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94040172
· 쪽수 : 208쪽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그렇게 한 번에 한 걸음씩 나아갔다. 매일 밤 둘이 만났기에, 변화가 그리 두드러지지 않았기에, 그가 사랑을 아주 잘 나누었기에, 내가 곧 육체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그에게 미쳤기에―겨우 2주일 지났을 뿐인데―내가 아는 사람들이 병적이라고 할 상황에 빠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게 ‘병적’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것’에 어떤 이름도 붙이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이 기간을 산 내게는 생각할 수 없는 일 같았다. 이제야 과거가 된 그 몇 주일을 독립된 현상으로 돌아볼 뿐이다. 그것은 모든 함축적 의미가 결여된, 꿈처럼 비현실적인 내 삶의 단편이었다.
“이거면 되겠군요.”
그가 말한다. 카운터를 쳐다보니 그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는 손에 말채찍을 들고 있다. 그가 말한다.
“테스트해보고 싶은데요.”
묘한 변화가 일어난다. 한순간 나는 방향감각을 잃고 외계에 와 있다. 이국적인 시대에. 그가 몇 발자국 걸어서 내가 반쯤 걸터앉은 책상으로 다가온다. 나는 한 발은 바닥에, 한 발은 공중에 있다. 그가 책상에 걸친 내 왼쪽 다리 위로 치마를 걷고 물러서더니, 허벅지를 채찍으로 때린다. 솟구치는 통증 사이로 설명할 수 없는 흥분감이 밀려든다. 숨을 쉴 수도, 말을 할 수도, 움직일 수도 없다. 온몸의 모든 세포가 욕정에 휩쓸린다.
점심 식사가 전환점이었다. 내 생활은 정확히 양분되어 있다는 것이―두 사람 다에게―명확해졌다. 낮과 밤, 그와 함께와 따로. 그 둘을 뒤섞은 것은 실수였고 위험할 수도 있었다. 며칠, 몇 주일이 흐르면서 내 삶의 두 부분은 점점 완전한 균형을 이루어갔다. 우리의 밤이 더 분명하고, 집중력 있고, ‘환상적’일수록, 내 직장 생활도 더욱 환상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