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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우리의 차와 미래의 문장들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82183850
· 쪽수 : 372쪽
· 출판일 : 2026-04-06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82183850
· 쪽수 : 372쪽
· 출판일 : 2026-04-06
책 소개
취약한 존재들이 서로를 지키려는 순간을 통해 ‘지킴’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우리의 차와 미래의 문장들』은 관계와 상실, 책임의 감정을 따라가며 지키려 했던 마음의 흔적을 섬세하게 그려낸 소설집이다.
이소정의 세계에서 지킴은 힘 있는 자가 내세우는 구원이나 정의, 권력의 이름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소정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취약한 기반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존재들이다. “아무것도 되지 못한”, “바랐으나 이루지 못한 일”투성이인(「날씨에 대해 우리가 했던 말」), 그래도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 늘 당하고 마는 사람. 그렇게 점점 사람들 사이에서 안 보이게 되는 사람”(「오영과 해영」), 그래서 “이곳에 이런 식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는 사람(「훠궈」)이다. “참지 못하고 더러운 것들을 다 쏟아내야지 직성이 풀리는 사람”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참는 쪽의 사람들이다. 그래도 이들은 “더 작은 것. 더 작아서 보이지 않는 것”을 지키려는 사람들이다. 약하고 작은 존재를 쉽게 버리고 자주 잊어버리는 세상을 향해 “한번 버려진 걸 또 어떻게 버려”라고 반문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누군가를 지키는 일은, 고통과 연약함을 드러내는 타자의 얼굴 앞에서의 ‘무한한 책임’을 역설한 철학자 레비나스의 말대로 ‘해치지 말라’는 존재의 무언의 요구에 응답하는 일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여기에 효율과 보상, 힘의 역학 같은 게 끼어들 틈은 없다.
『우리의 차와 미래의 문장들』은 이런 인물들의 사소한 순간, 대화의 파장, 마음의 잔상을 따라 어쩌면 무심하게 때로는 농밀하게 그러나 결코 감정을 소모하지 않는 단정하고 다부진 화법으로 이야기의 압력을 생성해간다. 그렇게 서사적 단절과 정서적 응축 가운데 직조된 공백 사이를 더듬거리며 이야기를 수집하다 이 소설집의 온도를 감지할 수 있는 지점쯤에서 독자는 결코 간단치 않은 질문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가령, 타자의 얼굴이 부여하는 명령은 왜 상처 난 자들에게 더 쉽게 스며드는 것일까, 이런 무익하고 무해한 지킴의 자리에서 인간은 무엇으로 남을 수 있는가, 그 무용한 시도와 무력한 패배 속에서 문학은 무엇을 볼 수 있는가와 같은. 말하자면, 『우리의 차와 미래의 문장들』은 이런 질문을 서사의 형태로 번역하고 있는 셈이다.
이 소설집의 표제작 「우리의 차와 미래의 문장들」을 비롯해 「날씨에 대해 우리가 했던 말」, 「훠궈」, 「앨리스 증후군」, 「배드민턴」의 인물들은 모두 “복원 불가능한 균열”의 상태를 일상으로 살고 있다. 이들은 “보이지도 않는 실금 같은 것들이 모든 것을 집어삼”킬까 봐 미세한 균열 “딱 그만큼”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관계를, 가족을, 자기 자신을, 그리고 살아 있음을 놓쳐버리고 만 사람들이다.
