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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프랑스소설
· ISBN : 9788993964233
· 쪽수 : 435쪽
· 출판일 : 2010-09-27
책 소개
목차
옮긴이의 말
빌
붉은색 대저택
로드웰
후기
부록: 매춘은 혁명적인 행위이다
리뷰
책속에서
“옷을 벗으세요.”
그 후에는 침묵이 계속되었다. 나는 몇 시간 동안 꼼짝 않고 포즈를 취해야 했다. 사각사각, 종이를 스치는 연필 소리만이 희미하게 들렸다. 청년은 한숨을 쉬었고 나는 이빨을 딱딱 부딪쳤다. 그는 마침내,
“끝났습니다.”
라고 말하며 연필을 내려놓았다.
“이 정도면 괜찮을까요?”
그는 내게 15마르크를 내밀었다. 난 뭐라고 대꾸할 기력도 없었다. 그저 돈을 받아 쥐면서 그의 작품을 곁눈질해 보았는데, 맙소사! 커다란 백지 한가운데에는 아주 아주 작고, 서투르며, 유치하기 짝이 없는 실루엣 하나만이 그려져 있는 게 아닌가! 아니, 저걸 그리려고 그 오랜 시간을……!
“아름다운 여인이여, 나와 함께 식사를 하겠소?”
그는 나를 중국 식당에 데려갔다.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한 음식들은 이제 곧 다가올 고통의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난 용기를 내기 위해 와인을 들이켰다.
식사가 끝나고 우리는 나란히 길을 걸었다. 배는 두둑했지만 날이 너무 추웠다.
우리는 승강기가 없는 오래된 건물에 올랐다. 마지막 7층, 지붕 바로 아래에서 그는 다락방 문을 열었다.
“받아.”
그 말과 함께 그는 50마르크를 내밀었다. 절망적인 초록색 지폐 한 장을. 그러고 나서는 꽃무늬 디방 위에 올라갔다. 네 다리로 엎드려서 털 난 거대한 엉덩짝을 벌리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핥아.”
아, 이것이 바로 천국으로 통하는 치욕스런 비밀의 문이었다! 먹고살고 싶다면, 빨고 핥아야 하는 역겨운 성체의 빵 말이다!
이윽고 뚱뚱보 독일인은 가냘프게 울었다. 언젠가 기저귀를 채워주던 엄마의 부드러운 손가락을 경험하고 있다고 믿는 이 늙은 갓난아기는 저렇게 엎어져서 지금까지 똥을 한 트럭은 눴을 것이다! 이제 끝났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넥타이를 매고 다시 위엄을 되찾았다.
“한잔하러 갑시다.”
나는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진 닭을 대리석 서랍장 위에 올려두고 빌을 기다렸다. 아이들은 이미 잠든 뒤였다. 자정이 되어 들어온 빌은 문턱을 넘자마자 곧장 서랍장으로 달려들었다.
“닭 요리했어? 좋아. 맛만 좀 볼게.”
그리고 빌은 그 크고 탐욕스러운 이빨을 드러내고 야생적으로 살점을 뜯어나갔다. 내가 손가락 하나 대기도 전에 싸그리 먹어치운 것이다. 순식간이었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는 기름이 번들번들한 입을 닦아내며 말했다.
“굿, 베리 굿! 우리 달링, 이제 침대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