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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인이다

나는 시인이다

(시인 김규동의 자전적 에세이)

김규동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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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인이다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나는 시인이다 (시인 김규동의 자전적 에세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92467469
· 쪽수 : 276쪽
· 출판일 : 2011-03-25

책 소개

1950년대 박인환, 김경린, 이봉래, 조향, 김차영 등과 함께 '후반기 동인'으로 우리 시 문학의 전성기를 이끌어온 시인 김규동의 자전 에세이. 유소년 시절의 초상에서부터 일제 치하에서의 학업, 은사 김기림과의 만남, 시인의 길에 들어서는 과정, 월남과 민족 분단의 삶 등 시인이 살아온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 있다.

목차

1부 | 유년 시절의 기억
당나귀를 아시나요?
병원장의 말썽꾸러기 아들
공부가 제일 쉽다고요?
성적통신표를 위조하다
칭찬은 귀로 먹는 보약
재능 없는 사람은 없다
기다리던 작문 시간
박대룡을 찾습니다
경성고보 시험에 낙방하다

2부 | 시인을 꿈꾸다
시인 김기림 선생을 만나다
경성고보 친구들
순탄치 않았던 학교생활
한 여인의 잔향(殘香)
시인에 대한 단상
잊히지 않는 선생님

3부 | 대한민국에서 시인으로 살아가기
해방과 함께 찾아온 이념 갈등
딱 3년만 머물려고 했는데……
유채룡 선생과의 재회
피란지 부산에서의 생활
대한민국 최초의 간첩 조작 사건
시인 천상병과 박인환
대한민국 시인들
대한민국 대표 시인 김수영
기인(奇人)박거영

