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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문학 잡지 > 기타
· ISBN : 9788979736175
· 쪽수 : 164쪽
· 출판일 : 2023-12-06
책 소개
목차
서문
시
박길숙 빌린 정원 외 1편
석민재 서촌구석몰길 외 1편
오성인 악몽을 헤매는 집 외 1편
오윤경 빈집 외 1편
이병국 fine home 외 1편
이소회 수야리, 여름의 집 외 1편
이원석 Landing march 외 1편
이이후 상담실 외 1편
이현곤 새집 외 1편
차유진 구천동으로 보내는 편지 외 1편
소설
김지현 샐리하우스
박창용 재느티
서 진 ㅇㅋ
장미영 이사
정재운 지구라는 집을 놓고 생각해보면
평론
강희철 우리는 ‘집’을 소유할 수 있는가?
우은진 보통의 삶에 대한 욕망
무크지 쨉 8호 작가들
저자소개
책속에서
옆집 원규네 고양이가 담을 넘는다 나비라는 이름을 넥타이처럼 매고
난간에 걸터앉아 빛을 그러모은다 빛을 놓친 손등을 핥다가 사타구니를 핥는다
시폰 원피스를 입은 빛이 가만히 내려앉는다 난간 돌무늬에 집중한다
나비가 솟아오른다 입에 붉은 옷자락을 물고 잽싸게 달아난다
원규가 운다
나는 오월의 달력으로 만든 상자에서 귀뚜라미를 꺼낸다
여치를 꺼낸다 날개를 뗀 곤충들을 쏟아낸다
원규가 운다 구멍 난 잠자리채를 손에 꼭 쥐고
일층 원상사네 마당에는 감나무가 있다 연못이 있는데 물고기는 없다
감나무는 푸르다 잎도 열매도 의심도 푸르다
이층 우리 집까지 손을 뻗는다 종종 옆집 담장을 넘보기도 한다
원상사네 할머니는 아주 큰 울화통을 지녀 큰 소리를 지른다
언 놈이 생감을 다 따버린겨? 이 우라질 놈들, 손모가지를 잘라 담벼락에 하나하나 꽂아 버릴껴!
나무에 앉아있던 새가 놀라 똥을 지리며 날아가고 팔을 뻗던 나무는 슬몃 새끼손가락부터 거둬들인다 원규네 나무창이 덜컹덜컹 닫힌다
나비는 돌아오지 않고 오후의 배경에 서 있던 엄마는 젖은 수건을 탈탈 턴다
물방울 하나에서 빛이 막 태어나던 순간이었다
―박길숙, 「빌린 정원」
구석은 완전하고
구석 이상의 구석은 없다
하루도 어김없이 해가 지는 일과 골목을 위한 골목의 의지와
같은 시간에 산책하는 개와 아저씨와 세 발 오토바이와
아문 상처와 절망의 끝이 어디쯤인지 알고 있는 눈동자
우리 머리 위로 그림자가 필 때
소 키우던 아저씨가 죽고
은퇴한 비행기 조종사가 이사 왔다
크게 놀라지 않고 크게 실망하지 않고
새로운 구석을 만들기 위해 구석을 낭비하지 말자
오늘이 가고 내일이 가고
같은 이야기를 주인공만 바꿔가며 만든 이야기가 아니다
종점에 꽂혀있는 깃발이 아니다
구석은 서촌에 있고
구석은 구석에 몰려있다
―석민재, 「서촌구석몰길」
집을 나간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는다
배가 고프다고 이 앞에서 맛있는 것
사서 금방 오겠다고 했는데 코로나로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과
오랜만에 약속을 잡았다고 한껏 들뜬 채로
늦지 않게 오겠다고 했는데
가게에서 먹고 싶은 음식은 샀는지
그토록 보고 싶었던 친구들은 만났는지
밤이 늦도록 어째서 소식이 없는 걸까
핼러윈, 오늘은 죽은 영혼들이
되살아나 돌아온다는 날인데 주머니에
사탕과 초콜릿을 가득 채우고 누구나
재회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데
오전과 오후에 손을 흔들면서 얼른
다녀오겠다고 집밖으로 나선 너희는
신발과 가방, 헝클어지고 찢어진 옷만
남겨두고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맛있는 음식을 사러 나가는 길과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길을 도대체 누가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만들었을까
늦지 않았으니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
금방이라도 골목 끝에서 웃는 얼굴로
나타날 것만 같은 너희를 기다리는 집으로
―오성인, 「집으로 돌아가자-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애도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