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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91934757
· 쪽수 : 272쪽
· 출판일 : 2010-11-15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1장 때때로 누리는 즐거운 안식
Poetry : 빈둥빈둥빈둥
나는 누구인가
그 나이엔 은신처가 필요하다
등짐의 무게로 사는 인생
참 행복해 보이는 남자
아빠, 울지 말아요
말로만 시골 타령
소중한 다섯 평
힘든 것도 다 한때여
샘터에 가는 이유
물통의 물은 언제 받으려고?
장광사에 내려놓은 시간들
골목길이 좋다
토끼 여기와 나
2장 우리 집으로 가는 길
Poetry : 암만 추워도
세상을 어린애같이 살다니
곰국 2인분
노래 한 곡 불러 다오
자, 이쪽에 서라
어머니가 쓰고 간 편지
일요일의 자장면
지금 아빠와 같은 방향으로 서 있어요
세상 모든 아버지의 바람
목발에 실린 아내의 무게
3장 경이롭고 아름다운 일상
Poetry : 세상이 달라 보여요
여보, 보름달 떴어
드퓌의 나방
파란 고등어
현정이 김선호 사랑한대
저녁 값의 한 모퉁이
소년과 자전거
두 팔 가득한 아기의 무게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것들
뒤에 서는 기쁨
달랑무 다섯 단
행복을 만들 줄 아는 착한 손길
군에서 온 들꽃 편지
열세 살 인생
다 살게 마련일 테지
엄마와 딸, 그 딸의 딸
네가 행복했으면
봄을 기다리는 마음
4장 사람은 무슨 힘으로 살까
Poetry : 내가 할머니에게 들은 이야기
다시 태어난다면
보리씨 한 톨 희망
초록빛 설해목
형님과 호두나무
그냥에게 받은 상처
즐겁게 사시니 구두도 즐겁겠구려
축하해요, 수녀님
권영상 선생님이세요?
못 세 개 값 200원
12월의 캐롤송
농담도 잘하시네요
레모네이드 사랑
그것은 착륙이었다
5장 고마운 평생 친구, 고향과 자연
Poetry : 제일 처음 느낀 기억
대관령이 나를 가르쳤다
감자 서리
마당을 갖고 싶다
어린 시절의 영웅들
방솔의 신비로움
마른 풀 냄새
여름날의 고향집 툇마루
오래된 미래의 이야기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보리씨 희망
나는 고등학교 진학을 못하고 3년을 방황했다. 아버지를 도와 농사를 지을 땅도 넉넉지 않았고, 집을 떠나기에도 나는 어린 데가 있었다. 하는 수없이 공사판을 돌며 고된 일을 했고, 그 노동의 대가로 술을 배우고 담배를 배우고 싸움을 배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절망의 날들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꽉 막힌 세월이었다. 술과 싸움 외에 정말이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없었다. 병석에 누운 어머니마저 미울 때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밤, 나는 더 이상 가망 없는 내가 싫어 한정도 없이 술을 들이켰다.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긴 밀밭 길을 걸었다. 휘청대는 나를 바르게 세워주는 이 하나 없는, 그 길을 걷던 나는 그때 십 대의 중반을 넘고 있었다.
어둠속에서 서둘러 오던 누군가가 내 앞에 다가와 섰다.
“남들 부끄럽지도 않느냐? 대체 왜 이러느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내 앞을 딱 가로막아 서 있었다.
“사는 게 희망이 없어요!”
그 말을 하며 나는 주저앉아 울었다.
정말이지 그때 내게는 아무 희망도 없었다. 내 울음을 지켜보던 아버지가 한참 만에야 입을 여셨다.
“우선 네 어미부터 고치고 보자.”
아버진들 내 심정을 모를 리 없었다.
“남들 다 죽는대도 이 아비에겐 보리씨 한 톨만 한 희망이 그래도 있다. 너도 끈을 놓지 말아라.”
