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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인문 에세이
· ISBN : 9788984059382
· 쪽수 : 240쪽
책 소개
목차
* 한국어판 서문: 모든 서재는 자서전이다
* 서문: 영혼의 진료실을 떠나보내며
1장 책 싸기와 책 풀기
2장 서재의 해체
3장 다락방에 틀어박힌 작가
4장 위로와 안식의 장소
5장 상실과 창조
6장 부활의 의례
7장 문학에서의 꿈
8장 생애 최초로 사서가 되다
9장 도서관과 시민 공동체
10장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 감사의 말
* 옮긴이의 말: 바벨의 도서관에서 책 제목 읽기
리뷰
책속에서
독서를 단순히 여러 즐거움 중의 하나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게 겸손한 표현이다. 내게 독서는 모든 즐거움의 원천이며, 모든 체험에 영향을 주면서 그걸 좀 더 견딜 만하고 나아가 좀 더 합리적인 것으로 만드는 행위다. 영어에서 read(읽다)라는 동사는 reason(추론하다)이라는 동사와 어원이 같다. 내게 이해가 필요한 어떤 일이 벌어지면 나는 그 일을 내가 이미 읽은 것과 비교해본다. 내가 그 벌어진 사건의 모델을 발견하는 데 언제나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럴 경우 나의 독서 행위에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내가 모델을 제공하는 페이지에 아직 접근하지 못했거나 그 페이지를 과거에 이미 읽었는데 지금은 잊어버린 탓일 거라고 짐작하는 것이다.
어쩌면 좀 더 현명한 독자에게는 모든 책의 모든 페이지가 지금 딱 필요한 대답 혹은 설명을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 우주를 반영하지 않는 텍스트는 없기 때문이다. 나의 독서 범위는 제한적인 편인데, 내가 종종 유익한 힌트를 찾아내는 책들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소설들, 『돈키호테』, 마흐무드 다르위시의 시집 등이다. 나는 이런 책들이 없는 삶을 상상하지 못한다.
내 서재에는 전문적인 장서가가 가치 있다고 할 만한 책들은 몇 권 되지 않는다. 그래도 꼽아본다면 13세기 독일 수도원의 필사실에서 제작된 채색 필사본 성경(소설가 예후다 엘버그가 내게 준 선물이다), 16세기 종교 심문관의 매뉴얼, 다수의 현대 예술가 책들, 많은 진귀한 초판본들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서명된 책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전문적인 수집가가 되기에는 돈도 부족했고(이건 오늘날에도 그러하다) 지식도 풍부하지 못했다. 나의 개인 도서관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펭귄 출판사의 최신 문고판 책들이 근엄해 보이는 가죽 장정의 초기 교부(敎父)들의 책들 옆에 느긋하게 꽂혀 있다. 내게 가장 귀중한 책은 개인적 추억이 어려 있는 책들이다. 가령 내가 아주 어릴 때 읽은 책인 1930년대에 나온, 음산한 고딕 서체로 인쇄된 그림 형제의 『동화집』이 그러하다. 여러 해 뒤 내가 그 책의 누렇게 변한 책갈피를 넘길 때마다 유년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특정한 주제의 책들─책의 역사, 성경 주석서, 파우스트의 전설, 르네상스 문학과 철학, 동성애 연구, 중세의 동물지(誌)─은 별도의 공간을 가지고 있다. 나는 수천 권에 이르는 추리소설을 갖고 있지만 스파이 소설은 별로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보다는 플라톤의 저서가 더 많고, 에밀 졸라의 전집을 가지고 있지만 모파상의 소설은 별로 없다. 존 호크스나 신시아 오지크의 작품은 모두 가지고 있으나,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른 저자들의 작품은 거의 없다. 나는 서가에 수십 권의 형편없는 책들을 가지고 있으나, 형편없는 책의 구체적 사례를 제시해야 할 때 필요하기 때문에 그것들을 버리지 않는다. 발자크는 『사촌 퐁스』에서 이런 강박적인 행동을 이렇게 합리화했다. “강박증은 사상의 지위를 획득한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