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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81339500
· 쪽수 : 368쪽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나는 그때 처음으로 진정한 용기란 무엇인가를 깨닫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학교 캠프 때의 야간잠행 놀이처럼 모든 것이 비현실적이었다. 이제 어둠 속에서 나가는 것은 내가 전에는 결코 보여줄 일이 없었던, 전혀 알지도 못했던 종류의 용기를 보여주는 일이 될 터였다. 내 몸과 마음을 탐색해 어딘가에 있을지 모를 나의 새로운 부분을 찾아야만 했다. 내 안에 그런 용기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에는 알지 못했던 용기가. 만약 찾아낼 수만 있다면 그 용기를 십분 발휘하여 어쩌면 내 몸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던 두려움을 녹여버릴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어쩌면 내가 이 위험하고도 소름끼치는 일을 해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들의 얼굴이 처음으로 보이는 순간 나는 성냥을 그었다.
불이 붙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별 탈 없던 손이 갑자기 떨리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죽겠어. 그것도 단지 성냥불을 못 켜서.’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억울하고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다시 시도했지만 손이 너무 떨렸다. 군인들이 기계를 지나쳐버릴 것만 같았다. 케빈이 내 손목을 붙잡아 주었다. “얼른 다시 해봐.” 촉각을 곤두세운 군인들의 얼굴이 다시 우리가 있는 방향으로 홱 돌려진 것으로 보아, 아마 케빈의 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나는 세 번째로 성냥을 그었다. 이젠 점화를 할 유황도 충분치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쉭 하는 소리와 함께 불이 붙었고, 나는 얼른 성냥을 바닥에 내던졌다. 어찌나 세게 던졌던지 불이 꺼지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였다. 불은 거의 꺼질 뻔했다. 불꽃이 작은 점으로 사그라지는 그 짧은 순간 나는 생각했다. ‘우린 죽었어. 전부 다 내 잘못이야.’ 그 순간, 쉭 하는 소리와 함께 휘발유에 불이 붙었다.
나는 더 이상 다수결의 원칙에 얽매이지 않기로 했다. 이젠 아까와 상황이 달라졌으니까. 나는 삽을 위로 기울인 다음 변속 레버를 잡았다. 트럭은 거친 소리를 내며 마지못해 다시 후진을 했다. “클러치를 놓치면 안 돼.” 나는 스스로에게 당부했다. 그리고 트럭한테도 간청했다. “제발 시동을 꺼뜨리지 말아줘.” 차가 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거 써.” 내 어처구니없는 명령에 로빈은 황당한 웃음을 지으면서도 안전모를 집어 들었다. 첫 번째 총탄 세례가 쏟아졌다. 마치 대형 해머로 두드리는 것처럼 총알들이 트럭의 강철판에 박히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그 중 일부는 멋모르고 달려든 눈먼 모기처럼 다시 어둠 속으로 튕겨져 나갔다. 나는 부디 그 때문에 엉뚱한 사람이 봉변을 당하지 않기를 빌었다. 앞유리가 폭포수처럼 바스러져 내렸다. “후진할 땐 필요 이상으로 단 1인치도 더 가서는 안 된단다.” 아빠, 모르실까 봐 말씀드리는데요, 요즘은 미터법을 쓴답니다. 인치법은 증기선이 다니고 흑백텔레비전이 나오던 시절에나 쓰던 거예요. 어쨌거나 때로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아니 어디든 가기 위해서, 뒤로 물러서야 할 때도 있는 법.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우린 빨라도 너무 빠르게 뒤로 가고 있었다. 나는 후진으로 코너를 돌 마음을 먹었다. 차를 멈추고 기어를 바꿔가며 차의 방향을 바로잡아서 갈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난 리가 어디든 꽉 붙잡고 있길 바라며 핸들을 돌리기 시작했다. 내 형편없는 운전 실력은 최소한 상대편에게도 애를 먹였을 것이다.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타깃이었을 테니까. 무언가에 걸려 휘청한 다음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확 숙였다. 뭔가 또 다른 것이 트럭 위로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나무였다. 나는 핸들을 아까보다 더 과격하게 돌렸다. 왼쪽 바퀴들이 땅에서 붕 떴다. 로빈이 평정심을 잃고 비명을 지르다가 이내 “미안해.” 하고 사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과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