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logo
x
바코드검색
BOOKPRICE.co.kr
책, 도서 가격비교 사이트
바코드검색

인기 검색어

실시간 검색어

검색가능 서점

도서목록 제공

해방일기 2

해방일기 2

(해방을 주는 자와 해방을 얻는 자)

김기협 (지은이)
너머북스
23,000원

일반도서

검색중
서점 할인가 할인률 배송비 혜택/추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20,700원 -10% 0원
1,150원
19,550원 >
yes24 로딩중
교보문고 로딩중
11st 로딩중
영풍문고 로딩중
쿠팡 로딩중
쿠팡로켓 로딩중
G마켓 로딩중
notice_icon 검색 결과 내에 다른 책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중고도서

검색중
서점 유형 등록개수 최저가 구매하기
알라딘 판매자 배송 4개 17,400원 >
로딩중

eBook

검색중
서점 정가 할인가 마일리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로딩중

책 이미지

해방일기 2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해방일기 2 (해방을 주는 자와 해방을 얻는 자)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근현대사 > 해방전후사/한국전쟁
· ISBN : 9788994606088
· 쪽수 : 536쪽
· 출판일 : 2011-09-19

책 소개

한국현대사의 갈림길 '해방공간'에서 조선이 최악의 길로 접어든 것은 어느 시점이었을까. '해방공간'의 역사적 의미를 되살리는 역사학자 김기협의 <해방일기> 첫 권 '해방은 도둑처럼 왔던 것인가'에 이어, 1945년 11월 초부터 1946년 1월 말까지 시기를 다룬 <해방일기 2 - 해방을 주는 자와 해방을 얻는 자>가 출간되었다.

목차

머리말 독립의 길을 험하게 만든 반탁운동

1부 이승만, 주도권을 선점하다 1945년 11월 1~11일
1945. 11. 1. 하지의 IQ는 얼마?
1945. 11. 2. 이승만의 첫 묘수, 독립촉성중앙협의회
1945. 11. 3. 냉전의 길에 앞장선 맥아더와 하지
1945. 11. 4. 식민지체제의 보존을 획책한 한민당
1945. 11. 5. 극우의 눈에는 모두가 빨갱이
1945. 11. 8. “20만을 넘는 우리 정부 정규군”, 뻥이야!
1945. 11. 9. 조병옥, “식당도 미국식으로!”
1945. 11. 10. 미군정이 가져다준 ‘언론자유’
1945. 11. 11. ‘동양척식’ 간판만 바꾼 미군정
● 베트남 이야기 (1) 베트남 해방과 조선 해방의 차이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 / 투쟁보다 포용, 선명성보다 유연성을

2부 기다리고 기다린 임정의 귀국 1945년 11월 15~30일
1945. 11. 15. 공산당, 임시정부와 대결태세를 갖추다
1945. 11. 16. ‘친미 내셔널리스트’의 탄생
1945. 11. 18. 토지개혁 과제가 절실했던 이유
1945. 11. 19. 임정을 갖고 놀려는 이승만
1945. 11. 22. 일본 군국주의 뒤를 이은 미국 군국주의
1945. 11. 23. 임시정부의 환국, 격리된 하룻밤
1945. 11. 24. 김구 선생님, 친일파 처단을 늦춰도 된다고요?
1945. 11. 25. 인민공화국, 어찌하오리까?
1945. 11. 26. 김구가 국내에 있었다면 ‘사회주의 우파’였을 텐데
1945. 11. 30. 한반도 분단을 향한 미군정의 ‘복안’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 / ‘적대적 공생관계’는 시작되었다
● 해방의 시공간-일지로 보는 1945년 11월

3부 좌우대립의 선봉장 이승만과 박헌영 1945년 12월 1~10일
1945. 12. 1. ‘인민공화국’, 왜 그 이름에 집착했나?
1945. 12. 2. 잔치 이튿날 집에 돌아온 임정 제2진
1945. 12. 3. 4천7백리 길을 걸어 귀국한 ‘독립동맹’
1945. 12. 6. 들통나 버린 이승만의 ‘들러리 수법’
1945. 12. 7. 송진우, 뭘 믿고 임정 앞에서 큰소리를?
1945. 12. 8. 미군보다 훨씬 얌전했던 소련군
1945. 12. 9. 부도덕한 자들의 ‘물귀신 작전’
1945. 12. 10. ‘공산당’이라고 다 똑같은 공산당이 아니었다
● 베트남 이야기 (2) 공산주의 발달에 유리했던 베트남의 조건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 / ‘친일’과 ‘협력’의 경계선은 어디?

