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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빈의 서양고전 껍질깨기

김태빈의 서양고전 껍질깨기

김태빈 (지은이)
  |  
도서출판 해오름
2011-06-15
  |  
15,0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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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빈의 서양고전 껍질깨기

책 정보

· 제목 : 김태빈의 서양고전 껍질깨기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교양 인문학
· ISBN : 9788990463173
· 쪽수 : 313쪽

책 소개

<이방인>, <그리스인 조르바>, <오만과 편견>, <햄릿>, <노인과 바다>, <달과 6펜스>, <1984>…….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들, 학창시절 누구나 손에 잡아봤을 법한 고전들이다. 이런 작품들을 제대로 독해하는 것은 결코 수월하지 않다. 이 책은 세계 명작 소설을 혼자 읽어내려갈 수 있도록 하는 든든한 길잡이다.

목차

1장: 나를 바라보기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있는가
알베르 카뮈, 『이방인』

자유, 그 낯설고 두렵고 매혹적인 전설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내 생각과 행동은 온전히 나의 것인가
헨리크 입센, 『인형의 집』

2장 : 우리와 마주하기

행복을 위해 우리는 행동할 것인가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햄릿의 모순, 내 삶에는 없는 것일까
윌리엄 셰익스피어, 『햄릿』

‘나’를 과장하기 않기와 ‘세계’를 긍정하기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3장 : 세상과 함께하기

동화적 상상력과 비판적 풍자 사이의 긴장
조나단 스위프트, 『걸리버 여행기』

신과의 동행에서 인간과의 동거로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지금의 현실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4장 : 이상으로 나아가기

우리를 지배하는 건 욕망인가 통제인가
조지 오웰, 『1984』

이상(理想)은 곧 자기에게 충실한 것
서머싯 몸, 『달과 6펜스』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조건
앙드레 말로, 『인간의 조건』

저자소개

김태빈 (지은이)    정보 더보기
여수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마쳤다. 서울로 와 학부에서 국어교육을, 대학원에서 현대소설을 공부했다. 2003년부터 낙산 자락 한성여자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문학과 역사를 이야기하고 공부한다. 서울에서 『김태빈의 서양고전 껍질깨기』를, 베이징에서 『청소년을 위한 연암 답사 프로젝트』를 썼다. 베이징한국국제학교 파견 근무 동안의 항일 답사를 정리해 『그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와 『한번의 죽 음으로 천 년을 살다』(공저)를 펴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2019년, ‘다시 걷는 독립대장정’과 ‘분단이 지워 버린 항일 투사들’ 다큐멘터리에 참여했고,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110주년을 기억해 『대한국인 안중근』(공저)을 썼다. 그리고 문학 선생임을 잊지 않고 『동주, 걷다』와 『육사, 걷다』를 펴냈다.
펼치기