아버지는 쓰러진 나를 껴들고 걸으며 나직이 타이르셨다.
아버지만은 어머니의 힘없는 목숨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고 있었다.
나는 울음을 그치고 그해 겨울, 진학 시험을 치렀다. 상업고등학교였다. 아버지가 들려주신 ‘보리씨 한 톨만 한 희망’의 말씀이 없었다면 나는 뒷날 어떻게 되었을까.
다시 태어난다면
우편물을 부치러 우체국에 들렀다가 느닷없이 그 길로 이천행 버스에 올랐다.
16년 전이다. 이천에서도 시내버스로 30분은 더 가는 시골 학교에 잠시 머무른 적이 있었다. 그곳이 가끔은 그리웠다. 아마 쭉 근무하던 강원도에서 경기도로 자리를 옮긴 첫 학교였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학교 주변이 전통적인 한가한 농가 풍경이었다.
그러나 찾아간 그곳은 이미 기억 속의 마을이 아니었다. 아파트도 섰고, 면사무소는 잔뜩 위용을 갖춘 3층 빌딩으로 바뀌어 있었다. 예전에 즐겨 가던 대포집과 늘 점심을 먹던 식당을 찾았지만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잠시 근무하던 학교도 많이 변해 있었다.
나는 그 예전, 체육 시간이면 아이들과 함께 곧잘 가던 개울가를 찾았다. 개울둑의 느티나무만이 홀로 나를 반겼다. 예전 같으면 아이들로 붐볐을 개울도 싱겁게 누워 있었다.
한참을 서서 오래된 추억에 잠겨 있을 때였다.
불현 건너편 개울둑에 나타난, 발가벗은 어린아이 하나가 쫓기듯 개울물에 덤벼들었다. 그 뒤를 따라 바구니를 낀 아이의 엄마임 즉한, 차양이 긴 모자를 쓴 여인이 아이를 쫓아 개울물에 들어섰다. 여인은 아이의 손목을 잡아 쥐고 얼굴이며 등허리며 다리를 씻겼다. 그러더니 툴툴대는 아이를 데리고 이쪽 개울둑으로 올라왔다. 여인은 아이를 달래며 내 곁을 조용히 지나갔다. 옥수수와 가지를 따 담은 바구니를 힘겹게 옆구리에 낀 채로.
나는 내 곁을 지나가는 엄마와 아이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근데 몇 걸음을 가던 여인이 모자를 벗은 채 고개를 갸웃하며 되돌아 왔다.
여인이 내 앞에 와 섰다.
"저, 혹시……."
그렇게 말하는 여인의 입모습이 왠지 낯익었다.
“옥자라고 아세요? 6학년 때.”
여인은 부끄러운 듯 자신을 소개했다.
맞았다. 그러고 보니 대숲집 옥자였다.
"선생님, 한눈에 몰라 뵈어 미안해요."
그 옥자가 지난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선생님께서는 제가 소리 내어 책을 읽고 나면 늘 그러셨지요. 목소리와 입모습이 참 예쁘다고. 그러면서 절 보고 뭐라 하셨는지 아세요? 아나운서감이라고 하셨지요.”
말을 마치고 옥자가 피식 웃었다.
서른이 넘은, 시골 아낙이 다 된 자신이 부끄럽다는 웃음 같았다.
"요즘도 뉴스를 볼 때면 가끔 선생님 생각을 해요."
논밭 사이 길을 걸어 마을로 돌아오면서 이번에는 내가 부끄러웠다. 당당히 농부의 아내가 되지 못하게 한 게 내 책임 같았다. 그동안 옥자는 어쩌면 현실을 살면서 또한 구름 위의 세상을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내가 말을 아무렇게나 했구나."
내 말에 옥자가 야무지게 대답했다.
"지금은 농사일을 하겠지만 다음에는 꼭 할 거예요."
"다음이라니 언제?"
나는 놀란 눈으로 물었다.
"다시 태어나면요."