「우리의 차와 미래의 문장들」의 은영과 보숭은 “어떤 것을 하지 않아서 가능한 미래”와 “하지 않아서 생긴 일” 사이에서 좌초된 관계라 할 수 있다. 보숭 누나의 부고 소식을 듣고 장례식에 간 은영은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려 한쪽 신발만 신겨진 채 발견되었다는 누나의 모습에서 캐나다 유학 시절 자신의 ‘버려진 신발’을 떠올린다. 학교 선생님과 친구들이 보여주던 과한 웃음과 그 웃음 끝에 한 짝씩 사라지던 동양인 아이들의 운동화. 그 운동화들이 버려진 외지고 어두운 응달의 이미지는 ‘보편의 행복’도 ‘보편의 죽음’도 누릴 수 없었던 보숭 누나의 레즈비언 정체성과 환치되며 그녀들이 감당해야 했던 ‘보편’이라는 세계의 배타성과 폭력성을 선명하게 적시한다. 그런데 은영이 그 ‘버려진 신발’의 기억을 잊을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자신의 신발이 무사하기 위해 나중에 전학 온 보숭의 신발이 대신 사라지는 것을 외면했고, 이를 보숭에게 말하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니까 보숭 누나의 죽음을 막지 못한 어린이집 차량 기사처럼 그 시절 보숭이 당했던 일들은 은영이 “손을 내밀지 않고 가만히 있”어 생긴 일이다.
생활고로 동반 자살을 한 「훠궈」의 가족—화자인 딸 최지은을 비롯해 엄마 고미영, 아빠 최태훈, 동생 최동운—은 ‘귀신’이 된 처지인데도 여전히 열두 번의 이사 끝에 마지막 집이 된 과수원 냉동창고 컨테이너 안에 함께 머물며 밤마다 모여 마늘을 까는 일상의 노동을 계속해나간다. 그러나 실상은 이들 가족이 생을 마감한 뒤에도 농약병이 뒹구는 집 안에 부패 중인 채로 방치되어 있다는 것인데, 이로 인해 가장 안전해야 할 집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배제로 보호와 지킴이 실패했음을 드러내는 사건 현장으로 전환된다. 여기서조차 이들의 존재감은 “이곳에 이런 식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아무도 알아챌 수 없고, 발견되더라도 “일가족 생활고를 비관해……”라는 기사 한 줄로 정리되고 말 정도로 미약하다. 이 가족의 마지막 음식이었던 ‘훠궈’가 남긴 뒷맛과 과로사한 유정이 옛 애인인 지은의 집에 들고 온 빈 화분 속 씨앗은 “부재를 통해 존재를 증명”함으로써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았을 일에 대한 모든 단서이자 가능성”을 시사한다. 지은은 화분에 핀 꽃을 보고 누군가는 “스스로를 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자기 스스로를 구하라는 것, 죽은 이들이 살아서 미처 하지 못한 말, 너무 늦어버려 할 수 없는 말은 이런 게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수영장」 「테라스」 「밸런스 게임」은 끝내 누군가를 구하지 못해 마음에 ‘자국’이 남은 채 붕괴된 세계에 갇힌 사람들의 이야기라 할 수 있을까. 「수영장」의 ‘나’는 원전 화학단지 누출 사고로 폐허가 된 도시를 부유하는 유령이다. ‘나’는 피난 상황에서의 무모한 선택으로 가족과 헤어져 운전 중 ‘판’을 차로 치고 자신도 도로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사망했다. ‘나’는 매일같이 재앙이 휩쓸고 간 텅 빈 도시 한구석 버려진 수영장에서 ‘판’을 만나 가족과의 마지막 “그날을 이야기”하고 가족이 없는 빈집으로 귀가하는, “다시 그 시간을 사는” 행위를 반복한다. 그리고 살아서 보호받지 못했던 아동학대 피해자 ‘판’은 화자의 죄책감이 고여 있는 장소인 수영장에서 매일 ‘생존수영’을 연습한다. 이때 이 수영장이 본래 소방서 건물을 개조한 시설이었다는 아이러니한 사실은 이곳이 실패한 보호와 구조를 상징하는 공간임을 알게 한다. 다시 태어나면 소방관이 되고 싶다는 화자의 말 역시 물이 빠진 수영장처럼 이미 실패한 지킴에 대한 가망 없는 희구일 뿐이다. 그러나 가족과의 마지막 순간을 복기하며 구하지 못한 아내와 쌍둥이 아이들 대신 판을 돌보는 ‘나’의 모습은 행위로서의 지킴이 ‘책임’의 형태로도 지속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반려견을 두고 혼자 도망갔다는 죄책감에 죽어서도 방독면을 쓴 채 개를 찾아 헤매는 미진 엄마도 그런 경우다. 그녀에게 지키지 못한 가족인 반려견 ‘미진’은 “버린다고 버릴 수 있는 게 아”닐뿐더러 “아무 일 없다는 듯” 살아가기란 더더군다나 불가능한 일이다. 상실의 경중에 상관없이 지키지 못한 자들의 애도에는 유효기간도 골든타임도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이소정 소설에서 누군가를 지킨다는 말은 거창한 약속이나 의지, 당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헤아리던 날씨, 반복하던 놀이, 미묘하게 조율해온 거리, 작은 선택들의 연쇄와 같이 균열을 내장한 일상의 자리에서 생성된다. 그래서 지킨다는 말은 약속의 언어가 아니라 인간의 본질적 취약함을 드러내는 결핍의 언어다.