책속에서

여기, 태양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는, 법정에서 자신을 결코 변호하지 않으려는 청년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방인』(?tranger), 카뮈의 이 작품은 ‘이상한’(?trange) 작품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이방인』은 출판 당시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것 또한 이상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살아가면서 종종 꾸며낸 이야기인 소설보다 더 황당한 일을 겪곤 합니다. 그리고 더 가끔이기는 하지만, 너무나도 당연해서 의문을 가지지 않았던 내 하루하루의 삶이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어쩌면 『이방인』은 자주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혀 경험하지 못하지도 않는, 일상생활의 체험이나 거기에서 느끼는 감정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 만약 여러분이 자신이 사는 세상을 완벽하게 질서잡혀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여러분의 삶 또한 균일하고 단단하며 명료한 것이라고 확신한다면 『이방인』을 포함한 문학은 한갓 미친 소리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내가 사는 세계가 수상한 것 같고, 나 혼자만 불온한 인간인 것 같아 불안하다면, 『이방인』은, 뫼르소는, 카뮈는 여러분에게 친절하지는 않지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되어줄 것입니다.
(……) 뫼르소는 무기력한 사람입니까?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더 좋은 일자리를 제안하는 사장의 제안을 뫼르소는 거부합니다. 그는 자신을 사랑하는 여자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 일은 아무 의미도 없다’고 그는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뫼르소의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원만한 삶을 위해 매일매일 상당한 거짓말을 합니다. 물론 그것은 상대방에게 심각한 해를 끼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적당한 거짓말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부드럽게 합니다. 그러나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있지도 않은 것을 말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카뮈는 ‘실제로 있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 인간의 마음에 대한 것일 때는, 자신이 느끼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이 거짓말의 의미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뫼르소는 무기력하거나 삶에 무관심한 사람이 아니라‘절대에 대한, 진실에 대한 정열’이 넘치는 존재로 평가되는 것이 마땅합니다. 물론 우리들 대부분은 그러한 정열을 갖지 못하고 삽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러한 정열을 애써 부정하며 삽니다. 그래야 껄끄럽지 않게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뫼르소에게는 남다른 점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많지는 않지만 사회적 정의나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과 달리 뫼르소는 ‘그 어떤 영웅적인 태도를 취하지는 않으면서도 진실을 위해서는 죽음을 마다하지 않는 한 인간’입니다. 이 말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상식적으로 자신을 희생하는 이들의 행동은 현재의 삶에 근거한 소영웅주의일 수도 있고 신의 존재에 근거한 종교적 태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뫼르소는 이 둘 모두를 거부합니다. 그의 태도는 한 가지 중요한 전제를 포함합니다. 즉 ‘그 어떤 영웅적인 태도를 취하지는 않으면서’ 그러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는 죽음을 인식하는 유일한 존재인 인간으로서는, 자신의 존재의 근거를 어떻게든 찾으려고 하는 인간에게는, 세계의 중심이 자신이라고 믿는 인간에게는 대단히 어려운 삶의 태도입니다. 우리들은 흔히 감정을 과장하고 실제 행동으로써가 아니라 말로만 대가를 치르려 합니다. 그러다보니 말과 내면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뫼르소는 바로 이러한 부조리한 상황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는 ‘언어의 코미디’를 연출하길 거부합니다. 그는 자신이 느끼는 대로, 자신이 생각한대로 말합니다. 그의 말에는 우리의 일상적인 발화의 원칙인 자기 검열이 없습니다.
-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있는가, <이방인> 중에서


햄릿은 행동에 나서기를 주저하는 인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의 행동과 사고는 명백히 분열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희극배우처럼 과장되게 행동합니다. 그러나 독백 장면에서는 현실을 직시하는 사색가로서의 면모를 보입니다. 그는 ‘타인에 대한 사회적 역할놀이와 본래적 자아의 고독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를 명확하게 인식’하는 인물입니다. 이것은 당시로서는 새로운 인간상이었습니다. 이전 시대 문학작품의 주인공은 거부할 수 없는 신의 명령이나 운명에 순응해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단호하게 행동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햄릿은 고대 그리스의 영웅 서사시나 서양 중세의 로망에 등장하는 영웅보다 우리와 닮았습니다. 햄릿이 처한 모순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가장 가까운 인척인 삼촌에게는 복수해야 합니다. 어머니이자 새 숙모는 증오할 수밖에 없습니다. 복수를 위해서는 냉철해야 하나 당장의 생존을 위해서는 미치광이 짓을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연인의 배신에 본심과는 달리 폭언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위선과 기만을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존재의 모순을 느끼는 것이, 물론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비단 햄릿뿐일까요? 우리가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혹은 ‘있음이냐 없음이냐 그것이 문제로다.’라고 통탄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삶의 모순으로 인한 갈등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것입니다. 햄릿의 말처럼 인간의 이성은 신처럼 고귀하고 인간의 능력은 무한하며, 용모는 준수하고 행동은 천사처럼 아름답습니다. 또한 동시에, 역시 햄릿의 말처럼, 인간은 ‘흙 중의 흙’과도 같은 보잘 것 없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 존재의 불확정성만큼 우리의 삶 또한 모순투성이입니다.
(……) 『햄릿』을 읽는 우리는 과연 이 연극이라는 ‘농담’ 속에서 어떤 ‘독’을 건져 올려야 할까요? ‘아직 아무도 해(害)한 일 없는 새로 뽑은 독’이어야 할 것입니다. 김영랑은 ‘허무한듸!’라는 한 마디의 자조로 절망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올곧게 살고자 하는 마음과 의지를 노리고 할퀴려는 ‘이리 승냥이’가 앞뒤로 덤비는 상황에서, ‘내 외로운 혼(魂)’을 건져내기 위해 ‘독’을 차고 살겠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연극을 포함한 예술이 주는 최고의 미덕은, 삶이 결코 무균실이 아니며, 설사 그것이 진창일지라도 기꺼이 수용해야 하며, 그것을 특별한 과장 없이 수용하는 의지를 발견하게 하는 것입니다. 햄릿은 영웅으로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으로서 지금도, 연극으로 영화로, 드라마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습니다.
- 햄릿의 모순, 내 삶에는 없을까, <햄릿> 중에서


