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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서양사 > 서양사일반
· ISBN : 9788991799431
· 쪽수 : 488쪽
· 출판일 : 2009-07-10
책 소개
목차
한국어판 머리말 혁명은 언제 탄생하는가
머리말
제1장 혁명이란 무엇인가 - 근대를 만든 혁명, 근대가 만든 혁명
혁명은 되돌릴 수 없는 단절이다|혁명을 보는 두 시선, 자유주의 대 마르크스주의
혁명과 외부 압력|무엇이 반란을 혁명으로 이끄는가?|혁명의 끝은 독재인가?
무기가 되는 혁명 이념|자유인가, 평등인가?|해방의 상상력, 이념의 힘
제2장 네덜란드 혁명 1566년∼1581년 - 근대 최초의 국민 혁명
‘거지’라는 이름의 반란자들|도시들, 봉기의 깃발을 들다|“돌멩이들까지 에스파냐에 반항한다”
저항의 최전선, 칼뱅주의|자유라는 이념의 탄생|‘국민 의식’을 만든 혁명
제3장 잉글랜드혁명 1649년 - 국왕 처형과 공화국의 수립
내전인가, 반란인가, 혁명인가?|인쇄물의 폭증, 정치 토론의 폭발 |급진파 대 보수파
“국가는 왕의 소유물이 아니다”|혁명적 민중을 이끄는 지도자|국왕의 도주와 혁명의 급진화
크롬웰과 혁명 군대|‘새로운 사슬’과 급진파의 좌절|‘자랑스러운 유산’ 공화국
제4장 명예혁명 1688년 - 의회의 승리와 군주정의 혁신
폭군 축출과 왕권의 제한 | 루이 14세를 꿈꾼 제임스 2세
국왕과 신민의 대결 | 의회, 군주 위에 서다
제5장 미국 독립혁명 1763년∼1791년 - 의회 주권에서 인민 주권으로
대영제국의 식민지|의회 주권 대 식민지 자치|‘왕 없는 정부’를 넘어선 공화주의
“공화국 인민은 스스로 통치한다”|헌법 제정과 삼권 분립 | 평등을 향한 인민의 요구
인민의 통치를 수립한 내부 혁명
제6장 프랑스혁명 1789년∼1799년 - 근대 혁명의 이념형
급진 자유주의 부르주아 혁명 | 자코뱅의 승리와 제1공화정
로베스피에르 몰락과 나폴레옹 쿠데타 | 혁명의 아이러니, 평등에서 독재로
제7장 1848년의 혁명들 - 급진주의.자유주의.보수주의의 혼전
유럽 전역으로 번진 2월혁명 | 급진주의 - “민중에게 권력을!”
자유주의 - 원하지 않은 혁명의 수혜자 |보수주의 - 혁명의 공포가 낳은 이념
자유파와 급진파의 분열, 보수파의 승리|혁명의 실패와 권위주의 국가의 출현
제8장 혁명 이념의 계보와 진화 - 19세기와 20세기 초의 혁명 전통
직업 혁명가의 등장 | 폭력과 혁명 독재 - 바뵈프와 블랑키|마르크스주의, 프롤레타리아 발견
바리케이드 시대의 종언?|러시아 마르크스주의의 길|아나키즘, 공포정치의 산물
혁명 운동에서 노동자의 역할
제9장 러시아혁명 1905년~1917년 - 20세기 혁명의 이념형
‘위로부터의 개혁’과 ‘아래로부터의 혁명’|데카브리스트에서 마르크스주의까지
1905년 혁명, 러시아의 ‘1848년’|전쟁과 혁명, 1904년에서 1914년까지
제1차 세계대전과 2월혁명|1917년 : 2월부터 10월까지|10월혁명, 레닌에서 스탈린으로
제10장 혁명과 반혁명 사이 -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혁명의 좌절
산산조각 난 국제 혁명의 꿈 | 독일 중간계급의 두려움|좌파의 분열과 우파 행동주의
검은셔츠단과 로마 진군|가톨릭 보수주의의 정치화|반혁명 세력의 계급 전쟁
제11장 파시즘, 우익의 보수 혁명 - ‘상처 입은 민족’과 ‘국가의 재생’
파시즘은 혁명 이념인가? | 파시즘과 유사 파시즘|파시즘 신화의 구성 요소
파시즘과 나치즘의 차이|파시즘의 영구혁명 충동|뉘른베르크의 황홀경
괴벨스 - “우리 혁명은 총체적이다”
제12장 소비에트의 탈공산주의 혁명 1989년∼1991년 - 실패한 개혁과 체제의 붕괴
개혁 공산주의의 등장 | 소비에트 제국의 기원|개혁에서 위기로
