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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87839493
· 쪽수 : 450쪽
· 출판일 : 2024-08-01
책 소개
저자소개
책속에서
이집트의 기후는 목화 재배에 최고로 적합하다. 나일강 주변의 델타지역은 비옥한 토지이기 때문에 목화가 잘 자라며 목화 꽃이 잘 핀다. 비도 거의 오지 않기에 개화한 목화 꽃이 썩지 않아서 세계 최고급 면화가 생산된다. 이 목화로 만든 섬유는 실크에 가까운 양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부정부패로 인하여 회사는 점점 부실해지고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집트 정부는 암리아사에서 일하는 7,793명의 종업원 생계를 위하여 매년 1천 5백만 달러의 외화 원조 자금을 투입하고 있었다. 그러니 나라의 재정이 온전히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만일 한국에서 이 회사를 성실하게 관리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해 준다면 이 회사는 세계적인 회사가 될 것이라는 취지의 진단보고서를 양국 정부요인에게 제출하였다.
이후 양국 정부는 급진적으로 본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시작하였으며 한국 정부에서는 5천만 달러를 지원해 주는 전제하에 참여자를 모집한 결과 K방적 회사가 선정되었다.
60년 일신방적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김 사장(김해곤-집필자)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암리아는 13만추의 세계적인 방적설비를 갖추고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며 “이집트와 경제협력을 도모해온 산업자원부의 도움으로 갑을방적이 암리아와 합작을 추진, 이 회사에 경영기법을 전수하고 정상화에 참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매일경제, 1999. 7. 19 기사 일부 발췌)
당시 아이엠에프(IMF) 경제 위기 직후였기 때문에 5천만 달러는 상당히 획기적인 자금 지원이었다. K방적의 회장은 나를 암리아 프로젝트의 사장으로 영입하고 사업을 진행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단계에서 이집트의 무바라크 대통령은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런데 K방적의 회장은 엉뚱한 욕심을 부려 지원받은 금액은 부채 상환에 사용하고 중고 레이온 플랜트를 이집트에 보내서 합작 기업 주식의 과반 지분을 취득하려고 하여 이집트의 반발을 사게 되었다. 양국 정부와 총리가 합의한 MOU 체결도 결국 무산되고 이 과정에서 K방적 회사도 망하고 말았다. 이로써 섬유 산업에서 50여 년간 닦은 경험과 지식을 이집트에 전수하려는 나의 꿈도 애석하게도 사라지게 되었다.
이러한 사례가 주는 교훈이라고 할까. 확실한 것은 사리사욕과 부패는 기업을 망하게 하며 국가 경제를 파탄에 이르게 한다는 사실이다.
할아버지는 근동에서 유명한 명의(名醫)셨다. 지금도 내겐 할아버지의 처방책이 남아 있는데, 내 어머니 말씀으로는 요통에 대해서는 특히 비방을 갖고 계셨다고 한다. 전국으로 돌아다니며 금석문(金石文)을 연구하시던 아버지의, 넘어진 비석에 치여 다친 허리도 그 비방으로 고치셨다고 한다. 할아버지께서는 예순다섯의 연세에 소천하셨다. 해방 후 얼마 안 되어서의 일이다. 내 어머니는 한때 할아버지의 그 비방약으로 가용을 대시기도 하셨다고 한다.
성인이 된 뒤에도 나는 할아버지의 환자들을 심심치 않게 만났다. 대표적인 예가 레미콘회사로 유명한 유진기업의 창업 회장 유재필 씨다. 같은 영암 출신이라 친분이 있었던 그는 나를 만날 때마다 “내 어린 시절, 자네 할아버님의 약으로 살았네” 하며 고맙다는 인사를 하곤 했다. 그런가 하면 수십 년 전 미국 출장길에서 만난 동창 의학박사 배두연 씨의 부인도, 자신이 영암읍(내 고향이 금정면과는 꽤 거리가 떨어져 있다)인데, 어린 시절 어머니의 손을 잡고 할아버지의 약방에 약을 지으러 다녔다고 어찌나 반가워해 주든지…. 그리고 신북면 출신 00은행 유모 지점장도 여러 차례 나의 할아버지께 약을 지어다 드셨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이렇듯 나는 살면서 뜻밖의 곳에서 할아버지의 약으로 건강을 되찾았다는 사람을 간혹 만났다. 그리고 고맙다는 인사를 받고 그 인연으로 어려운 일도 잘 풀 수 있었다. 그때마다 어린 시절, 내 인생의 길잡이가 되어주신 할아버지의 그늘이 얼마나 크셨는지 다시금 느끼곤 했다.
어느덧 구순(九旬)이 된 나는 지금도 할아버지가 그립다. 할아버지와의 기억은 비록 열세 살 무렵까지가 전부이지만, 이렇게 하나하나 되새기다 보니 당신께서 얼마나 큰 어른이셨는지 새삼스럽다. 유년 시절, 내 성품의 기초를 닦아 주셨던 할아버지, 나도 내 손자들에게 그런 어른으로 기억되길 바라면서 여생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