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지리학/지정학 > 지정학
· ISBN : 9788992973236
· 쪽수 : 272쪽
· 출판일 : 2018-04-10
책 소개
목차
제 1부 영토의 강역 변경사
제1장 잠재적 영토관
1. 잠재적 영토관이란? 18
1) 잠재적 영토관의 정의 18
2) 대한민국 국민들의 잠재적 영토관 21
2. 외국의 잠재적 영토관 사례 23
1) 이스라엘 국민의 잠재적 영토관 23
2) 구소련 해체와 잠재적 영토관 24
3) 국가분열론과 분리론 26
3. 우리가 가져야 할 잠재적영토관 34
1) 문화영토론으로 본 역사적 개념의 우리영토 34
2) 대고려국으로 본 잠재적 영토관 47
컬럼 ‘잠재적 영토관’과 북방영토 50
잠재적 영토관과 포클랜드전쟁 그리고 독도 53
제2장 민족사적 생활영토론
1. ‘민족사적 생활영토론’이란? 57
1) 민족사적 생활영토론 정의 57
2) 경제영토론 58
2. 중국의 차이나타운 성공사례 60
컬럼 ‘민족사적 생활영토론’과 아르헨티나의 대한민국 국토 63
제3장 영토의 축소역사
1. 국제법에 의한 영토 성립 68
1) 청나라와의 유조변책 68
2. 백두산정계비 72
1) 백두산정계비 설치 72
2) 백두산정계비에 의한 영토 축소 73
3. 아이훈 조약과 연해주 80
1) 아이훈 조약과 북경조약 80
2) 잃어버린 영토 연해주 81
4. 메이지 유신과 대마도 83
1) 메이지 유신 83
2) 대마도와 판적봉환 84
5. 간도협약과 북간도 87
1) 을사늑약과 간도협약 87
2) 간도 땅을 전부 잃어버리다 104
6. 광복과 남북분단의 역사 105
1) 승전국의 패전국에 대한 분할통치 105
2) 한반도 분할 통치 109
7. 샌프란시스코 조약과 독도 문제 113
1) 샌프란시스코 조약이란? 113
2) 독도는 분쟁 지역인가? 115
8. 한국전쟁과 남북분단 121
1) 한국 전쟁 발발 원인 121
2) 한국전쟁 122
3) 남북한의 군사력 증강 123
제4장 한국전쟁과 휴전선
1. 휴전선의 의미 126
1) 휴전과 휴전협정 126
2) 휴전협정 당사자국과 그 지위 132
2. 국제법과 북한의 붕괴 135
1) 북한 붕괴와 중국의 자동 진주권 135
2) 미국과 중국의 북한 붕괴의 대응전략 136
3) 중국 동북공정의 숨은 뜻 143
제2부 위기의 한반도
제1장 강대국의 한반도 통일에 대한 시각 148
1. 미국의 시각 153
2. 중국의 시각 155
3. 일본의 시각 156
4. 러시아의 시각 157
5. 자강과 균세에 의한 통일전략 157
제2장 북한사회의 내부
1. 주체사상과 자력갱생 159
1) 주체사상과 자력갱생 159
2) 북한의 핵 포기는 가능한가? 167
2. 북한의 경제체제 변화 168
1) ‘장마당’과 ‘포전담당제’ 168
2) 한류 문화와 탈북인 171
제3장 한국사회의 통일운동
1. 한국 사회의 통일운동 173
2. 북한의 통일정책 178
3.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 통일대박 179
제3부 한·러공생국을 통한 통일론
제1장 러시아의 위기
1. 크림반도 사태와 러시아의 위기 184
1) 크림반도 사태 184
2) 러시아의 영토와 인구문제 187
2. 팍스 차이나 188
1) 세계중심 국가 중국 - 팍스 차이나 188
2) 신 실크로드-일대일로 189
3) 중국의 동침전략 191
제2장 공생국이란?
1. 공생국이란? 193
2. 한·러공생국 제안의 탄생 배경 195
1) 러시아의 인구 동태학적 문제 대두 195
2) 중국인의 시베리아 진출 197
제3장 한·러공생국 이유
1. 역사학자 블라디미르 수빈 203
2. 왜 한·러공생국인가? 206
1) 러시아가 공생국 파트너로 한국을 선택한 이유 207
2) 한·러공생국 건설에 따른 영향과 일·러공생국 제안 217
3. 한·러공생국을 위한 제2의 코리아선언 필요성 219
1) 코리아 선언 219
2) 제2의 코리아 선언 220
제4장 문재인 정부의 북방정책
1. 9-브릿지 정책 226
컬럼 한·러공생국과 나인브릿지 230
제4부 통일 대한민국
제1장 경제통일론
1. 한국사회의 통일론 242
1) 김대중 대통령의 통일정책 242
2) 노무현 정부의 통일정책 253
3) 비핵개방 3000 및 남북 신뢰프로세스 254
2. 한·러공생국 건립을 통한 경제통일 256
1) 정치적 분단인 한반도-정치적 통일의 한계 256
2) 경제적 통일론 257
3) 공생국 이익 배분구조와 북한지원 258
3. 경제통일론에 의한 북한 내부 변화론 261
제2장 한·러공생국 건립을 위한 역할과 기능
1. 학계의 역할과 기능 263
2. 정부의 역할과 기능 264
3. 시민단체의 역할과 기능 266
제3장 통일대한민국의 위상
1. 2050년 G2국가 위상론 268
저자소개
책속에서
3. 우리가 가져야 할 잠재적영토관
1) 문화영토론으로 본 역사적 개념의 우리영토
고대 상고시대에는 국가 간의 경계가 공간의 개념으로 정립되어 있었다. 고조선 시대나 이후 고려시대 까지도 국가 간의 경계가 선으로 국가 간 조약이나 협약에 의하여 제정된 것은 없고 통치의 범위 까지를 국경으로 하고 있으며 이는 각국의 문서나 지도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통치를 넘어 실질적으로 그 민족이 거점으로 하여 생활한 곳은 사실 그 민족의 영토이다. 이것을 문화영토라고 하는데 문화의 주인이 영토의 주인인 셈이다. 우리나라 국호를 KOREA라고 하는 것도 고구려를 그대로 영문표기 한 것이고 중국을 CHINA라고 하는 것도 중국의 진나라를 ‘지나’라고 하여 영문 표기한 것이다. 문화생활권역에서 삶을 유지한 영토가 그 민족의 영토인 것이다.
