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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그림책 세트 - 전9권

민들레 그림책 세트 - 전9권

권정생, 마해송, 백석, 이억배, 현덕 (글), 정승각, 정유정, 강우근, 송진헌, 현동염, 장호, 이형진 (그림)
길벗어린이
8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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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그림책 세트 - 전9권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민들레 그림책 세트 - 전9권 
· 분류 : 국내도서 > 유아 > 그림책 > 나라별 그림책 > 한국 그림책
· ISBN : 9788986621945
· 쪽수 : 30쪽
· 출판일 : 1996-04-25

책 소개

민들레 그림책 시리즈 전9권 세트. 자연 사랑과 생명의 소중함을 우리 정서에 맞게 표현한 창작 동화를 그림책으로 꾸민 시리즈이다. 명작의 감동과 정감 있는 그림을 보는 즐거움을 함께 느낄 수 있다.

목차

강아지똥 - 민들레 그림책 1
오소리네 집 꽃밭 - 민들레 그림책 2
바위나리와 아기별 - 민들레 그림책 3
고양이 - 민들레 그림책 4
황소 아저씨 - 민들레 그림책 5
아기너구리네 봄맞이 - 민들레 그림책 6
모기와 황소 - 민들레 그림책 7
개구리네 한솥밥 - 민들레 그림책 8
강아지 - 민들레 그림책 9

