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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사상가/인문학자
· ISBN : 9788994054308
· 쪽수 : 335쪽
· 출판일 : 2013-01-15
책 소개
목차
저자 서문
들어가는 글 | 요한 하위징아: 고전을 써낸 작가
제1부 생애와 저작
1. 생애
2. 저서
옛것과 새것 | 르네상스
제2부 읽기와 쓰기
3. 읽기
동화 | 읽기와 역사 | 문학과 리얼리티 | 단테
4. 쓰기
대조적 사항들 | 화해의 형식들 | 표현력
제3부 대조와 조화
5. 대조
『중세의 가을』 | 대조의 구체적 사례들 | 묘사 혹은 비판 | 현대
6. 조화
무드 | 의례 | 교훈
제4부 열정과 공감각
7. 열정
열정의 형식 | 미학적 요소 | 열정과 형식 | 열정과 가독성 | 열정과 하위징아 | 코다
8. 공감각
시각 | 색깔과 미각 | 소리 | 말과 이미지 | “모든 것을 적절히 혼합하자”
제5부 연구방법과 신비주의
9. 연구방법
살라미스 전투 | 형식과 자유 | 형식과 주제 | 형식과 해방
10. 신비주의
두 종류의 신비주의 | 개인적 체험 | 자연 | 상징주의
제6부 추론과 변신
11. 추론
차 한 스푼의 이론 | 싹, 불꽃, 한 방울 | 일화들 | 타입 | 시간의 왜곡 | 중심과 변방
12. 변신
변화의 가능성 | 원시인, 어린아이, 시인, 그리고 신비주의자 | 기사, 오네트 옴, 젠틀맨, 그리고 부르주아지 | 안티 모더니스트인 하위징아
코다
13. 역사적 위대성
참고문헌 | 주석 | 요한 하위징아 연보 | 역자 후기 | 찾아보기
리뷰
책속에서
네덜란드 역사가 중에서 가장 유명한 요한 하위징아는 다른 역사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보다는 역사가가 아닌 다른 작가들과 비교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 그의 작품은 역사서로 읽히기보다는 일련의 우화寓話로 더 잘 읽힌다. 사실 그를 역사가라고 생각하고서 그의 작품을 읽는 사람들은 그의 작품에서 어떤 일관성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그의 가장 잘 알려진 네 편의 저작, 『중세의 가을』, 『에라스뮈스』, 『내일의 그림자 속에서』, 『호모 루덴스』에서, 하위징아는 이 작품 순서대로 각각 역사가, 전기작가, 문명비평가, 인류학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위에서 일관성을 발견하기 어렵다고 했지만, 실제로 그의 작품은 다른 어떤 역사가 못지않게 일관성을 갖고 있다. 그것은 소재보다는 주제의 일관성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까지 하위징아는 노벨 문학상을 탈 수 있는 지근거리까지 접근한 유일한 네덜란드 작가이다. 그를 작가로 생각하고 그의 저작을 읽는 독자들만이 하위징아 저서의 지속적인 가치를 알아볼 수 있다.
하위징아는 어떤 신문에 기고한, 위대한 독일 역사가 랑케Ranke에 관한 글에서 ‘클래식(고전)’이라는 단어를 정의한 바 있다. 그는 그 글을 쓸 당시 독일의 문헌학 대회에서 네덜란드로 막 돌아온 참이었는데, 독일 체류를 아주 편안히 여긴 듯하다. 사실 그 자신이 학문의 초창기에는 문헌학자로 훈련을 받았고, 그래서 그 분야 학자들의 환대는 그에게 소중한 것이었다. 그는 후에 역사학 교수로 자리를 얻었고, 또 역사학 논문을 많이 썼지만 문헌학에 대한 애정은 여전히 남아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기사 내용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는 일찍이 독일 유학 시절에 알았던 독일을 재발견했고, 저 “온유한 라인 강 분위기”를 다시 느꼈다.
흐로닝언과 프리슬란트의 대조는 오멜란덴이 원래 프리시아의 일부였다는 사실에 의해 더 나빠지기도 하고 더 좋아지기도 한다. 이러한 대조는 하위징아의 향토심에 유대감의 열기를 불어넣어 주는가 하면 상실의 향수를 안겨주기도 한다. 하위징아는 흐로닝언 대학의 교수가 된 후 이렇게 썼다. “블리에와 로베르스 사이에 사는 프리시아 사람들은 진정으로 존경할 만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예전의 땅을 그대로―혹은 일부를―소유하고 있는 유일한 게르만 부족이다. 그들은 옛 이름을 그대로 간직한 채 카이사르의 시대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땅을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소유와 상실은 서로 연결된 것이다. 중세 초기에 오멜란덴의 프리시아적 특성은 사라졌고, 하위징아는 이것을 문화적 상실이라고 말했다. 새로 이주해 온 색슨 부족은 프리시아 문화를 별로 채택하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만의 문화를 가져온 것도 아니었다. “이들 지역은 그 고유의 대중문화에 건조하고 맥빠진 특성만 덧붙였다”라고 하위징아는 썼다. 그런 사실은 그를 울적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