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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역사소설 > 외국 역사소설
· ISBN : 9788976042132
· 쪽수 : 328쪽
· 출판일 : 2015-01-20
책 소개
목차
책속에서
늘 세이주로를 따라다니며 시중을 드는 젊은 종자從者인 다미하치民八란 사내가 큰길의 가로수 사이에서 이쪽을 향해 사슴처럼 달려오면서 팔을 저으며 소리쳤다.
“크, 큰일 났습니다! 여러분! 빨리 오세요. 스승님이 무사시에게 당했어요. 당하고 말았습니다!”
다미하치의 절규를 들은 모두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발밑이 꺼지는 것처럼 놀라서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뭐, 뭐라고? 스승님이 무사시에게?”
“어, 어디서?”
“언제?”
“다미하치, 그게 정말이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상기된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그러나 이곳에 들러 준비를 하고 가겠다고 한 세이주로가 이곳에 들르지 않고 벌써 무사시와 대결을 했다는 다미하치의 말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빨리! 빨리!”
다미하치는 그곳에 서서 말도 제대로 못 하면서 그렇게 외치더니 숨도 돌리지 않고 왔던 길을 고꾸라질 듯 다시 달려갔다. 그들은 반신반의했지만 거짓말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료헤이를 비롯한 문하생들은 마치 들불 사이를 내달리는 들짐승처럼 다미하치의 뒤를 쫓아 큰길의 가로수 쪽으로 내달렸다. 그 단바 가도의 북쪽을 향해 오 정쯤 달려가자 가로수 오른편으로 초봄의 햇살 아래 펼쳐진 드넓고 메마른 들판이 나왔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지저귀고 있던 개똥지빠귀와 때까치가 푸드득 하늘로 날아올랐다. 다미하치는 미친 듯이 풀숲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리고 옛 무덤의 터와 같은 흙이 타원형으로 봉긋하게 솟은 부근까지 쉬지 않고 달려갔다.
“스승님, 스승님!”
다미하치는 온몸의 힘을 쥐어짜며 그렇게 외치더니 땅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마타하치는 방금 전 개들과는 다르겠지만 자신이 위협하면 꼬리를 내리고 달아나리라고 생각했다.
“재미있군.”
하지만 앞머리 사내는 마타하치의 예상과는 달리 매우 호전적인 태도를 보였다.
“보아하니 너도 무사 나부랭이쯤은 되는 모양이군. 한동안 그런 기골 있는 인간을 만나지 못해서 내 등의 모노호시자오가 밤만 되면 울고 있던 참이다. 이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도 내 손에 넘어온 뒤로 아직 피를 실컷 맛본 적이 없어서 조금 녹도 슬었는데 어디, 네놈의 뼈로 날이나 갈아야겠다. 그러니 도망갈 생각은 말거라.”
이제 물러설 수도 없도록 상대는 주도면밀하게 말로 먼저 다짐을 두었다. 그러나 사람을 가늠하는 선견지명이 없는 마타하치는 여전히 여유로웠다.
“허세는 집어치우지. 다시 생각할 기회는 지금뿐이다. 목숨만은 살려 줄 테니 늦기 전에 빨리 사라지는 게 좋을 게다.”
“오히려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그런데 조금 전에 너는 나에게 들려줄 이름은 없다고 거드름을 피웠지만, 승부를 겨루기 전에 먼저 그대의 존명을 물어보는 것이 예의이니 들려주지 않겠는가?”
“흠, 들려주도록 하지. 허나 놀라지는 마라.”
“놀라지 않을 테니 어디 물어보겠다. 먼저, 검의 유파는?”
그런 말을 하는 인간치고 강했던 놈은 없었다. 마타하치는 점점 얕잡아 보며 우쭐해서 대답했다.
“도다 누도세이겐富田人道勢源의 분파로서, 주조류의 인가를 받았다.”
“뭐, 주조류?”
고지로는 조금 놀라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위압적으로 나가지 않으면 거짓임이 탄로 날지 모른다고 생각한 마타하치가 되물었다.
“그러면 이번엔 그쪽의 유파를 들어 볼 차례이군. 그것이 승부의 예의라고 하니.”
상대방의 말을 그대로 흉내 내서 되받아칠 심산이었다. 그러자 고지로가 말했다.
“내 유파와 이름은 후에 말하겠네. 그런데 그쪽의 주조류는 대체 누구를 스승으로 모시고 배웠는가?”
묻는 것이 바보라는 듯 마타하치는 일언지하에 답했다.
“가네마키 지사이 스승님이다.”
“응?”
고지로는 더욱 놀랐다.
“그렇다면 이토 잇토사이를 아는가?”
“물론, 알고 있고말고.”
마타하치는 아주 흡족해했다. 벌써 효과가 나타난 증거라고 생각했다.
덴시치로의 뒤꿈치가 눈 위에서 여섯 자 반 정도의 사선을 그리더니 무사시가 지날 공간을 열어 주었다. 그러나 무사시는 마루 위에서 옆으로 열두세 자 정도 걸어가더니 눈 위로 내려섰다. 두 사람은 불당의 마루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는 않았다. 덴시치로는 무사시가 그곳으로 걸어갈 때까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던 것이다. 상대에게 압박을 가하듯 불시에 일갈을 하더니, 그의 체구에 어울리는 장검으로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무사시가 있던 위치를 정확하게 갈랐다.
그러나 목표를 베는 칼의 정확함이 반드시 적을 양단하는 정확함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덴시치로의 칼의 속도보다 상대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아니 그 이상으로 빨랐던 것은 상대의 늑골 아래에서 나온 흰 칼날이었다. 두 자루의 칼이 번쩍하고 허공에서 섬광을 발한 것을 본 후에는 하얀 눈이 땅으로 떨어져 내리는 모습조차 너무나 느리게만 보였다.
하지만 눈이 내리는 속도에도 악기의 음계처럼 서파급序破急이 있었다. 바람이 불자 급急으로 변하더니 땅 위의 눈을 말아 올려 회오리바람이 일자 파破를 일으켰다. 그리고 다시 백로의 깃털이 춤을 추는 것처럼 조용히 내리는 눈의 풍경으로 돌아오더니 땅으로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