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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사진 > 사진이야기/사진가
· ISBN : 9788993489248
· 쪽수 : 180쪽
· 출판일 : 2012-06-15
책 소개
책속에서
돌이켜보면 30년 사진 인생을 그토록 열심히 진지하게 사랑할 수 있었던 건 ‘혼자 할 수 있는’ 사진이 주는 그 깊은 어둠의 상자(암상자) 때문이지 않았나 싶어요. 깊은 어둠 속에 한 줄기 빛이 들어가 세상이 나타나는 지독한 어둠의 상자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 어두운 방)’이기 때문에요. 나를 키웠던 유년의 깊고 어두웠던 산맥, 그리고 역시 나를 키운 깊은 어둠의 사진들은 어쩌면 오랫동안 어둠 속에 있었고 그 어둠에서 오로지 혼자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하고 표현하는 그 음침하고 음습했던 폐쇄공간 때문이라고 봐요. 지금도 그렇지만 너무 좋아합니다. 어둠을, 밀실을, 고립과 폐쇄를…. 그것들은 스스로 닫은 게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일상처럼 닫혀 있었던 거지요. 셔터를 누리기 전의 카메라 안쪽처럼, 그것이 마치 정상인 것처럼.
캄캄한 암실에서 오로지 혼자,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그 깊은 어둠에서 혼자 작업하는 것이 너무 좋았고, 영상이 그 컴컴한 현상 바트 속에서 스르륵 떠오르는 것을 볼 때마다 전율할 정도로 좋았습니다. 그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것은 운명, 아니 숙명이다. 나의 독한 어둠과 고립성에 가장 잘 맞는 것이 사진이란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밀폐된 어둠의 파인더를 통해서 세상을 훔쳐보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것은 어린 시절 장롱 속에서 혹은 어두컴컴한 깊은 마루 밑에서 바라보던 세상 그것이었으니까요.
...어둠이 내 몸 안에 있으니까요. 내 속이 온통 어둠이라 어둠밖에 친숙한 게 없어요. 어둠이 없는 빛은 낯설어요. 밝고 화려하고 넘치는 빛은 정말 부담이 가요. 그래서 전 정치적인 모습, 혹은 가시적 행동들이 죽기만큼이나 싫어요. 모든 것을 숨기고 감싸고 덮어주는 어둠이 좋은 것은 여전히 제 안에 주변인, 아웃사이더의 성향이 강하게 내재되어 있다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