동유럽의 탈식민화 혁명|개혁과 반개혁의 충돌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
소비에트 해체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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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책속에서
제3장 잉글랜드혁명 1649년
1649년에 일어난 사건은 적어도 중?단기적으로 잉글랜드 정부의 성격을 눈에 띄게 변화시켰다는 점에서 명백히 혁명적이었다. 우선 단순히 왕을 교체한 것이 아니라 권력 구조에서 변화가 나타났다. 단원제 의회가 행정권을 갖는 국무회의를 선임하고 집단적으로 통치하는 체제가 수립되었다. 두 번째, 잉글랜드 지배층의 사회적 구성이 크게 바뀌었다. 이후 수십 년 동안 잉글랜드의 지배층은 특권계급이 아니라 주로 상대적으로 신분이 낮은 지주계급에서 충원되었다. 세 번째는 근대 초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소인데, 1649년 혁명은 모두에게 의무로 강요되었던 국교회의 쇠락을 확인해주었고 동시에 신교도들에게 전례 없는 종교의 자유를 허용했다. 또한 새로운 정치적 관행이 출현하고, 결국 혁명적 과정에 도달하게 될 새로운 형태의 정치적 소통과 동원이 나타났다. - 92~93쪽
제4장 명예혁명 1688년
공회가 소집되었을 때, 의원들 사이에는 국왕의 도주가 남긴 균열을 어떻게 메울지를 놓고 뚜렷한 의견 대립이 있었다. …… 그들은 제한군주제의 개념을 받아들였다. 이 개념의 수용은 장차 가톨릭교도나 가톨릭교도의 배우자는 왕이나 왕비가 될 수 없다는 결정에 반영되었다. 가톨릭교도는 자의적으로 통치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경험으로 확인되었다. 제한군주제의 수용은 또한 권리선언에도 표현되었다. 권리선언은 제임스가 채택한 13개 조치를 열거하고 그것이 불법임을 선언했다. 제임스 2세가 국왕의 특권을 사용한 것을 비난하고 의회가 국왕에게 행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권리선언은 절대왕정에 대해 제한군주제를 선택한다고 천명한 것이다. 제임스는 ‘잉글랜드 국왕이 부여한’ 법을 승인하고 유지할 것’을 맹세했다. 윌리엄과 메리는 “의회에서 승인한 법령, 의회의 법과 관습에 따라 …… 잉글랜드 왕국의 주민을 통치할 것”을 선서했다. - 151~152쪽
제5장 미국 독립혁명 1763년~1791년
미국인들이 동의한 거의 유일한 사항은 공화주의는 국왕 없는 정부 이상의 것이라는 점이었다. 영국으로부터 분리 독립은 정통성의 원천으로서 국왕과 의회의 권리를 부정한 것이기도 했다. 따라서 정통성 있는 정치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 대안을 찾아야만 했다. 해결책은 공동체 자체에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의회 주권을 인민 주권으로 갈아치운 것은 권력 원천의 패러다임이 바뀌었음을 뜻한다. 이러한 변화는 결국 강력한 민주주의, 평등주의 이데올로기로 발전했지만, 인민 주권의 원칙이 곧바로 명확한 다수결의 원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인민은 여전히 정치적으로 평등한 개인들의 산술적인 총합이라기보다는 사회적인 집합체로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난점은 어떻게 원칙을 실제에 적용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 181~182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