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철학 일반 > 교양 철학
· ISBN : 9788976824738
· 쪽수 : 272쪽
책 소개
목차
머리말
철학의 슬픔
행복에 대하여
인공지능, 무한, 그리고 얼굴
사랑과 용서
환대하는 삶
정치와 윤리
약함을 향한 윤리
끝나지 않은 변증법의 모험
민주주의를 넘어서
후주 | 후기 | 찾아보기
저자소개
책속에서
철학은 자신의 처지에 대한 반성을 바깥을 향한 시선과 관련지음으로써 그 슬픔을 견딜 수 있다. 물론 이제 철학은 빛을, 바깥의 시선을 참칭할 수 없고, 그래서도 곤란하다. 오늘날 영혼이 철학적 개념으로 통용될 수 있을까? 바깥을 안으로 들여오려는 노력은 감각에서보다 사유에서 더 어렵다. 바깥을 지시하는 개념에는 내용이 따라붙을 수 없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안의 처지에서 그 시선이 밖을 향하는지를 적시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영혼은 내부에 들어와 있는 외부를 지칭하기 위해 라캉이 만들어 냈던 말인 ‘외심’(extimit?)과 닮았다. 내장(內藏)된 외부를, 외부로 난 구멍을 지닌 영혼은 바깥을 응시한다.
동물이나 기계와 인간의 관계도 유사하지 않을까? 오늘날의 생물학적 지식이 알려 주는 것처럼 인간이 다른 동물과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큰 거북함 없이 받아들이려면, 동물들을 일방적으로 지배하고 착취하는 우리 삶의 방식이 바뀔 필요가 있다. 우리와 별다른 차이가 없는 존재들을 비좁은 축사에 가두고 학대하며 마구 잡아먹는 것은 매우 껄끄러운 일일 테니 말이다. 반려동물과 소통하며 생활을 나누는 사람들은 오랑우탄만이 아니라 개와 고양이도 각자 개성이 있는 ‘person’이라고 생각할 법하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을 지닌 기계의 경우는 어떨까? 우리가 인공지능과 소통하는 삶에 익숙해진다면, 또 인공지능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고 우리를 밀어내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면, 거기에 ‘person’의 지위를 부여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지 않겠는가.
애당초 시간이란 무한하리만큼 펼쳐진 세계의 부분부분을 기억을 통해 담아내는 유한자 없이는 다루어질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시간의 질서가 자의적으로 성립한다는 말은 아니다. 시간의 비가역성을, 시간의 화살을 실제로 되돌릴 수는 없다. 다만, 마치 그런 것처럼 다시 새로운 시작을 마련하는 방법을 생명이 구현해 내고 있다는 얘기다. 오래된 생명체가 죽고 새로운 생명체가 태어나는 것은 자연이 허락하는 갱신의 길이고, 이것이 레비나스가 말하는 용서, 즉 일어난 잘못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되돌려 회복하는 일이다. 좀 더 가벼운 예로는, 몸에 난 상처가 아무는 것, 피로에 지친 몸이 쉼을 통해 다시 활력을 찾는 것 따위를 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