그가 당돌하게 대답했다.
나는 더 이상 할 말을 잃고 어금니를 꾹 물었다.
사람은 무슨 힘으로 사는가.
버스를 타고 돌아오면서 내내 그 생각을 했다.
뒤에 서는 기쁨
방학이라 딸아이가 집에 돌아와 있다. 외국에 나가 대학을 다니는 딸아이는 방학이어도 제 시간이 있어 늘 바쁘다. 함께 아침을 먹는 횟수도 적고, 함께 티브이를 보는 시간도 흔하지 않다. 한번 외출을 하면 뭔 일이 그리 많은지 늦어서야 돌아오기 일쑤다. 그래도 가끔 함께 식사를 할 때면 나를 챙긴다.
“입가에 밥풀 떼어요.”
“맛없어도 엄마를 생각해 맛있게 먹고.”
“숭늉 마실 땐 입 안 훔치는 소리는 내지 말아요.”
그리고 조금씩 술을 줄이라거나, 어느 때에 꽃을 사 들고 들어오는 게 좋은지를 귀띔하기도 한다. 딸아이는 늘 내 뒷자리에 있었다. 그가 어렸고 내가 그의 삶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잔소리를 했으니까.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내 앞에 나서서 내 흠을 밉지 않게 고쳐 주곤 한다.
“함께 산에 가지 않으련?”
어느 날, 딸아이에게 짬이 난 걸 알고 나는 물었다.
가끔 산을 오르다 보면 아들과 함께 산을 오르는 아버지들을 만나곤 한다. 늘 그랬던 건 아니지만 나는 가끔 그들이 부러웠다.
“좋아요.”
딸아이가 흔쾌히 내 부탁을 받아 줬다.
산이라 봐야 동네 산이다. 산 입새에 들어서면 길이 좁아진다. 딸아이가 내 앞에 섰다. 자연스럽게 나는 딸아이 뒤에 서서 산을 올랐다. 앞서 가는 딸아이의 키가 시야를 막고, 젊은 그의 걸음이 내게는 맞지 않다. 그런데도 딸아이를 앞에 세우고 산을 오르는 일이 싫지 않았다. 나는 여태껏 가족을 위해 늘 앞에 서서 여기까지 왔다. 전세방 하나를 얻어 옮길 때도, 명절에 고향을 내려갈 때도 싫어하는 가족을 데려고 앞장 서 갔다. 그러느라 온갖 불평을 들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의무감에 앞이라는 자리를 지키면서 살아왔다.
산을 오르다 보면 몇 번의 갈림길이 나온다. 샘물터로 가는 계단 길과 숲으로 들어가는 호젓한 소로小路. 나는 늘 이쯤에서 번잡하지 않은 소로를 택했다.
“어떤 길로 가고 싶어요?”
갈림길 앞에서 딸아이가 내게 물었다.
“네가 좋아하는 길로 가자.”
나는 내 방식의 길을 그 순간 버렸다. 딸아이는 젊은이답게 계단으로 만들어진 쭉 벋은 언덕길을 택했다. 내가 원하는 길은 아니지만 서슴없이 딸아이의 길을 따랐다. 그래서 나는 또 그것이 몹시 기뻤다.
이 나이에 나의 길을 딸아이에게 맡기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딸아이의 뒤를 따르는 동안 나는 내 방식의 길을 버렸다. 그것이 비록 이번 한순간의 양보라 할지라도 그래서 기쁘고 뿌듯했다. 내가 나의 길을 고집한다 해도 세상의 모든 순서가 그렇듯 언젠가 나는 내가 가는 길을 누군가에게 비켜 줘야 한다. 그것이 나의 딸아이든 얼굴을 모르는 다음 세대이든. 뒤에 선다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이지 이제는 거부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자식을 앞세우고 산을 오르는 이들이 왜 부러웠는지 오늘에야 알겠다. 삶의 이치를 천천히 받아들이는 기쁨 때문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