상어에게 생명이자 자기 자신이기도 한 고기를 다 빼앗긴 것은 우리 기준으로 볼 때 분명 패배입니다. 그런데 산티아고 노인은 이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를 패배하게 한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너무 멀리 나갔을 뿐’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삶에는 패배도 승리도 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내세울 만한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매순간의 선택이 현재의 내 삶을 만들어갑니다. 그렇다면 후회라는 이름으로 가장된 불성실이나 삶의 목적이라는 말로 꾸민 허영은 지금-여기에서의 삶에 대한 무책임일 뿐입니다. 산티아고 노인은 어쩌면 이러한 사실을 온전히 자신의 몸을 놀리는 노동을 통해 깨달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배에서 내려 아무 도움도 없이 어구를 정리하고 언덕 위에 있는 집을 오르는 산티아고 노인의 모습에는 자신의 몸보다 큰 바위를 굴리는 시지프의 모습이 겹칩니다. 시지프가 절망하는 이유는 바위를 밀어올리기 힘들어서가 아닙니다. 바위를 산꼭대기에 올려놓아도 곧바로 굴러 떨어지는 상황이 영원히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반복되는 패배는, 영원히 연기되는 승리는, 결코 그의 삶을 절망으로 떨어뜨리지 못합니다. 여기에 패배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삼일간의 사투 끝에 얻은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고, 그럼에도 또 다시 삶을 이어가야 하는 산티아고 노인의 경우도 시지프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희망의 숫자인 85번째 되는 날에도 ‘결정적으로 패배’했습니다. 그가 건져 올린 것은 ‘큰 꼬리가 달린 거대한 고기의 백골’일 뿐입니다. 심지어 그는 그의 수확물을 마지막까지 약탈하는 상어 떼를 무심하게 바라봅니다. 그러나 그때의 무심은 결코 패배자의 낙담이나 자포자기, 혹은 육체의 극단적 피로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오늘의 패배가 삶 전체의 실패는 아니라는 인식과 최선을 다한 후의 결과에 순응하는 자부심, 삶의 고통에 쉽게 굴복하지 않는 인내와 의지 등이 그 ‘무관심’에는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인은 아무런 생각도 아무런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고 ‘노인에겐 모든 것이 지나간 과거’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노인과 바다』에 감동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거의 일생을 자신의 일에 묵묵히 전념한 사람들이 보여주는 우직함입니다. 그의 삶이 결코 낭만적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를 근사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자신의 노동으로 자신의 삶을 꾸리면서도 그 삶을 결코 과장하지 않는 태도에 있습니다. 이것이 그가 가혹한 노동 끝에 아무런 실질적 이득을 얻지 못해도 그의 삶이 초라해 보이지 않는 이유입니다. 오히려 산티아고 노인은 ‘용기는 가능한 결과들을 무시하는 능력이다’는 자신의 창조주의 말을 삶으로 증명한 인물입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삶을 긍정할 줄 압니다. 산티아고 노인은 고기를 죽이는 것이 죄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설사 그것이 자신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릴 수 있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여기에서 더 나아갑니다. ‘고기를 죽인 것은 단지 살기 위해서도 식량으로 팔기 위해서도 아니다. 긍지 때문에 그리고 어부이기 때문에 죽인 것이다.’
이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무한한 긍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기긍정이야말로 키 대신 마우스로 인터넷을 떠다니는 현대인들이 잊어서, 잃어버린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입니다.
- ‘나’를 과장하지 않기와 ‘세계’를 긍정하기, <노인과 바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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