 백사자 뒤에 있는 상징적인 메시지는 순수하고 단순하며, 순수한 사랑을 담아 전달이 되고 있다. 세상을 구하라는 백사자의 메시지는 항상 같다. (487-48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