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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94194332
· 쪽수 : 248쪽
책 소개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국가대표팀에 주전선수 선발의 우선권을 드리겠습니다. 아홉 명. 마음대로 먼저 뽑아 가십시오. 분명히 최동원이, 김재박이, 또 뭐 심재원이… 이런 톱스타들을 다 뽑아가시겠지만… 일단 올해는 그 선수들 없이도 어떻게든 프로야구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킬 수 있도록 제가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다만,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김시진이랑 장효조는 국가대표 주전 아니겠습니까? 이 두 선수들이 군인 신분이고 그래서 올해 당장 프로야구에 어차피 합류할 수 없다고 해서 그 선수들을 빼놓고 아홉 명을 뽑아가시겠다고 하면 저희 프로 쪽에 너무 큰 타격이 된다는 말씀이지요. 그래서 그 두 명을 제외하고 올해 프로 입단 대상 선수들 중에서는 일곱 명만 선발을 하신다고 하더라도 명실상부하게 대한민국 최고의 베스트 나인을 국가대표팀이 보유하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국가대표팀 선수 선발 문제는 그 정도로 좀 배려를 해주십사 하는 것이 제가 마지막으로 드리는 간곡한 부탁입니다.”
“자, 자. 됐고. 자, 드디어 마지막이다. 일본이다. 오늘은 무조건 이긴다. 만약 이기지 못한다면, 야구장 가운데 나부터 시작해서 다 일렬로 무릎 꿇고 앉아서 관중들이 던지는 소주병 맞고 같이 죽는 거다. 알겠냐?”
“예.”
“자. 최대한 집중하고, 나가서, 때려잡자. 파이팅.”
“파이팅.”
어우홍 감독의 선창을 따라 스물세 명의 선수들과 두 명의 코치가 한데 손을 모아 낮지만 힘 있는 ‘파이팅’ 구호를 외쳤다. 그리고 경기가 시작되었다.
대회 마지막 날, 우승팀을 결정짓는 최종 결전이었고, 그렇게 자신 있다고 생각했던 한일전이었다. 한일전만큼은 누구나 다른 마음가짐으로 임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어우홍 감독 역시 쉰이 넘은 나이가 무색하게, 마치 고교야구팀 감독 같은 패기를 발휘해서 파이팅을 외쳤다.
하지만 선수들은 마치 이탈리아와 맞붙었던 개막전을 치를 때와 거의 똑같은 생경함을 느끼며 경기에 나서고 있었다. 그것은 이해창이나 김재박 같은 백전노장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선 동대문 시절보다도 한층 밝아진 잠실 조명탑의 휘황찬란한 불빛 아래서, 가득 들어 찬 3만 명의 관중이 일방적으로 자신들을 응원하는 가운데 국제경기를 치르는 것은 그들 누구에게나 첫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우선 3만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야구장 자체가 바로 그 대회를 위해 처음으로 지어진 것이고, 또한 그 정도 규모의 국제대회를 국내에서 치른 것 역시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다음 순간 김재박은 양 팀 벤치를 모두 충격으로 몰아넣는 행동을 하고 말았다. 그는 멀찍이 빼는 니시무라의 3구를 향해 필사적으로 몸을 날렸던 것이다. 완벽한 사인미스. 왼손으로 시작되는 사인은 허위라는 사실을 순간 까맣게 잊어버린 김재박의 엄청난 대실수였다.
하지만 둥근 공과 둥근 배트의 만남이 변화무쌍한 결과를 낳듯, 계산된 플레이와 계산된 플레이 사이에서 벌어진 도저히 계산할 수 없었던 돌발적 사태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결과로 이어졌다. 그렇게 뛰어오르는 탄력과 각도에 묘하게 배트에 빗겨 맞은 타구는 3루쪽 파울라인을 타고 절묘하게 흘러나갔던 것이다. 타구가 워낙 절묘하게 흘렀기에 3루 베이스에 붙어있던 김정수는 그제야 몸을 돌려 홈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고, 이미 때가 늦은 것을 직감한 일본의 3루수가 파울이 되기를 기대하며 하염없이 지켜본 타구는 3루 베이스 근처까지 그대로 페어지역 안에서만 굴러가고 있었다. 그 사이 김재박의 1루 안착. 어이없는 실수는 엉뚱하게도 2대 2 동점이 이루어진 데 이어 1사에 역전주자를 1루에 내보내는 뜻밖의 성공적인 결과를 낳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