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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88994015057
· 쪽수 : 340쪽
· 출판일 : 2010-02-25
책 소개
목차
들어가는 말
1장
01 인생의 봄을 회고하다
02 ‘회’라는 글자를 처음 배운 날
03 찬란했던 소학교 시절
04 삼류 학교의 즐거움
05 베이위안의 풍경
06 베이징대학을 꿈꾸다
07 어린시절을 회고하며
08 우물안 개구리에서 벗어나다
09 늙은 개 한 마리
10 닝차오슈 아저씨를 그리며
11 소중한 첫 직장
12 괴팅겐의 은인, 하룬 교수
13 영원한 친구 장톈린
2장
01 스스로를 돌아보다
02 ‘국학대사’의 호칭을 사양하다
03 ‘국보’의 호칭을 사양하다
04 투병 끝에 얻은 것
05 세 번째 입원
06 하늘나라와 인간 세상
07 백의천사에 대한 새로운 찬사
08 나와 소동파의 사
09 찬란한 빛을 발하다
10 풋사랑
11 석류화
12 어리석기도 어렵구나
13 조금은 어리석게, 조금은 소탈하게
14 불로장생
15 친일파에 대한 생각
16 노년을 다시 논하다
17 개의 해 첫 날의 감회
18 ‘다시 젊어지는’ 문제에 대해 담담하게 논하다
19 우려해야 할 현상
20 평범한 것들의 아름다움
21 분석이 학문 연구의 유일한 수단은 아니다
22 저우이랑을 애도하며
23 남극에서 온 식물
옮긴이의 말
책속에서
올해로 난 아흔 하고도 하나가 되었다. 지씨 가문의 족보를 다 뒤져도 아마 내 나이만큼 산 사람을 찾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도 난 내가 늙었다는 사실을 조금도 느낄 수가 없다. 늙은 천리마처럼 몸은 이미 노쇠하여 울타리에 엎드려 있지만 그 뜻은 만 리를 내달리고 있다. 육신은 비록 이런저런 병으로 고통 받고 있지만, 이 역시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이 나이 되도록 아무런 병도 없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일이 아니겠는가. 갖가지 병을 몸에 지니고 있지만 목숨을 내놓아야 할 만큼 치명적인 병은 없다. 비록 귀가 조금 어둡고, 눈이 침침하기는 하지만, 머리만큼은 결코 녹슬지 않았다. 노인성 치매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쭙잖은 자만심마저 생겨버렸다. 세상엔 아직도 날 필요로 하는 일이 많은 것 같다.
숙모에게 아침 사먹을 돈을 달라고 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아 속으로 끙끙 앓았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어느 여름날 저녁, 식구들이 모두 마당에 멍석을 깔고 누워 선선한 바람을 쐬고 있었다. 다들 편히 쉬고 있는데 나 혼자 돈 달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몇 번이나 입만 벙긋거리다 말았다. 그러다 결국 깊은 밤이 돼서야 가까스로 용기를 내서 말을 꺼냈다. 그때 엽전 몇 푼을 받고 얼마나 기쁘던지 그걸 손에 꼭 쥔 채 그대로 잠이 들었다.
난 여섯 살 되던 해에 어머니 곁을 떠났다. 지난의 숙부 댁으로 온 그날 밤새도록 서럽게 울었다. 어느 해인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아홉 살에서 열두 살 사이에 할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시는 바람에 고향집에 다녀왔다. “자식이 어머니를 만나면 아무 일 없이도 세 번 운다”는 옛말도 있지만, 밤낮으로 그리워하던 어머니를 만났는데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오히려 날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엔 눈물이 가득 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