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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84374928
· 쪽수 : 520쪽
· 출판일 : 2024-10-15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독립기념일에 불꽃놀이 대신 화형식이 열렸다. 예전에는 같은 나라였지만 이제는 갈라진 나라에서 내 친구를 공개적으로 불태워 죽였다. 화형당한 내 친구의 이름은 막심 레프코비츠다. 막심은 우리 일을 돕는 정보원이었다. 내가 일하는 곳에서는 동료 사이 친분도 직업윤리에 위배되지만 나는 막심과 친하게 지냈다. 막심이 화형당한 이유는 공개적으로 예수님을 불경스럽게 언급했기 때문이다.
막심은 큰 소리로 떠들어댔다. “만약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 똥을 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는 마치 예수가 십자가에서 변을 본 게 기정사실인 양 계속 말했다. “아마 모르긴 해도 로마군 장수가 예수의 똥 기저귀를 벗기다가 대변을 보고 성욕을 느끼는 대변기호증이 생기지 않았을까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유머는 결코 아니었다. 사실 막심의 저속한 풍자는 황당하기 그지없었지만 적어도 내가 살고 있는 연방공화국에서는 그런 언사를 했다고 화형에 처하지는 않는다. 반면 공화국연맹에서는 그 누구든지 신성 모독에 가까운 발언을 할 경우 가차 없이 엄벌에 처한다. 게다가 막심이 공화국연맹에서 체포될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인 이유가 몇 가지 더 있다. 막심은 원래 남성이었으나 성전환 수술을 받고 여성이 된 트랜스젠더고, 뉴욕 출신 유대인이다.
나는 대형 스크린 화면을 통해 화형대로 끌려가는 막심을 보았고, 심란하다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마음이 착잡했다. 땅이 꺼질 듯이 비감했지만 내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는 건 절대 금물이었다. 나는 여러 상관들과 함께 중세에나 존재했던 화형식을 지켜보고 있었다. 회의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스크린에서는 막심의 화형식 장면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전에 슬쩍 말해준 적이 있는데 이제 확실하게 결정되었어. 자네는 중립지대로 가야 해. ‘테이크다운’ 임무가 부여되었거든.”
레슬링에서 상대를 쓰러뜨리는 기술이 테이크다운인데 정보국에서는 ‘암살’을 뜻하는 용어로 쓰인다. 브레이머 부장이 계속 말을 이었다.
“중립지대에서 테이크다운에 성공 못 하면 공화국연맹에 잠입해서라도 반드시 제거해야 할 타깃이야. 그 정도로 중요하고 가치가 있는 여자라는 뜻이지.”
“여자라니까 더욱 흥미롭네요.” 나는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유명 인물입니까?”
“아니, 정반대야. 신원을 철저히 숨겨온 여자야. 살인이나 파괴 전문은 아니지만 우리 연방공화국 내부에 잠입하게 되면 커다란 위협이 될 거야.”
“공화국연맹 경찰국 요원입니까?”
“그래, 맞아. 공화국연맹 경찰국 요원이야. 자네가 할 일은 테이크다운이 전부가 아니야. 그 전에 그 여자로부터 최대한 많은 정보를 빼내야 해.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타깃의 신원을 확보하게 되면 고문을 가해서라도 정보를 빼내야 한다는 뜻이었다. 정보국 요원은 누구나 고문 기술을 훈련받는다.
브레이머 부장이 병에 남은 와인을 마저 따르며 말했다. “이틀 휴가가 끝나면 암호 문서를 받고 작전 설명을 듣게 될 거야. 그전에 자네에게 미리 말해둘 게 있어. 내 얘기를 듣고 나면 이번 작전에 임하는 자네의 마음가짐이 달라질지도 몰라.”
또다시 정적이 이어졌고, 브레이머 부장이 와인을 홀짝이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타깃이 자네 가족이야.”
“가족이라뇨? 이전에 우리 정보국 요원이었다는 말씀입니까?”
브레이머 부장이 말했다. “정보국 가족이 아니라 자네 개인의 가족이라는 뜻이야.”
나는 깜짝 놀랐다.
“제가 가족이 어디 있습니까? 저는 외동딸이고, 부모님은 다 돌아가셨고, 삼촌이나 이모, 고모도 없는데.”
브레이머 부장이 말했다. “자네는 모르는 혈육이 있었어.”
“혈육이라니요?”
“자네와 배다른 자매.”
“말도 안 됩니다.”
“인간은 살면서 많은 실수를 저지르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많아. 자네 부친도 예외가 아니었어. 다시 한번 말하지만 자네에게는 배다른 자매가 있어. 게다가 우리의 적이야. 공화국연맹 경찰국 요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