4부 파국을 향해 떠내려가는 조선 1945년 12월 14~31일
1945. 12. 14. 독립동맹의 정치노선
1945. 12. 15. 이승만이 조급했던 이유
1945. 12. 16. 돈이 주먹을 불러오다
1945. 12. 17. 누가 돈벼락을 맞았을까?
1945. 12. 20. 매카시의 선구자 이승만
1945. 12. 21. 김구는 이승만을 ‘절대 신임’하였을까?
1945. 12. 22. 이승만이 ‘극우’를 택한 이유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 / 민족주의의 ‘임정’, 민주주의의 ‘인공’
1945. 12. 24. 핀란드의 독립과 명예, 누가 지켰나?
1945. 12. 27. 속이는 이승만, 속는 김구
1945. 12. 28. 임정, ‘반탁’에 말려들기 시작하다
1945. 12. 29. ‘반탁’의 의미를 아는 사람들과 모르는 사람들
1945. 12. 30. 송진우의 암살, 배후는?
1945. 12. 31. 임정을 나무 위에 올려놓은 이승만
● 해방의 시공간 - 일지로 보는 1945년 12월

5부 ‘신탁통치’를 둘러싼 좌우대립의 격화 1946년 1월 3~13일
1946. 1. 3. 임정, “합작은 필요 없다. 나의 길을 가겠다”
1946. 1. 4. 반탁운동, 누가 ‘기획’한 것인가?
1946. 1. 5. 『임꺽정』 저자 홍명희가 화를 낸 까닭
1945. 1. 6. 김계조와 박흥식의 ‘돈벼락’
1946. 1. 7. 건전한 단체를 좌익으로 몰아가는 미군정
1946. 1. 10. 중도파를 왜 좌익으로 몰아붙이나?
1945. 1. 11. 신탁통치 문제, 효과적 대응책이 있었다
1945. 1. 12. 청년단체들은 어떻게 좌우로 갈라졌나?
1946. 1. 13. 반탁운동은 전략적 선택이었다
● 베트남 이야기 (3) 조선의 독립은 베트남보다 쉬운 과제였다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 / 미군정이 격화시킨 남한의 ‘반탁’ 감정

6부 쪼개진 임정, 굳어진 좌우대립 1946년 1월 17~31일
1945. 1. 17. 미소공동위원회의 개막
1946. 1. 18. 대한민국 폭력경찰의 뿌리 장택상
1945. 1. 19. 좌익의 약점이 된 박헌영
1946. 1. 20. 스탈린까지 항의에 나선 「동아일보」 조작기사
1946. 1. 21. 사악함과 어리석음의 경계
1946. 1. 24. 나무 위에 올라가 흔들리는 임정
1946. 1. 26. 미국의 굴욕, 하지의 곤경
1946. 1. 27. 장택상 경찰부장의 면피 두께는?
1946. 1. 28. 무너진 임정, 체면 잃은 김구
1946. 1. 31. 일본 순사보다 더 난폭한 미군 MP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 / 비상국민회의는 통일전선의 포기인가?
● 해방의 시공간 - 일지로 보는 1946년 1월

저자소개

김기협 (지은이)    정보 더보기
서울대학교 사학과에서 동양사 공부를 시작해, 경북대학교에서 중국 고대천문학 연구로 석사학위를, 연세대학교에서 마테오 리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과학사학회에서 활동하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집위원(과학분과)을 지냈다. 1980년대에 계명대학교 사학과에서 강의하고, 1990년대에 중앙일보 문화전문위원을 역임했다. 박사학위 이후 전문연구에서 벗어나 문명사의 흐름을 포괄적으로 파악하는 작업을 진행해왔으며, 한국사, 중국사, 한중관계사 등에 몰두하고 있다. 저서로 『밖에서 본 한국사』(2008),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2010), 『아흔 개의 봄』(2011), 『해방일기』(10권, 2011~2015), 『냉전 이후』(2016), 『오랑캐의 역사』(2022) 등이 있다.
펼치기