『우리의 차와 미래의 문장들』은 그렇게 발생하는 일상의 마찰을 세밀하게 포착함으로써 ‘지킨다’는 행위가 사실상 얼마나 불완전한 감정과 조건 속에서 발현되고 소진되는지를 보여준다. 힘 있는 지킴의 숭고함이 아닌 무력한 지킴의 무익함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지켜낸 결과가 아니라 지키려 했던 마음의 자국일 터, 『우리의 차와 미래의 문장들』에서 우리는 그 자국이 세계의 온도를 미세하게 바꾸는 진동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목격할 수 있다.
이처럼 이소정 소설이 역설하는 대가 없는 무익한 지킴이란 권력의 회로를 거부하는 조용한 반항, 무너진 세계 속 더 약한 존재의 얼굴을 향하는 마음, 그 생을 잊지 않겠다는 조용한 다짐, 소멸 이후에도 남는 잔존의 힘 같은 것으로 구성된다. 이 불가능한 윤리를 언어로 새기며, 이소정의 문학은 보잘것없는 온기로도 지켜지는 존재와 사람의 체온으로만 할 수 있는 일을 기록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그 언어를 기억하는 한 아직은 우리가 이 세계의 셈법에 길들지 않고 ‘지키는 자’로 남을 수 있음을 증언한다.
『우리의 차와 미래의 문장들』은 이런 인물들의 사소한 순간, 대화의 파장, 마음의 잔상을 따라 어쩌면 무심하게 때로는 농밀하게 그러나 결코 감정을 소모하지 않는 단정하고 다부진 화법으로 이야기의 압력을 생성해간다. 그렇게 서사적 단절과 정서적 응축 가운데 직조된 공백 사이를 더듬거리며 이야기를 수집하다 이 소설집의 온도를 감지할 수 있는 지점쯤에서 독자는 결코 간단치 않은 질문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가령, 타자의 얼굴이 부여하는 명령은 왜 상처 난 자들에게 더 쉽게 스며드는 것일까, 이런 무익하고 무해한 지킴의 자리에서 인간은 무엇으로 남을 수 있는가, 그 무용한 시도와 무력한 패배 속에서 문학은 무엇을 볼 수 있는가와 같은. 말하자면, 『우리의 차와 미래의 문장들』은 이런 질문을 서사의 형태로 번역하고 있는 셈이다.
이 소설집의 표제작 「우리의 차와 미래의 문장들」을 비롯해 「날씨에 대해 우리가 했던 말」, 「훠궈」, 「앨리스 증후군」, 「배드민턴」의 인물들은 모두 “복원 불가능한 균열”의 상태를 일상으로 살고 있다. 이들은 “보이지도 않는 실금 같은 것들이 모든 것을 집어삼”킬까 봐 미세한 균열 “딱 그만큼”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관계를, 가족을, 자기 자신을, 그리고 살아 있음을 놓쳐버리고 만 사람들이다.