작가 연보

저자소개

김규동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25년 2월 13일 함경북도 종성에서 태어났다. 1940년 3월 16세에 함경북도 경성의 경성고보에 입학, 이때 이 학교 영어 교사로 근무하고 있던 김기림을 만났다. 1944년 20세에 경성고보를 졸업하고 그해 2월 경성제대 예과(을)에 응시했으나 낙방했다. 그 후 의사인 매형에게 해부학, 생리학, 내과학, 외과학, 임상학, 산과학, 약물학 등의 의학서를 빌려 의사 검정시험을 준비했다. 같은 해 5월 연변의대 학장이었던 그의 친척 김광찬의 도움으로 연변의대 2학년 과정을 청강생 자격으로 수학할 기회를 얻었다. 1945년 함경북도 회령의 삼성병원(三聖病院)에서 임상학과 진찰법 등을 배우다 해방 후 ‘청진 문학 동맹’ 소속의 소설가 현경준의 지도로 농민 연극 운동에 참여하면서 소인극 <춘향전>의 연출을 맡았으며, ‘민주 청년 동맹’에서 맹활약하면서 두만강 일대에서 독보회(讀報會)와 시국 강연회, 마르크스 레닌주의 강좌 등을 열기도 했다. 1947년 연변의대 청강생 생활을 청산하고 본격적으로 문학을 공부해 보자는 생각으로 그해 1월 평양으로 가 김일성종합대학 조선어문학과 2학년에 편입했다. 11월 시인 박세영이 심사위원장으로 있던 ‘문학 동맹’의 가입 심사에서 김기림의 제자라는 사실이 문제가 되어 가입이 무산되었다. 이때 ≪대학신문≫ 창간호에 처음으로 습작시 <아침의 그라운드>를 발표했다. 1948년 2월 읽을 책도 구하고 김기림도 만나 봐야겠다는 심산으로, 김일성종합대학 의학부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아우 김규천이 준 노잣돈을 들고 단신으로 월남했다. 그해 3월 당시 중앙대 교수로 있던 김기림의 주선으로 경성상공중학(중대부고의 전신) 교사로 부임하면서 남한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김일성종합대학을 중퇴한 사실을 오랫동안 비밀에 부쳤다. 이 무렵 김기림, 김광균, 장만영 등과 함께 모더니즘 시에 몰두하기 시작했고, 시 <강>이 ≪예술조선≫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1950년 6·25전쟁의 발발로 경성상공중학 교사직을 사퇴하고 부산에서 피난 생활을 하던 중 박인환, 조향, 김경린, 김차영, 이봉래 등과 ‘후반기’ 동인을 결성하고 모더니즘 문학 운동을 전개했다. 1955년 ≪한국일보≫에 시 <우리는 살리라>가, ≪조선일보≫에 <포대가 있는 풍경>이 각각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같은 해 10월 20일 김규동의 첫 시집 ≪나비와 광장≫(산호장)이 출간되었다. 1957년 11월 ≪한국일보≫를 사직하고 12월부터 도서출판 삼중당의 편집 주간으로 근무했다. 이 무렵 출판사의 호황으로 잠시 생활의 안정을 얻게 되면서 글을 많이 쓸 수 있었다. 1958년 12월 20일 두 번째 시집 ≪현대의 신화≫(덕연문화사)가 출간되었고, 1959년 7월 30일에 시론집 ≪새로운 시론≫(산호장)이 간행되었다. 그해 7월 삼중당을 사직한 뒤 8월에 곧바로 한일출판사를 차렸다. 편집 주간으로는 시인 임진수를, 편집장에 박상집을 등용해 함께 일하면서 대중 잡지와 단행본 등을 출간했다. 1962년 4월 20일 수필집 ≪지폐와 피아노≫(한일출판사)를 출간하고, 12월 25일 평론집 ≪지성과 고독의 문학≫(한일출판사)을 간행했다. 출판사 경영이 호황을 맞자 1966년 사원 중심 체제로 경영을 일임한 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독서와 번역 작업에 매진했다. 수년에 걸쳐 하이데거 전집과 야스퍼스, 릴케, 카뮈, 사르트르 등을 통독하면서 야스퍼스의 ≪공자와 노자≫를 번역하기도 했다. 1972년 3월 1일 ≪현대시의 연구≫(한일출판사) 출간과 함께 10여 년간 멈추었던 작품 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1974년 11월 27일 윤보선, 김대중, 김영삼 중심의 유신 독재에 반대하는 민주회복국민회의의 ‘민주회복국민선언대회’에 이헌구, 김정한, 고은, 김병걸, 백낙청, 김윤수 등과 함께 참가했다. 1975년 3월 15일 자유실천문인협회의 ‘165인 문인 선언’ 이후 자유실천문인협회 고문에 추대되었다. 그해 5월 15일 한일출판사에서 간행된 김철의 ≪오늘의 민족 노선≫이 북한을 찬양 고무했다는 이유로 중앙정보부에 연행되어 일주일간 심문을 받고 책 2000부를 압수당했다. 1976년 3월 시인 최정인과 처남 강덕주에게 한일출판사를 넘겨주면서 출판사 경영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1977년 8월 10일 시집 ≪죽음 속의 영웅≫(근역서재)을 출간했다. 1978년 3월부터 야스퍼스의 ≪실천철학≫을 번역하기 시작했고, 헤겔의 ≪역사철학≫과 ≪대논리학≫을 정독하는 등 독서에 몰두했다. 1979년 6월 미국의 카터 대통령 방한 반대 데모를 벌이면서 문동환, 고은, 김병걸, 박태순, 안재웅, 이석표 등과 함께 열흘 구류 처분을 받았다. 8월 24일 내외 기자회견에서 자유실천문인협회를 대표해 박태순이 작성한 <문학인 선언>을 낭독했다. 그해 10월 15일 평론집 ≪어두운 시대의 마지막 언어≫(백미사)를 출간했다. 1980년 <지식인 134인 시국 선언>에 참가하고, 1984년 ‘민주통일국민회의’ 창립 대회에서 중앙의원으로 피선되었으며 그해 12월 자유실천문인협회가 확대 개편되면서 다시 고문으로 추대되는 등 시국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1985년 3월 10일 회갑 기념 시선집 ≪깨끗한 희망≫(창작과비평사)을 출간했다. 1987년 1월 28일에 산문집 ≪어머님 전상서≫(한길사)를, 11월 10일에 시선집 ≪하나의 세상≫(자유문학사)을 출간했다. 1988년 3월 64세의 나이에 시를 목각에 새기는 시각[詩刻] 작업을 시작, 도연명, 두보, 이백, 백거이 등의 작품을 완성하면서 종종 작품전을 열기도 했다. 1989년 5월 31일 시집 ≪오늘 밤 기러기 떼는≫(동광출판사)을 출간했으며, 민족문학작가회의와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의 고문을 맡았다. 1991년 9월 15일 수필집 ≪어머니 지금 몇 시인가요≫(도서출판 나루)와 10월 5일 시집 ≪생명의 노래≫(한길사), 그리고 10월 30일에 시선집 ≪길은 멀어도≫(미래사)가 출간되었다. 1994년 5월 28일 산문집 ≪시인의 빈손: 어느 모더니스트의 변신≫(소담출판사)을 출간했다. 1996년 10월 19일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02년 11월 22일 폐기종으로 처음 입원을 한 뒤 수년간 입퇴원을 반복했다. 2005년 4월 20일 시집 ≪느릅나무에게≫(창비)를 출간했다. 2006년 11월 29일 만해문학상을 수상했다. 2011년 2월 18일 60여 년간 써 온 시를 모아 ≪김규동 시전집≫(창비)을 출간하고 같은 해 9월 28일 폐렴이 악화되면서 향년 87세의 일기로 사망했다.
펼치기

