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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88991239869
· 쪽수 : 400쪽
· 출판일 : 2012-04-17
책 소개
목차
노숙자의 맛집 수첩
러브 미 소바
농성레스토랑
츠키지의 난
소나무 별장
터릿의 행방
역자 후기
리뷰
책속에서
“이 친구는 내 일행일세.”
총각에게 다카오를 소개하고 나서 얏상이 “자, 먹어봐”라며 팔딱팔딱 뛰는 새우를 다카오에게 건넸다.
“어, 어떻게요?”
영문을 알지 못한 채 어리둥절해 있는데, 얏상은 한 마리 더 집어 올리더니 “이렇게 하는 거야” 하며 팔딱거리는 새우 머리를 태연스레 꺾었다.
“여기에 뇌가 들어 있다고.”
그러면서 머리가 꺾인 부분에 입을 대고 쪽쪽 빨더니 이번에는 소리를 내며 몸통의 껍질을 벗겨 입에 넣었다.
그것을 그대로 따라 해본 다카오는 절로 얏상 얼굴을 쳐다보게 되었다.
“맛있지?”
얏상은 자기 가게 새우도 아닌데 자랑스럽다는 듯 확인했다.
실제로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뇌에서는 깊은 바다 내음이 물씬 풍기고, 탱탱하고 쫀득거리는 몸통은 입안 가득 새우의 단맛을 퍼뜨렸다.
“이런 새우는 먹어본 적이 없어요!”
“그렇겠지. 이놈은 긴자의 최고급 초밥집에만 납품하는 최고급 자연산이야.”
현관에 들어서자 마늘과 고추 냄새가 코를 찔렀다. 놀랍게도 101호 안은 식당이었다. 현관 옆은 칸막이로 에워싸인 부엌이었고, 방 두 칸을 터서 만든 안쪽 바닥에는 비닐이 깔려 있었는데 거기에 좌식 탁자 여섯 개가 다닥다닥 놓여 있었다. 벽에는 한국산 맥주와 소주 포스터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고, 그 포스터와 똑같은 소주를 세 쌍의 남녀가 마시고 있었다. 그들은 식탁 가득히 차려진 요리를 먹으면서 왁자지껄 한국말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얏상은 제일 안쪽의 빈 식탁에 털썩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제야 숨을 다 고른 미사키와 다카오는 식탁 맞은편에 나란히 앉았다.
“오머니, 이 젊은 애를 잔뜩 먹여줘.”
얏상이 말을 건네자 오머니는 중얼거렸다.
“오늘은 두 사람이나 데리고 왔군.”
오머니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곧바로 보쌈이니 멸치조림이니 백김치 같은 것들이 담긴 작은 접시를 식탁에 죽 늘어놓기 시작했다. 말은 밉살스럽게 하지만 통이 큰 아주머니였다. 나중에는 참돔 한 마리를 회로 떠서 큰 접시에 담은 통사시미(고기를 회 뜨고 난 뼈 위에 살점을 올린 것_역주)를 식탁 한가운데에 놓았다.
“자, 체면 차리지 말고 잔뜩 먹어둬. 한국요리는 야키니쿠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고기든 생선이든 야채든 여봐란듯이 나오잖느냐. 이게 중요한 거야. 미각과 몸을 단단히 키우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음식을 골고루 먹어야 해. 그러지 않으면 미각이 한쪽으로 치우치게 된단다.”
테이블 위에는 우스타소스와 머스터드가 준비되어 있었지만 다카오는 일단 레몬즙만 뿌려서 먹기로 했다. 큼직한 굴튀김에 빗 모양의 레몬을 꼭 짠 다음 포크로 찔러서 베어 먹었다. 오톨도톨한 튀김옷에 앞니가 닿은 순간 바삭하게 튀긴 빵가루의 고소함이 비강으로 퍼졌다. 그대로 씹으니 파삭 하고 경쾌한 소리를 내면서 튀김옷이 부서지고 탱탱한 굴에 앞니가 파고들면서 농후한 맛을 응축한 굴즙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얇게 입힌 튀김옷은 아삭하게 튀겨졌는데도 굴 자체는 기막히게 반쯤만 익은 상태였다. 굴의 구석구석까지 열이 들어갔는데도 껄쭉한 생굴의 식감과 물씬한 바다 향은 그대로 살아 있었다.
이거야말로 얏상이 말하던 불 조절의 기예라고 하는 것이리라. 이 상태로 음미하게 하기 위해서는 주방에서 테이블로 가져오기까지의 여열도 고려하지 않으면 열이 지나치게 들어가게 된다. 거기까지 계산하고 조리하지 않으면 이 맛은 생겨나지 않는다.
‘이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시노노메켄이 경양식당 구니마츠와 쌍벽을 이룬 이유는 이거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