「우리의 차와 미래의 문장들」의 은영과 보숭은 “어떤 것을 하지 않아서 가능한 미래”와 “하지 않아서 생긴 일” 사이에서 좌초된 관계라 할 수 있다. 보숭 누나의 부고 소식을 듣고 장례식에 간 은영은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려 한쪽 신발만 신겨진 채 발견되었다는 누나의 모습에서 캐나다 유학 시절 자신의 ‘버려진 신발’을 떠올린다. 학교 선생님과 친구들이 보여주던 과한 웃음과 그 웃음 끝에 한 짝씩 사라지던 동양인 아이들의 운동화. 그 운동화들이 버려진 외지고 어두운 응달의 이미지는 ‘보편의 행복’도 ‘보편의 죽음’도 누릴 수 없었던 보숭 누나의 레즈비언 정체성과 환치되며 그녀들이 감당해야 했던 ‘보편’이라는 세계의 배타성과 폭력성을 선명하게 적시한다. 그런데 은영이 그 ‘버려진 신발’의 기억을 잊을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자신의 신발이 무사하기 위해 나중에 전학 온 보숭의 신발이 대신 사라지는 것을 외면했고, 이를 보숭에게 말하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니까 보숭 누나의 죽음을 막지 못한 어린이집 차량 기사처럼 그 시절 보숭이 당했던 일들은 은영이 “손을 내밀지 않고 가만히 있”어 생긴 일이다.
생활고로 동반 자살을 한 「훠궈」의 가족—화자인 딸 최지은을 비롯해 엄마 고미영, 아빠 최태훈, 동생 최동운—은 ‘귀신’이 된 처지인데도 여전히 열두 번의 이사 끝에 마지막 집이 된 과수원 냉동창고 컨테이너 안에 함께 머물며 밤마다 모여 마늘을 까는 일상의 노동을 계속해나간다. 그러나 실상은 이들 가족이 생을 마감한 뒤에도 농약병이 뒹구는 집 안에 부패 중인 채로 방치되어 있다는 것인데, 이로 인해 가장 안전해야 할 집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배제로 보호와 지킴이 실패했음을 드러내는 사건 현장으로 전환된다. 여기서조차 이들의 존재감은 “이곳에 이런 식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아무도 알아챌 수 없고, 발견되더라도 “일가족 생활고를 비관해……”라는 기사 한 줄로 정리되고 말 정도로 미약하다. 이 가족의 마지막 음식이었던 ‘훠궈’가 남긴 뒷맛과 과로사한 유정이 옛 애인인 지은의 집에 들고 온 빈 화분 속 씨앗은 “부재를 통해 존재를 증명”함으로써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았을 일에 대한 모든 단서이자 가능성”을 시사한다. 지은은 화분에 핀 꽃을 보고 누군가는 “스스로를 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자기 스스로를 구하라는 것, 죽은 이들이 살아서 미처 하지 못한 말, 너무 늦어버려 할 수 없는 말은 이런 게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수영장」 「테라스」 「밸런스 게임」은 끝내 누군가를 구하지 못해 마음에 ‘자국’이 남은 채 붕괴된 세계에 갇힌 사람들의 이야기라 할 수 있을까. 「수영장」의 ‘나’는 원전 화학단지 누출 사고로 폐허가 된 도시를 부유하는 유령이다. ‘나’는 피난 상황에서의 무모한 선택으로 가족과 헤어져 운전 중 ‘판’을 차로 치고 자신도 도로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사망했다. ‘나’는 매일같이 재앙이 휩쓸고 간 텅 빈 도시 한구석 버려진 수영장에서 ‘판’을 만나 가족과의 마지막 “그날을 이야기”하고 가족이 없는 빈집으로 귀가하는, “다시 그 시간을 사는” 행위를 반복한다. 