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80692231
· 쪽수 : 247쪽
· 출판일 : 2010-05-25
목차
김은주 - 다만,
찌 / 똥방 / 만어사 진순이 / 해조음 / 도법 / 절정 / 거처 / 돌꽃 / 그림자 / 찰나 / 흙빛, 그 말랑함에 대해 / 아담스 애플 / 해거리 / 밥 / 희돌이 법칙
윤명희 - 오직,
객기 / 거룩한 밤 / 기다리는 여심 / 다시 만난 레드 제플린 / 말 대가리 뿔 / 잣대 / 심연 / 용용 / 생채기 / 타 / 양철통 / 울엄마 / 방앗공이 / 얼음이 녹으면 / 혼자된 남자
추선희 - 그냥
베이스 / 시침질 / 나무 아래서 / 청라 언덕 / 보자기 / 결 / 그냥 / 현 / 누구나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어 / 툇마루 / 90% 대 10% / 책과 넥타이 / 숨길 수 없는 세 가지 / 몸살기 / 축제
발문 - 삼인행의 글쓰기_윤대석
책속에서
찌의 생명은 목 내림에 있다.
순간에 이루어지는 목 내림을 놓치지 않으려면 온통 시선을 찌에 꽂고 있어야 한다. 작은 바람에도 찌는 제 몸을 흔든다. 물살이 이는 대로 흔들리는 찌는 아무 저항이 없다. 언제 제대로 된 목 내림이 이루어질지 모르니 그저 막막한 수면을 대면하고 앉아 찌가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수면 아래 상황을 눈으로 감지 할 수 없으니 찌를 통해 물속을 읽는 것이다. 수면 아래 미끼의 무게와 수면 밖 찌의 부력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질 때 찌는 흔들림이 적고 안정감이 생긴다. 제대로 된 입질이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쉽사리 시원스런 목 내림을 연출하지 않는다. 불시에 이루어질 그 순간을 위해 긴 시간 기다림이라는 이름 하나로 나는 견딘다. 이것이 낚시의 묘미다. 무심한 기다림의 마디 사이를 치고 들어오는 찌의 시원스런 목 내림은 세상 잡사를 한순간에 잊게 하는 마력(魔力)이 있다.
마력에 이끌려 오늘도 나는 연잎을 밀어내고 맷방석만큼 수면을 열었다. 저수지 전체가 푸른 연잎에 덮여 있어 한 치의 하늘도 수면 안으로 끌어 들이지 못한 저수지는 갑갑해 보인다. 긴 갈고리로 수면의 연잎 몇 장 걷어 내고 나니 저수지에 숨구멍이 열렸다. 손바닥만 한 푸른 하늘이 연잎 사라진 자리에 들어앉았다.
하늘과 수면이 만난 저 자리에 찌를 띄워야 한다. 이 세 가지가 제대로 궁합을 이루게 되면 고기 낚는 일 못지않게 찌 보는 일도 즐겁다. 찰랑한 수면 위에 직립의 찌가 미려한 몸매로 서 있는 모습은 말 그대로 예술이다. 손맛을 느끼기 이전에 눈 맛을 먼저 느끼는 낚시의 색다른 별미 중에 하나다. 적당한 바람과 지금 막 햇살에서 놓여난 자연, 그리고 저수지 너머 먼 산, 방죽에 매어 놓은 염소, 이들을 배경으로 흔들리고 서 있는 찌. 생각이 이쯤에 닿으면 낚시 펼치는 손길이 갑자기 바빠진다.
빠르게 수면에 띄울 낚시를 한 층씩 뽑아낸다. 동그란 몸통 속에 겹겹이 제 몸을 감추고 있던 낚시가 길게 기지개를 켠다. 시원스레 뻗어 나간 낚시의 끝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굳어 막혔던 생각들도 크게 가지를 편다.
물을 넣고 떡밥을 주물러 뻗어 나간 생각의 가지 끝에 매달 미끼를 만든다. 손끝에 느껴지는 떡밥의 질감이 부드럽고 차진 날은 목 내림도 잘될 뿐더러 조과(釣果)도 좋다. 똑같은 재료의 음식도 하는 이의 손끝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지듯이 떡밥의 뭉침 또한 그날 물의 비율과 손끝의 터치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물이 적어 떡밥이 잘 뭉쳐지지 않는 날은 떡밥의 풀림과 확산이 빨라 잡어들의 군집이 쉽게 이루어진다. 그럼 낚시가 피곤해진다. 제대로 된 입질이 아니라 씨알 작은 잡어들이 미끼를 수없이 공격해 오는 바람에 수면 밖의 찌는 트위스트를 출 수밖에 없다. 이럴 때는 빈번한 챔질로 인해 낚시의 재미가 반감된다. 제대로 뭉쳐 수면 아래서 서서히 풀어지는 떡밥은 오랜 기다림을 먼저 선사한 후에 대물을 몰고 와 시원한 손맛을 느끼게 해 준다.
떡밥의 뭉침만 잘되었다 하여 찌가 안정감 있는 것도 아니다. 바늘에 다는 과정, 바람과 물살의 세기에 따라 떡밥의 풀림이 달라지니 그 모두가 잘 어우러져야 제대로 된 찌의 자태를 만날 수 있다.
한 손으로는 찌를, 다른 한 손으로는 낚시를 잡고 서서 멀리 하늘을 본다. 낚시를 던질 때 느껴지는 시원한 쾌감은 무엇과도 견줄 수 없다. 몸을 한껏 뒤로 젖히며 낚시를 허공에 던지는 순간 핑 하며 낚시 휘는 소리가 겨울바람 같다. 탄력 있게 뒤로 휘었다 다시 가속이 붙어 앞으로 나아가는 낚싯줄을 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도 낚시 추를 따라 물수제비를 뜬다.
제대로 된 수면에 찌가 닿으면 잠시 낚시 받침을 미뤄 두고 손에 낚싯대를 잡고 서 있어도 그 느낌이 괜찮다. 눈은 찌에다 두고, 손에 낚싯대를 잡고 서 있으면 손바닥에 전해져 오는 미세한 떨림이나 당김이 시각과 촉각을 동시에 즐겁게 해 준다. 가끔 수면을 훑고 지나가는 바람 소리, 컹컹 저수지를 울리는 황소개구리 울음까지 더해지면 쉬고 있던 청각까지 열려 오감이 즐거워진다.
어느 정도 선 자세로 오감을 즐겼다면 낚시를 받침대에 내려놓고 고요히 앉아 볼 일이다. 앉아서 숨을 고르고 찌 놀림을 자세히 관찰하다 보면 그때부터는 어느 정도 물속 풍경이 머리에 그려진다. 물살의 세기, 수초의 움직임, 그 사이로 지나가는 어린 물고기들, 찌는 이런 풍경을 탐색해 수면 밖 나에게 끝없이 전송해 준다. 내 생각은 그 타전을 받아 들고 같이 물살을 헤치며 수초를 가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