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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국방/군사학 > 국방 일반
· ISBN : 9788992326995
· 쪽수 : 820쪽
· 출판일 : 2011-06-20
책 소개
목차
서문
엮은이의 말
들어가는 말
제1부 암울한 시기
1950년 6월 25일~1950년 9월 14일
제2부 열정의 나날들
1950년 9월 15일~1950년 11월 25일
제3부 혹독한 나날들
1950년 11월 26일~1951년 6월 20일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스트레이트마이어 장군은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중국-버마-인도 전역에서, 한국전쟁 때는 더글러스 맥아더의 극동군사령부에서 만연했던 복잡하게 얽힌 음모와 싸움에 휘말린 지휘관 치고는 놀라울 만큼 이성적이고 감정을 다스릴 줄 알며, 온화하고 적극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팀버레이크 장군은 “누구라도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스트레이트마이어를 이커와 두리틀 장군과 함께 자신이 모셨던 최고의 상관 3명 중 한 명으로 꼽았다. 할러웨이는 스트레이트마이어가 “모든 사람에게 부담 없이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고 말했으며, 패트리지는 그를 “관대하고 사려 깊고, 겸손한 보수주의 신사”라고 평했다. 크레이기는 “내가 그와 같은 팀이었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고 강조했다. 스트레이트마이어는 사람들을 아끼고 그들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에 그의 부하들은 진심으로 그에게 충성을 다했다. 그 또한 자신의 상관들에게 충성을 다했다. 할러웨이 장군은 “그는 의견을 피력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매우 진지하고 분명하게 의견을 표명하되 항상 지극히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 만약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최선을 다해 명령에 따랐으며 공적으로는 결코 불평하지 않았다.
스트레이트마이어와 공군, 그리고 다른 군에게 한국전쟁은 힘든 전쟁이었다. 게다가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전쟁은 민감한 전쟁이기도 했다. 물자가 충분치 못하여 자주 한계상황에 직면할 정도로 아주 가혹한 전쟁이었다. 미 극동공군사령부의 많은 비행기들이 사용되지 않거나, 전쟁이 시작될 무렵에 이미 시대에 뒤처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미 극동공군사령부는 심각한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예산 삭감으로 미 공군은 많은 분야에서 인력이 부족했다. 이러한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서 많은 예비군들과 주방위군들이 한국전쟁 때 소집되었으나,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예산 문제 때문에 제대로 훈련받지 못해서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트레이트마이어는 그의 병력이 가능한 한 훈련을 잘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는 예산 삭감으로 훈련 양이나 내용에 심각한 지장이 생길 수도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고 있었다. 스트레이트마이어는 일본에 있는 미 육군이나 해군에 비해서 미 극동공군사령부의 전시작전 대비를 훨씬 더 잘 갖추어놓았다. 물론 실수와 병력 손실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미 극동공군사령부는 한국전쟁 동안 임무를 훌륭히 수행했다.
게다가 한국전쟁은 민감한 전쟁이었다. 이른바 ‘제한전’이라고 불리는 전쟁 중에서 첫 번째였던 한국전쟁은 미국의 세심한 군사적ㆍ외교적 손길을 필요로 했다. 극동지역은 미국이 전쟁을 계획했던 곳이 아니었고, 전쟁을 치르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이었다. 워싱턴의 초점은 소련이 군사 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유럽에 맞춰져 있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미 합참과 트루먼 행정부 고위 보좌관들은 대부분 이시오프 스탈린 소련 수상의 구체적인 명령에 따라서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위협에 저항하지 않는 것은 전 세계에 공산주주의의 악행을 공개적으로 부추기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렇다고 이에 대해 과잉 반응을 보이면 유럽이 공격에 취약해질 수도 있었다. 따라서 제한전에서 작전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데 무엇보다도 민감한 균형을 잡는 게 중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