그리고 살아서 보호받지 못했던 아동학대 피해자 ‘판’은 화자의 죄책감이 고여 있는 장소인 수영장에서 매일 ‘생존수영’을 연습한다. 이때 이 수영장이 본래 소방서 건물을 개조한 시설이었다는 아이러니한 사실은 이곳이 실패한 보호와 구조를 상징하는 공간임을 알게 한다. 다시 태어나면 소방관이 되고 싶다는 화자의 말 역시 물이 빠진 수영장처럼 이미 실패한 지킴에 대한 가망 없는 희구일 뿐이다. 그러나 가족과의 마지막 순간을 복기하며 구하지 못한 아내와 쌍둥이 아이들 대신 판을 돌보는 ‘나’의 모습은 행위로서의 지킴이 ‘책임’의 형태로도 지속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반려견을 두고 혼자 도망갔다는 죄책감에 죽어서도 방독면을 쓴 채 개를 찾아 헤매는 미진 엄마도 그런 경우다. 그녀에게 지키지 못한 가족인 반려견 ‘미진’은 “버린다고 버릴 수 있는 게 아”닐뿐더러 “아무 일 없다는 듯” 살아가기란 더더군다나 불가능한 일이다. 상실의 경중에 상관없이 지키지 못한 자들의 애도에는 유효기간도 골든타임도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이소정 소설에서 누군가를 지킨다는 말은 거창한 약속이나 의지, 당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헤아리던 날씨, 반복하던 놀이, 미묘하게 조율해온 거리, 작은 선택들의 연쇄와 같이 균열을 내장한 일상의 자리에서 생성된다. 그래서 지킨다는 말은 약속의 언어가 아니라 인간의 본질적 취약함을 드러내는 결핍의 언어다.
『우리의 차와 미래의 문장들』은 그렇게 발생하는 일상의 마찰을 세밀하게 포착함으로써 ‘지킨다’는 행위가 사실상 얼마나 불완전한 감정과 조건 속에서 발현되고 소진되는지를 보여준다. 힘 있는 지킴의 숭고함이 아닌 무력한 지킴의 무익함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지켜낸 결과가 아니라 지키려 했던 마음의 자국일 터, 『우리의 차와 미래의 문장들』에서 우리는 그 자국이 세계의 온도를 미세하게 바꾸는 진동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목격할 수 있다.
이처럼 이소정 소설이 역설하는 대가 없는 무익한 지킴이란 권력의 회로를 거부하는 조용한 반항, 무너진 세계 속 더 약한 존재의 얼굴을 향하는 마음, 그 생을 잊지 않겠다는 조용한 다짐, 소멸 이후에도 남는 잔존의 힘 같은 것으로 구성된다. 이 불가능한 윤리를 언어로 새기며, 이소정의 문학은 보잘것없는 온기로도 지켜지는 존재와 사람의 체온으로만 할 수 있는 일을 기록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그 언어를 기억하는 한 아직은 우리가 이 세계의 셈법에 길들지 않고 ‘지키는 자’로 남을 수 있음을 증언한다.
목차
날씨에 대해 우리가 했던 말 7
테라스 45
밸런스 게임 75
오영과 해영 103
우리의 차와 미래의 문장들 137
지구의 밤 169
수영장 203
앨리스 증후군 237
훠궈 265
배드민턴 315
해설 무익한 지킴이라는, 불가능한 윤리 | 임정연(문학평론가·안양대 교수) 347
작가의 말 368
테라스 45
밸런스 게임 75
오영과 해영 103
우리의 차와 미래의 문장들 137
지구의 밤 169
수영장 203
앨리스 증후군 237
훠궈 265
배드민턴 315
해설 무익한 지킴이라는, 불가능한 윤리 | 임정연(문학평론가·안양대 교수) 347
작가의 말 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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