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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추리/미스터리소설 > 일본 추리/미스터리소설
· ISBN : 9788991239777
· 쪽수 : 288쪽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사하시 경장은 손전등을 빙글 돌려 다시 자그마한 노란 새 로고를 비추었다. 별 생각 없이 빛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리던 그 순간 깨달았다.
자그마한 노란 새의 날개 끝에 뭔가 얼룩이 튀어 있었다.
경장은 시트에 다가가 얼굴을 바싹 붙이고 자세히 살펴보았다.
얼룩은 하나가 아니었다. 여러 개였다. 거뭇거뭇하고 아직 축축했다.
핏자국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시트를 걷고 안으로 들어가볼 마음은 없었다. 후카다 도미코는 안에서 누가 나왔다고 했지만 지금은 인기척도 없다. 아무리 경찰관이라도 건축 중인 건물에 무작정 들어가면 건축업자를 상대로 일이 꼬일 가능성도 있다. 가급적 피하고 싶은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더 이상 그런 소리를 할 때가 아니었다. 마음을 다잡고 시트를 걷으려 했지만 단단히 고정해놓아 밑자락을 겨우 50센티미터 들어 올리는 게 고작이었다. 이것도 보안을 위한 것이리라. 경장은 몸을 굽혀 토관 속을 기어가듯 시트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굳이 찾을 필요도 없었다. 그는 경장의 눈앞에 쓰러져 있었다. 양복을 입고 반쯤 뒤틀린 몸에, 팔은 얼굴 쪽으로 바싹 오그리고 있었고 다리는 힘없이 쭉 뻗어 있다. 옆을 보고 있는 시체의 얼굴 바로 근처에 남성용 가죽 가방이 떨어져 있었다.
주위에는 본디 건축 중인 주택 안에 가득 풍겨야 마땅한 건축자재의 냄새를 누르고 피 냄새가 가득했다.
사하시 경장은 반사적으로 경찰봉에 손을 뻗으며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형광색으로 빛나는 바늘이 밤 10시 29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사건 해결을 두고 마치 성서 속 에피소드처럼 어느 순간 갑자기 모든 수수께끼가 풀려 혼돈의 바다가 둘로 갈라지면서 한 줄기 길이 보인다고 비유하는 이가 많다. 하지만 다케가미는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사건을 해결하지 못할 때 말하는 ‘미궁에 빠졌다’라는 표현은 겉멋이 아니다. 미해결 사건은 정말로 미궁 같았다. 지도는 없지만 그곳에는 아리아드네(그리스신화에서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을 빠져나올 수 있도록 길 안내를 해줄 실타래를 건네준 공주_역주)가 몇이나 있어 실을 잔뜩 건네준다. 하지만 따라가서 확인해보지 않으면 누가 올바른 출구로 인도해줄 아리아드네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결국 구석구석 발품을 팔 수밖에 없다. 혹여 누군가가 고뇌하는 수사본부 형사들에게 미궁을 둘로 가를 수 있는 모세의 지팡이를 건네준다 하더라도 그들은 그것을 지친 다리를 쉬게 할 용도로 사용할 뿐 발로 뛰는 수사를 그만두지는 않을 것이다. 미궁을 부수어 출구를 만들면 오히려 어느 것이 본래의 출구인지 알 수 없게 될 따름이므로.
상처 입고, 겁에 질리고, 슬퍼하는 이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다. 그 또한 한심하고 답답한 일이기는 했다. 하지만 치카코는 나름대로 오랜 경찰관 인생에서 배운 바가 있었다. 이 길을 계속 가려면 물론 누군가를 구하거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끝가지 노력할 수 있는 근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절실하게, 아무도 구할 수 없거나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았을 때 그런 자신을 견뎌낼 수 있는 인내력도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