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계 한국인들

제1부
원어(原語)
정주민(定住民)
산책길
대답
부조
그네
미소
분수
전후(戰後)
베트남계 한국인
허니문 베이비
지갑
팔등신
한국계 중국 처녀
모계 혈통
정관 수술
귀국
혼인

제2부
장시(長詩) - 코시안리

해설 - 동일자의 근대적 국민국가의 폭력을 넘어서는 / 고명철

부조

나먹은 아들이 나어린 조선족 처자에게 장가든다며
노인은 눈웃음 지으며 나에게 청첩장을 내밀었다
노인에게 논 한 마지기 맡겨놓고
해마다 햅쌀 한 가마니씩 받아가곤 했던 내가
오늘 그 일로 찾아와 보니
집 마당엔 경운기가 서 있고
처마 아랜 녹슨 낫이 놓여 있고
모퉁이엔 상수리나무 그늘이 엷다
경운기 몰고 논 갈아 모내기하고 온 그의 아들과
낫 잡고 논둑 더듬으며 풀 베고 온 그가
상수리나무 아래 겸상 차려놓고
말없이 점심 먹던 모습을 본 적 있다
결혼식 올린 뒷날 날씨 써늘해도
상수리나무 잎사귀가 더 지기 전에
조선족 처자가 차려낸 두레밥상에 둘러앉아
셋이 담소하며 햅쌀밥 한 끼라도 먹겠구나
내가 결혼식장에 참석하지 못할 것 같아
햅쌀 한 가마니로 축의금 대신하겠다고 하자
노인은 사양하지 않고 만면에 가득 환한 웃음으로 나를 대접했다
노인이 내년부터 연년생으로 손을 본다면
해마다 햅쌀 한 가마니씩 안 받아가도
나는 도통 아깝지 않겠다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