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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세계의 소설 > 기타 국가 소설
· ISBN : 9788991095595
· 쪽수 : 416쪽
· 출판일 : 2009-09-11
책 소개
목차
사랑과 명예와 동정과 자존심과 이해와 희생
카르타헤나
일리스 만나기
해프리드
히로시마
테헤란의 전화
보트
리뷰
책속에서
아버지의 뒤로 강이 흘렀다. 바람은 싸한 냄새로 가득했다. 천천히 떠 있는 불빛 속에서 나는 저 멀리, 강 아래를 보았다. 얼어붙은 언저리에 번들번들한 기포들이 커다랗게 부풀었다. 아직 얼지 않고 흐르는 물은 검게 꼬여 있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강 표면이 얼려면, 완벽하게 크리스털 같은 세계 안에 갇히려면 몇 시간, 아니 며칠이 걸릴까. 그리고 그 세상이 작은 돌이 내는 단음절로도 얼마나 깨어지기 쉬울까.
종이에 일리스의 눈을 그대로 담으려 애쓴다. 내 머릿속에 든, 내 마음의 눈에 비친, 일리스의 눈은 비난하는 엄격한 눈이다. 그때의 상황은 이것 아니면 저것, 저것 아니면 이것이었다. 내가 아는 바를 일리스도 알면, 내가 느낀 바를 일리스도 느끼면, 일리스가 나에게 다른 선택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한순간이 얼마나 많은 일을 일으킬 수 있을까? 17년의 간극을 지나서 이제 일리스가 또 나를 부끄러운 눈길로 바라볼까? 피가 딱딱하게 굳어서 산산조각 났다. 무대 위에서 일리스의 눈빛은 아주 선명하고 깊고 크고 참됐다. 그 눈빛의 은총을 받으면, 일리스가 나를 바라보았다면, 나같이 추잡한 늙은이도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낚싯줄이 떨렸다. 짧게 계속 떨렸다. 제이미는 흥분해서 낚싯대를 잡았다. 이렇게 힘껏 떠는 물고기를 본 적 없었다. 아빠를 보았다. 아빠는 눈을 가늘게 뜨고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이클과 엄마도. 바다는 이렇다. 종일 기다리다가 막 떠나려 할 때 무엇을 내놓는다. 고래의 매끈한 등, 뛰어오르는 고등어의 날카로운 빛 등 무엇이라도. 막연히 기다릴 뿐, 그 무엇이 나타난 뒤에야, 기다린 것이 무엇인지 놓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멀리서 무엇이 반들반들한 수면을 흐트러뜨렸다. 아름다웠다. 그 무엇과 자신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니,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