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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문학의 이해 > 세계문학론 > 중국문학론
· ISBN : 9788990024893
· 쪽수 : 383쪽
책 소개
목차
두보의 시론과 시―교토 대학 문학부 고별강의
두보 사기私記
중국문학의 최고봉, 두보의 시와 인생―자서自序
태평 시대의 개막과 함께 태어나―선천先天 원년
시는 우리 집안의 가업이란다―가계家系
제와 조 부근에서 호탕하게 놀다가―장유壯遊
꽃 피는 봄날의 도성에서 나그네로 밥 먹는답니다―장안長安
지척에 뇌우가 이를까 근심스러울 뿐이니―칠언가행七言歌行
대나무를 깎은 듯한 두 귀는 높고―서역의 말과 매그림胡馬畵鷹
어둔 물은 꽃길을 따라 흐르고―야연좌씨장夜宴左氏莊
성긴 울타리는 때늦은 꽃을 둘렀구나―하장군의 산림何將軍山林
천하가 난리에 휘말리고―호진胡塵
늙은 아내는 다른 현에 맡기고, 식구는 바람과 눈을 격하였도다―봉선奉先
천진한 딸은 굶어 나를 깨물지만―백수白水
두보 사기 개판改版 발문
두보 사기 속고續稿
황곡은 떠나서 쉬지 않고―자은사탑慈恩寺塔
우둘투둘 금두꺼비 출현함은, 생각건대―금두꺼비金蝦?
술과 밥을 곁에 두고 세 번 탄식하노니―최옹고재崔翁高齋
맑은 눈동자 흰 이 지금 어디에 있는가―천보유사天寶遺事
귀비는 가고 없는데, 여지는 장안에 들어오네―선제귀비先帝貴妃
둘째 녀석 생각하고 근심하며 그저 졸다가―기자驥子
전쟁에 우는 건 새로 생긴 귀신이 많음이고―적중賊中
정월을 축복하는 사자는 보이지 않으니―원일元日
요행히 썩은 풀에 힘입어 나왔거늘―환자宦者
눈물자국이 얼굴 가득 드리우도다―비진도悲陳陶
전집 권12 자발自跋
옮긴이 후기
리뷰
책속에서
두보 시의 위대함을 내용적으로 혹은 사상적으로 파악한다면, ‘인간은 어떻게 존재해야 할 것인가’라는 인식의 올바름이라는 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두보가 품었던 인간관(혹은 세계관)을 결론적으로 잘 보여주는 작품은 아주 만년에 지은 오언율시 「추야秋野」의 한 연입니다.
易識浮生理, 뜬 구름 같은 삶의 이치 알기 쉽지만,
難敎一物違. 한 사물로 하여금 어긋나게 하기는 어렵네.
부생浮生, 즉 이래저래 불안정한 것이 인생이지만, 불안정한 인생의 ‘도리’라는 것은 인식하기 어렵지 않다, 아니 인식하기 쉬운 것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일물一物, 그러니까 단 하나의 존재라도 있어야 할 자리를 벗어나 있는 것은 견디기 힘들다. 만약 그러한 사태가 일어나면 모종의 저항감을 느끼는, 그것이야말로 부생의 도리라는 말입니다만, 모든 존재가 행복하게 조화를 이루어 존재하는 그러한 세계가 두보의 이상이었습니다. 두보의 모든 시의 근저에는 응당 이런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끝없이 주장하고, 또 그 실현을 방해하는 다양한 요소에 끝없이 항의하는 태도가 깔려 있습니다.
- (14~15쪽)
그러한 시로서의 위대함을 두보는 두 가지 방향으로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치밀함입니다. 정밀함이라고 해도 좋겠지요. 시가 소재를 통해 감동을 낳는다는 사실은 새삼 말할 것도 없겠습니다만, 소재를 통해 감동을 낳기 위해서 우선 소재의 윤곽을 이루는 것을 또렷하게, 치밀하게, 정확하게 포착하여 감동의 기초를 확실히 하려는 성질이 우선 있습니다. 두보 시는 본래부터 격렬한 시입니다. 모든 존재의 조화를 얻은 공존을 바란 그는 정치사상 면에서는 늘 현실개혁을 바라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시는 늘 격렬합니다. 그러나 격렬한 언어가 갖기 쉬운 조분粗?함, 거친 면은 없습니다. 늘 치밀합니다. 이것은 우선 인간의 사실이나 자연의 사실을 섬세한 부분까지 관찰하려는 숙시熟視, 끝까지 관찰한 것을 마음속에서 곱씹는 숙려熟慮, 그리고 그것을 말로 표현하는 데에서는 매우 치밀한 언어로 나타납니다. 표현 면에서의 치밀함은 이지理智에 의한 계산 또한 거부하지 않는 것이었고, 그런 까닭에 그는 대구對句의 명인입니다.
- (15쪽)
그런데 지금까지 말씀드린 두보시의 치밀함, 이것은 두보시에 얼마간 접한 사람이라면 금방 알아차릴 수 있는 것입니다. 즉 대상으로 삼은 소재의 윤곽을 분명하게 잡아내는 방향입니다. 그런데 두보시에는 또 하나의 방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대상의 배후에 있는 것에 닿으려는 방향입니다. 이야기를 간단히 하기 위해, 그것을 초월의 방향 혹은 비약의 방향이라 부르겠습니다.
- (26-27쪽)
여기서 두보는 벗 이백의 천재로도 열지 못했던 신경지를 개척하게 되었다. 또한 그것은 다만 두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중국 고대시를 근세시로 전환시키는 대전기이기도 했다. 이백과 두보 모두 대시인이다. 그러나 이백은 두보에 비하면, 더 단순하고 덜 혁명적인 시인이다.
장년의 두보는 세계의 본질을 자세히 바라보고 거기서 찾아낸 새로운 것을 종횡으로 노래하려 했고, 그런 그에게 가장 만족스러운 시형은 칠언가행, 즉 칠언고시였으리라 생각된다. 생각건대 그것은 중국 시형 가운데 가장 자유로운 시형이기 때문이다.
이 자유로운 시형을 통해 두보는 다양한 것을 노래했다. 먼저 노래한 것은 당시의 세상이었다. 천보 시대는 개원 시대와 달리, 세상은 이미 상승의 꼭짓점을 지나 하강의 길을 걷고 있었다는 사실은 앞장에서 설명한 대로이다. 어딘가 모르게 태평의 영속을 위협하는 듯한 사상事象이 쌓여가고 있었다. ‘악을 미워하여 강장을 품은’ 두보가 아무렇지도 않게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두보는 이 칠언고시 형태로 그러한 사상 몇 갠가를 노래하고 있다.
출정한 병사의 노고를 노래한 시에는 「병거행兵車行」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부지런히 사방의 오랑캐를 경략經略했던 현종 대에, 농민들은 종종 국경 경비를 위해 징집당했다. ‘병거행’의 ‘행行’은 노래[歌曲]라는 뜻이다. 뒤에 나오는 ‘○○행’ 또한 마찬가지이다.
- (13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