책속에서

인환이 한번은 《경향신문》에 취직을 했어요. “나 취직했다.” 무척 기뻐하며 친구들한테 얘기하고 다녔어요. 사나흘 보이지 않다가 일주일쯤 지났을 때 다방에 힘을 다 빼고 눕다시피 앉아 있는 거예요. “너 웬일이야?” “나 신문사 그만뒀어.” “아니, 왜 벌써 그만두냐?” “아휴, 사회부장과 싸웠어. 들어봐. 불이 났는데 소방차가 달려오고 사람들이 불 끄려고 양동이에 물 나르고 아무리 끄려 해도 불기둥이 하늘로 치솟는데 참 볼만하더라고 그래서 ‘야밤에 화산 뿜듯 치솟은 불기둥이 서울 하늘을 장식했다’라고 기사를 썼지.” 이야기를 듣는데 웃음이 나오더라고요.
어이가 없는 사회부장은 신문기사 작성법에 대해 즉석 강의를 늘어놓았대요. 육하원칙에 입각해서 기사를 작성하라는 거죠.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했는지를 써야지, 불기둥이 솟았다든지, 서울 하늘을 환히 밝혔다는 게 말이 되냐며 정성스럽게 쓴 기사를 확 찢어버렸대요. “기껏 시적인 표현을 동원해 기사를 작성했는데 내 글을 찢어버려?” 당하고만 있을 그가 아니었죠. 용납할 수 없는 사람이라며 “이 무식한 놈아!” 하며 부장의 멱살을 잡았대요. 쫓겨날 수밖에 없는 거지요.
얘기를 하면서도 당시가 생각나는 듯 거친 숨을 내쉬며 분을 삭이지 못하는 거예요. “사회부장이란 놈이 왜 그리 무식하냐? 아, 불기둥이 솟았잖아. 야밤에 서울 하늘이 조명탄을 터뜨린 것처럼 환했다고 사실을 썼는데 왜 찢어버려?”
황당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으나 점잖게 거들고 나섰지요. “네가 만리동에서 불이 났는지 광화문에서 불이 났는지 그걸 안 썼잖아. 왜 그랬어?” “그건 잊어버렸지.” 싱겁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이는 거 있죠. 인환은 이렇듯 감성파였어요. 모든 것을 시적으로 생각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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