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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러시아소설
· ISBN : 9788992975698
· 쪽수 : 296쪽
책 소개
목차
오몬 라
작품 해설 _ 『오몬 라』에 대하여
작가론 _ 쏘련의 해체와 러시아의 포스트모더니즘 문학―빅또르 뻴레빈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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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책속에서
마치 안락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은 것처럼 허공에 앉은 자세로 그는 공중에 떠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고, 그 뒤에 달린 호스가 마찬가지로 느린 속도로 늘어나고 있었다. 그의 헬멧 유리는 검은색으로, 삼각형의 반사광이 환하게 언뜻언뜻 번득일 뿐이지만, 나는 그가 나를 볼 수 있음을 알았다. 그는 어언 몇 세기 동안 쭉 죽어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확신에 찬 태도로 팔은 별을 향해 뻗고, 두 다리는 너무도 당연히 아무 지지도 필요로 하지 않아서, 그 모습을 본 순간 나는 인간에게 진정한 자유를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무중력뿐임을 영원히 절감했다. […]
“[…] 우리 공산주의자들은 우리의 사상이 옳다는 것을 증명할 시간이 없었어. 전쟁이 너무 많은 힘을 소진시켜 버렸으니까. 과거의 잔재나 내부의 적들과의 싸움도 너무 길었지. 기술 면에서 서방을 제압할 시간이 없었던 거야. 하지만 사상 경쟁은 한 순간도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지. 역설은―이 또한 변증법의 일면인데―우리가 거짓으로 진실을 지탱한다는 데 있네. 왜냐하면, 모든 것을 정복하는 진실을 안에 담고 있는 마르크스주의와 자네가 목숨을 바쳐 추구하게 될 그 목표라는 건 형식적으로는 일종의 거짓이기 때문이지. 하지만 이것은 그대가 영웅이 되기 위해……”
[…] 타인에게 일어나는 일을 우리는 우리에게 다다른 반짝이는 기만적인 빛으로 판단하며 평생을 우리가 빛이라 부르는 것을 향해 가는 여정으로 소모한다. 그 광원은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그리고 나 자신으로 말할 것 같으면, 구호가 거론하는 노동자와 농민, 군인과 창조적 지식인들 위로 날아오르는 순간을 향해 일생을 바쳤으며, 이제 여기 빛나는 어둠 속, 보이지 않는 운명의 실과 궤도에 달랑 매달려서 다음의 인식에 이르렀다. 천체가 된다는 것은, 환상 철도선을 정차 없이 뱅뱅 도는 죄수용 객차에 탄 채 종신형을 사는 것과 많이 다르지 않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