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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사진 > 사진이론/비평/역사
· ISBN : 9788993818697
· 쪽수 : 216쪽
· 출판일 : 2014-11-15
책 소개
목차
편집인의 글
남서부의 빛
소소한 사건들
팔라스 클럽에서, 오늘 저녁…
파리의 저녁들
해설 _ 현재의 소설: 메모, 일기 그리고 사진
리뷰
책속에서
<해설 _ 현재의 소설: 메모, 일기 그리고 사진> 중에서
이 책에 실린 네 편의 글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범주는 책 제목처럼 ‘incidents’이라 할 수 있다. ‘소소한 사건들’ 혹은 ‘사소한 일들’로 번역되는 이 단어의 어원은 ‘위에서 떨어진 것’ 혹은 ‘불시에 나타난 것’이다. 그것은 한가로운 일상에 갑자기 들이닥친 작은 사건 또는 롤랑 바르트의 표현대로 ‘모험aventure’이다. 하지만 이 작은 사건은 바르트에게 ‘그때, 그곳에서’ 발생한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일어난 현재의 사건이다. 소설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과거의 소설 혹은 기억의 소설이 아니라 ‘현재의 소설’이다. 이것은 바르트가 생애 말년인 1970년대 꿈꿨던 새로운 형식의 글쓰기, 새로운 종류의 소설을 의미한다. 200p
1977년 10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바르트는 과거와 더욱 단절하고 현재, 그의 표현대로 ‘새로운 삶Vita Nova’에 주목한다. 그에 따르면 문학은 언제나 ‘삶la vie’을 통해 성취된다. 그러나 바르트는 ‘과거의 삶’은 작가에게 안개에 쌓인 것처럼 불분명하며 그것이 내뿜는 불빛은 희미하다고 언급한다. 그에 반해 ‘현재의 삶’이 글을 쓰는 자에게 뿜어대는 불빛은 강력하고 뚜렷하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바르트는 과거의 소설을 버리고 ‘현재의 소설’을 쓰기로 한다. 202p
이 글은 전형적으로 ‘사진적인’ 글이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글로 쓴 ‘스냅 사진’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소소한 사건들’의 미니 텍스트들은 마치 여러 장의 서로 연관 없는 사진처럼 파편적이다. 그것은 모로코를 여행하는 사진가가 여기저기에서 무작위로 촬영한 수많은 스냅 사진들을 어지럽게 모아놓은 듯하다. 이런 종류의 사진들이 일관성 있게 하나로 연결되지 않듯이 이 미니 텍스트들은 시간, 공간, 의미의 측면에서 불연속적이고 단절되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메모는 저자가 마치 지금, 바로 이곳에서 벌어진 사건을 직접 관찰하면서 써내려간 느낌을 독자에게 부여한다. 왜냐면 이 글들에서 시제는 거의 현재형으로 씌어졌으며 묘사된 공간은 발화자의 위치(카페, 기차, 호텔 창문 등)를 지시하기 때문이다. 204p
<남서부의 빛> 중에서
나의 두 번째 남서부는 지역이 아니다. 그건 단지 하나의 선線, 직접 체험한 하나의 궤적이다. 파리에서 차를 타고 내려올 때(나는 이런 여행을 천 번쯤 했다) 앙굴렘을 지나면, 이제 집문턱을 넘어서 유년 시절의 고장으로 들어간다고 내게 알려주는 그 어떤 신호가 있다. 한옆에 소나무 숲이 있고, 집 뜰에는 종려나무가 한 그루 서 있고, 일정 높이에 떠 있는 구름들 때문에 대지는 얼굴 같은 변화무쌍함을 부여받는다. 바로 이때, 고상하면서도 미묘한 남서부의 눈부신 빛은 시작된다. 결코 잿빛을 띠는 법이 없고 절대로(심지어 해가 나지 않을 때에도) 낮게 내려오는 법이 없는 이 빛은 ‘빛이자 공간’으로서, 그것이 사물에 어떤 색깔을 입히는가에 따라 규정된다기보다는(지중해 쪽 남프랑스에서 그러하듯이 말이다)—그것이 대지에 부여하는, 그래서 이 땅을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특성에 의해 규정된다. 내 입장에서는 ‘이것은 반짝이는 빛이다’라고 말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이 빛은 가을—이 지방에서 단연 최고의 계절—에 보아야 한다(아니 차라리 ‘들어야 한다’고 해야겠다. 그럴 만큼 그 빛은 음악적이니까). 물처럼 흐르며, 반짝이며, 사물 하나하나를 저마다 다르게 비추어주는(남서부는 ‘미세한 날씨’의 고장이다) 일 년의 마지막 아름다운 빛이기에 비통하다. 17p
<소소한 사건들> 중에서
짧은 회색 턱수염을 지극정성으로 손질하고, 손도 역시 잘 다듬은 성직자 어른 하지가, 결이 곱디 고운 천으로 지은 새하얀 젤라바를 예술적으로 차려 입고 새하얀 우유를 마신다. 하지만 이것 한 가지. 비둘기가 볼 일을 본 것인지, 티 없이 말끔한 그의 두건 위에 한 점, 살짝 똥 채색. 33p
‘이베리아’ 항공사 카운터에 앉은 여직원은 웃음 짓지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단호하고, 화장은 진하지만 메마른 느낌이고, 아주 긴 손톱에는 핏빛 같이 빨간 매니큐어를 칠했다. 오랫동안 몸에 밴 권위적 동작으로 길쭉한 항공권들을 만지작거리고 접고 하는 저 손톱들…. 43p
탕헤르의 노병老兵 셀람이 폭소를 터뜨린다. 이탈리아 사람 셋을 만났는데 그들 때문에 시간 낭비를 했다는 것이다. “그 친구들, 글쎄 내가 여자인 줄 알더라고!” 57p
파리에서 올 때 “기념품”을 사다 달라던 그 청년에게 그런 것을 사다주기가 난감함.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에게 어떤 멋진 부가품附加品을 줄 것인가? 라이터? 그걸로 불 붙일 담배나 있나? 어떤 기호처럼 돼버린 기념품, 즉 쓸모가 없어도 너무 없는 물건을 고른다. 놋쇠로 만든 에펠 탑. 7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