저자소개

정승각 (그림)    정보 더보기
1961년 충청북도 덕동에서 태어났습니다. 1988년 권정생 시집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시화 공모에 당선되었고, 1994년 그림책 《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로 그림책 세계에 입문하여, 1996년 《강아지똥》, 1997년 《오소리네 집 꽃밭》, 2001년 《황소 아저씨》, 2017년 《금강산 호랑이》, 2024년 《동화 강아지똥》에 이르기까지 ‘권정생 문학’을 그림으로 표현해 왔습니다. 그림책 작업 틈틈이 아이들과 그림 놀이를 하면서 어린이도서연구회 자문위원과 그림책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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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 (지은이)    정보 더보기
서울에서 나고 자라고 그림 공부를 했습니다. 그림책 《오리가 한 마리 있었어요》 《딸기 한 포기》 《썰매를 타고》를 지었고, 《고사리손 요리책》 《바위나리와 아기별》 《내가 만난 나뭇잎 하나》 《강마을 아기너구리》 《나뭇잎은 왜 단풍이 들까요》 《가늘고 긴 음식》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나무와 풀이 잔뜩 우거진 시골집에 살면서 나무로 이것저것 만들며, 나무를 닮은 그림책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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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근 (그림)    정보 더보기
서울에서 태어나 북한산 자락에서 어린이책 작가이자 기획자인 나은희와 두 아들 나무, 단과 살고 있다.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텃밭을 들락거리거나 그것도 아니면 놀거리를 찾아 동네를 어슬렁거리고 있다. 그린 책으로는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개구리네 한솥밥》, 《꼬부랑 할머니》 등이 있고, 쓰고 그린 책으로는 《강우근의 들꽃이야기》가 있다. 가족이 함께 만든 책으로는 《사계절 생태놀이》, 《열두 달 자연놀이》, 《붉나무네 자연 놀이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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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헌 (그림)    정보 더보기
1962년 전북 군산에서 태어나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하였다. 그린책으로는 <성냥팔이 소녀>, <너하고 안 놀아>, <휠체어를 타는 친구>, <돌아온 진돗개 백구>, <너도 하늘말나리야>, <감자꽃>등이 있다. 경기도 파주에 살면서 좋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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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동염 (그림)    정보 더보기
소파 방정환의 수제자로 많은 아동문학작품을 남겼다. '조합 간부로 노동운동을 하면서 소년 소설을 쓴다'는 1932년의 기록이 있으며, 계급주의 아동 문학의 전성기에 「별나라」와 「신소년」에 글을 쓰며 활동했다. 소파 방정환의 주도로 창간되 「어린이」지에 많은 작품이 실려 있으며, 동시집으로 <알암밤 형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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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호 (그림)    정보 더보기
전라북도 김제에서 태어나 서양화를 공부했어요. 2009년에는 볼로냐 국제 아동 도서전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뽑혔습니다. 그동안 그린 책으 로는 《행복한 이티 할 아버지》 《달은 어디에 떠 있 나?》 《나비잠》 《귀신고래》 《내 푸른 자전거》 《강아 지》 《아! 여우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자장면》 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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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진 (그림)    정보 더보기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기를 무척 좋아했다. 지금은 글도 쓰며 그림책을 기획하고 있다. 《갑수는 왜 창피를 당했을까?》 《나는 기다립니다》 《100개의 귀》 등 많은 어린이책에 그림을 그렸으며 《뻐꾸기 엄마》 《끝지》 《비단치마》 《명애와 다래》 《태극기는 참 쉽다》 등을 쓰고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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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3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해방 직후 우리나라로 돌아왔습니다. 가난 때문에 얻은 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인세를 어린이들에게 써 달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단편동화 「강아지똥」으로 기독교아동문학상을 받았고, 「무명 저고리와 엄마」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습니다. 동화 『사과나무밭 달님』 『몽실 언니』 『바닷가 아이들』 『점득이네』 『하느님의 눈물』 『밥데기 죽데기』, 소설 『한티재 아이들』, 시집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등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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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해송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05년 1월 8일 개성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상규(湘圭). 개성학당을 거쳐 경성중앙고보와 보성고보에 다니다가 동맹휴학으로 퇴학당한 뒤 1921년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대학(日本大學) 예술과에 입학했다. 재학 중 유학생 극단 ‘동우회’를 조직하여 국내 각지를 순회하며 신극 운동을 벌였다. 1920년대 초반부터 아동문학에 힘을 기울여 창작동화 개척에 헌신했는데, 이 무렵에 발표한 「바위나리와 아기별」은 한국 최초의 창작동화로 평가받고 있다. 아동문학과 병행하여 수필문학에서도 일가를 이루었는데, 특히 그의 자서전적 수필은 진솔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대학 졸업 후 일본의 종합 잡지 『문예춘추』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했으며, 1932년에는 잡지 『모던니혼』을 인수하여 경영인으로 활약하면서 한국의 전통문화를 일본에 소개하는 데 일조했다. 광복 직전에 귀국하여 작품 집필에만 전념하면서, 1957년 강소천 등과 단체를 만들어 ‘대한민국어린이헌장’을 기초하는 등 아동 인권회복 운동에 기여했다. 자유문학상, 한국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저서로는 『해송동화집』 『토끼와 원숭이』 『떡배 단배』 『모래알 고금』 『앙그리께』 『멍멍 나그네』 『마해송아동문학독본』 등의 동화집과, 『역군은』 『편편상』 『속 편편상』 『전진과 인생』 『사회와 인생』 『요설록』 『아름다운 새벽』 『오후의 좌석』 등의 수필집이 있다. 1966년 11월 6일, 만 61세로 서울에서 작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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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지은이)    정보 더보기