그런 측면서 본다면 우리의 상고시대 영토는 어디까지였을까? 이것을 규명하는 데는 문헌적 접근으로부터 문화영토론접근까지 다양하게 연구 검토 할 수 있다. 이 장에서는 문헌적 사료를 중심으로 한 영토의 개념은 이미 다양하게 소개가 됐기 때문에 문화영토론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문화영토론으로 우리의 영토를 본다는 것은 선조들의 삶의 흔적으로 보는 것이다. 이는 고유한 우리의 문화가 분포된 흔적을 찾으면 우리의 영토인 것이다. 다시 말해 음식문화, 의복문화, 장례문화, 무기문화, 주거문화 등이 타 민족과 다를 경우 우리 민족의 분화 분포를 보면 우리 선조들의 문화영토인 셈이다. 이것이 그 시대에 우리영토인 것이다.
대고려국으로 본 잠재적 영토관
대고려국은 1917년 우리 역사 현장인 만주를 중심으로 한 한반도 전역과 연해주를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는 계획이었다.
이 당시 만주는 무주공산이었고 조선족이 가장 큰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어 국가를 세우는데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청이나 일본도 자국의 각자 이익에 의거 이를 승낙한 상태였다.
2017년은 100주년 되는 해인데 그 중심에 정안립이 있었다. 정안립(鄭安立)[1873~1948]은 1888년(고종 25)년에 16세로 사마시 생원과에 합격한 후 법관양성소(1895)·한어학교(漢語學校)[1897]를 졸업했다.
정안립은 혜민원 주사[1902], 법관양성소 교관[1905], 보성전문학교 교감[1905], 신민회(新民會) 회원[1907], 보성전문학교 교장[3대, 1909. 2]을 지냈고, 청주에 보성학교를 설립[1909. 5. 10]하는 등 구국계몽운동을 전개했다. 1910년에는 양성군수(陽城郡守)를 역임했다.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당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정태은(鄭泰殷)·김만배(金萬培)[金益濟로 개명, 金萬熙의 동생]·이증수(李曾秀) 등 여러 동지들과 우국단(憂國團)을 조직하여 항일독립운동의 방략을 모색했다. 국내에서의 활동이 여의치 않아 정태은·김만배 등과 미국으로 건너가려고 했으나, 정안립만이 검역에서 탈락하여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1910년 만주 길림성으로 망명하여 이름을 정안립이라 개명하고[1911], 길림성 간도 일대에서 유동열(柳東說) 등과 항일독립운동 자치조직인 동삼성한족생계회(東三省韓族生計會)[1917]를 설립하는 등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1918년 3월에는 여준(呂準)·유동열·신팔균(申八均)·김동삼(金東三)·김좌진(金佐鎭)·서일(徐一) 등 39명의 이름으로 대한독립선언서를 발표했다. 1919년 4월에는 여준 등과 함께 파리강화회의에 ‘조선독립안’을 제출하기 위한 대 계획을 수립했다.
그는 또 동삼성 순열사인 장작림(張作霖)을 일제가 암살할 것이라는 정보를 알고 급히 전보로 알려 장작림의 위기를 모면케 했다. 만주사변(滿洲事變)[1931. 9. 18.] 후 상해에서 동아국제연맹(東亞國際聯盟)[1933~1940]을 조직하여 일본·중국 등을 무대로 활동하던 중 일제 고등계 형사들에 의해 서울로 압송되어 중부서에 연금됐다. 광복 후 1946년 남북통일기성회 회장을 맡아 통일운동을 하다가 별세했다.
영토론에 ‘민족사적 생활영토론’이 있는데 지금도 조선족이 살고 있는 이 지역은 우리의 문화가 그대로 남아있다. 또한 잠재적 영토관은 미래를 열어가는 중요한 요소로서 우리 국민 모두가 만주일대를 대상으로 하는 대고려국의 판도를 우리의 영토로 인식해야 한다.
만주를 중심으로 한 대고려국 건립은 국가의 범위를 정하는 지도를 만들어 헌법을 제정했으며 국새와 더불어 국가, 국기 등 국가의 체제를 제대로 갖추어 국가 형태로서 선언을 했다. 다만 국가 건립 이후 상해 임시정부의 탄생으로 힘의 균형이 임정체제로 가다보니 동력을 잃고 좌초되고 말았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영토를 잠재적 영토관에 의거 한반도와 더불어 연해주는 물론 만주벌판까지를 영토로 인정하고 지도를 제작했다. 이때 지도의 형태가 봉황의 모습이라고 하여 봉황의 나라라고 했다.
이처럼 우리의 역사적 근거에 의한 우리의 영토는 만주까지 드넓은 땅에서 선조들이 삶을 영위하여 우리 선조들의 얼과 문화가 그대로 녹아 있는 곳이었다. 이 시절까지만 해도 우리 국민들의 잠재적 영토관은 만주벌판과 연해주를 우리의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