(白石, 1912~1996)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가장 토속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모더니스트로 평가받는 백석은, 191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 오산학교와 일본 도쿄의 아오야마 학원 영어사범과를 졸업했다. 1934년 조선일보사에 입사했고, 1935년 『조광』 창간에 참여했으며, 같은 해 8월 『조선일보』에 시 「정주성定州城」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함흥 영생고보 영어교사, 『여성』지 편집 주간, 만주국 국무원 경제부 직원, 만주 안둥 세관 직원 등으로 일하면서 시를 썼다. 1945년 해방을 맞아 고향 정주로 돌아왔고, 1947년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외국문학분과 위원이 되어 이때부터 러시아 문학 번역에 매진했다. 이 외에 조선작가동맹 기관지 『문학신문』 편집위원, 『아동문학』과 『조쏘문화』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다. 1957년 발표한 일련의 동시로 격렬한 비판을 받게 되면서 이후 창작과 번역 등 대부분의 문학적 활동을 중단했다. 1959년 양강도 삼수군 관평리의 국영협동조합 축산반에서 양을 치는 일을 맡으면서 청소년들에게 시 창작을 지도하고 농촌 체험을 담은 시들을 발표했으나, 1962년 북한 문화계에 복고주의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어나면서 창작 활동을 접었다. 1996년 삼수군 관평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시집으로 『사슴』(1936)이 있으며, 대표 작품으로 「여우난골족」,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국수」, 「흰 바람벽이 있어」 등이 있다. 북한에서 나즘 히크메트의 시 외에도 푸슈킨, 레르몬토프, 이사콥스키, 니콜라이 티호노프, 드미트리 굴리아 등의 시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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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의 다른 책 >
이억배 (지은이)    정보 더보기
그림책 작가. 『솔이의 추석 이야기』 『이야기 주머니 이야기』 『개구쟁이 ㄱㄴㄷ』『잘잘잘 123』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 『봄이의 여행』 『오누이 이야기』를 쓰고 그렸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 『반쪽이』 『모기와 황소』 『5대 가족』에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으로 2020년 전미도서관협회ALA에서 주관하는 배첼더 어워드Batchelder Award 어너리스트에 선정되었습니다. 한 장의 그림이 어린이 마음에 오래 남아 있기를 바라면서 그림을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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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덕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09년 2월 15일 서울 삼청동에서 현동철(玄東轍)과 전주 이씨의 3남 2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현경윤(玄敬允)이고 본관은 연주(延州)다. 제일고보 학적부에는 아버지의 직업은 상인이고, 출신 성분은 양반이며, 본적은 경성부 통의동 38번지로 기록되어 있다. 현덕의 조부 현흥택은 민영익의 수행인 자격으로 1883년 최초의 대미 외교 사절단 보빙사에 참여했고, 1895년에는 시위대 연대장에 임명된 바 있다. 또한 그는 정동구락부의 일원으로 독립협회에도 참여했다. 현덕이 쓴 <자서 소전>에는 출생 당시 집안 형편이 나쁘지 않았으나, 그의 출생 후 가세가 기울어 사글세를 면하지 못했고, 부모님은 불화했던 것으로 나와 있다.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사업의 꿈을 포기할 줄 몰랐던 아버지 탓에 살림은 어머니가 도맡아야 했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 이사 횟수가 이십여 회에 달했으며, 가족이 각자도생으로 헤어지길 수삼 회였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집안 형편 때문에 인천 가까운 대부도(大阜島)의 친척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현덕은 1923년 인천의 대부공립보통학교에 들어갔으나, 1924년 중퇴하고 중동학교 속성과 1년을 다녔다. 1925년 제일고보(현 경기고등학교)에 들어갔으나 집안 형편이 어려워 그해에 중퇴했는데, 학적부에는 전체 수업 일수 245일 가운데 165일을 결석한 것으로 나와 있다. 당시 주소는 경성 관수동 45번지였다.현덕은 192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 <달에서 떨어진 토끼>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일반적으로 현덕의 등단작은 193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 가작 입선한 <고무신>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그의 등단 지면은 ≪조선일보≫ 신춘문예다. 이 무렵 현덕은 수원 발안 근방의 매립 공사장에서 토공 생활을 했고, 이후 현해탄을 건너가 교토, 오사카 등지를 떠돌며 하층민의 삶을 살았다. 그러나 흙 바구니를 짊어지지 못하고 쓰러지는 통에 공사장에서 쫓겨났고, 그 일을 계기로 문학의 길에 대한 꿈을 현실화하기에 이르렀다. 1936년 막노동판을 떠돌다가 문학에 뜻을 둔 후 작가 김유정을 만나 절친한 사이가 되었으며, 현덕은 <자서 소전>의 말미에서 김유정과의 관계를 “지기 고 김유정 형을 얻어 문학을 향한 뜻을 굳게 하고 그 길을 밟던 중, 금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그 길에 자신 같은 것을 가져보며 현재에 이르렀다”라고 술회하고 있다. 193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남생이>가 당선되어 정식 등단했으며, <경칩>(1938), <층>(1938), <두꺼비가 먹은 돈>(1938)을 연이어 발표했다. 1939년 1월 월간 ≪조광≫에 실린 <신진 작가 좌담회>에서 현덕은 등단작 <남생이>가 인천에 있을 때 ≪조선일보≫ 신춘문예 사고(社告)를 보고 자신의 역량을 시험해 보기 위해 쓴 작품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이로 미루어 당시 현덕의 거주지는 인천이었고, <남생이>의 배경 또한 인천 해안의 빈민굴이었음을 알 수 있다. 현덕은 1939년 인천에서 서울로 상경해서 동대문 부근의 빈민촌인 경성부 창신정 600의 9번지에 거처를 정했고, 이해에 <골목>(≪조광≫), <잣을 까는 집>(≪여성≫), <녹성좌>(≪조선일보≫)를 발표했다. 이 시기에 발표된 그의 수필과 소설에는 변변한 생업마저 없었던 청춘의 불행한 운명과 극도로 위축된 인텔리의 고뇌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해방 이후 현덕은 임화와 교제하며 문단 활동에 적극적이었다. 1946년에는 조선문학가동맹의 소설부, 아동문학부, 대중화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했고, 소설집 ≪집을 나간 소년≫(아문각), 동화집 ≪포도와 구슬≫(정음사) 등을 간행했다. 1947년에는 조선문학가동맹의 기관지 ≪문학≫의 편집 겸 발행인, 조선문학가동맹의 서울지부 소설부 위원장을 지냈다. 그리고 소설집 ≪남생이≫(아문각), 동화집 ≪토끼 삼형제≫(을유문화사)를 출판했다. 현덕은 1950년 9·28 서울 수복 때 월북했다. 호적부에는 1951년 9월 27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38번지에서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1951년 북한에서 여러 작품을 발표한 것으로 미루어 보면 월북 이후에도 꽤 오랫동안 작품 활동을 한 것을 알 수 있다. 현덕은 1962년 북한에서 한설야가 숙청될 때 그의 추종 세력들과 함께 숙청되었고, 이후의 삶에 대해서 알려진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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