책속에서

1946년의 설날은 2월 2일 금요일이었다. 조선금융조합연합회 교무과장 김성칠은 1일 오후 5시에 서울역에서 대구행 기차를 탔다. 대구지역 업무를 보는 길에 영천군의 고향에 가서 성묘도 할 수 있도록 배려한 출장이었던 것 같다.
민족주의자 김성칠은 기차에 오르기 전부터 불편한 마음을 느낀다. (중략)

좌석을 준다기에 미군 전용차량에 탔더니 MP들이 와서 next car로 가라고 몰아세운다. 계집아이 둘만 남기고 기타의 조선사람은 좌석 지정이 있어도 전부 쓰레기통 같은 다음 찻간으로 쫓아내고 그리고 그 찻간에 이미 타고 있는 일반승객들은 또 몹시 붐벼서 설 자리도 없는 다음 찻간으로 내쫓는다. 간혹 그런 줄을 모르고 이 찻간에 타는 사람이 있으면 총부리를 내밀고 left go를 연발하면서 기어이 next car로 떠밀어낸다. 이쪽 차량에는 열 사람도 못다 타서 아주 비다시피 하고 다음 칸은 수백명이 붐비어서 창밖에까지 넘칠 지경이다.
앞에 찻간에 탄 계집아이들이 얄밉기 그지없다. 그러나 next car의 수많은 승객들은 이 찻간에 탄 우리들을 또 그와 같이 얄밉게 생각하리라.
밤이 깊을수록 한기가 스며드는데 유리가 깨어진 차창으로부터 눈보라 섞인 매운바람이 불어치고 그나마 거의 비다시피 한 찻간이므로 사람의 훈기도 없어서 몹시 춥다. 이러한 곡경은 미인(米人)에게 좌석 지정을 받은 당연한 업보리라.


식민지시대 일본인의 횡포에 관한 기록이 수없이 많지만, 이처럼 일상생활 속에서 특권과 차별을 당연시하는 자세는 본 바 없다. 군정 실시 5개월을 채워가는 시점에서 미군의 자세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김성칠은 깨끗하고 따뜻한 차량을 미군과 함께 타고 가는 ‘계집아이’들을 얄미워한다. 그러면서 자리라도 넉넉한 ‘다음 칸’을 타고 가는 자신을 더 뒷칸의 사람들이 얄미워할 것을 알고 있다. 미군의 절대적 특권을 많이 나눠받은 제1그룹을 적게 나눠받은 제2그룹 입장에서 얄미워하지만, 미군의 특권과 아무 관계 없는 제3그룹의 눈길을 의식하는 것이다.
두 명의 ‘계집아이’는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군정청 직원 아니면 유력계층 인사의 따님들이었을 것 같다. 출장길의 금융조합 간부보다 우대받을 공식적 자격은 없었겠지만, 미군의 ‘기사도정신’ 때문에 제1그룹이 되었을 것이다.
1950년대 후반 양장을 갖춰 입은 젊은 여자가 길을 지나가면 아이들이 아무 이유 없이 “양갈보!” 소리치기도 하고 심지어 돌을 던지기도 했다. 돌이켜 생각하면 미군의 특권에 대한 반감이 연약한 표적을 향해 비뚤어져 분출된 것이다. 안전하고 편안한 여행을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이었을 젊은 여성들을 ‘계집아이’라고 적은 것도 분노의 비뚤어진 표현으로 보인다.
1주일 후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서의 봉변은 더했다.

미군 철로계의 증명서를 가졌으므로 미군 전용차에 타려다가 다른 군정청 조선인 관리들과 함께 가슴패기를 몹시 얻어맞았다. 가슴이 사뭇 떨리고 눈에 눈물이 핑 돈다. 개도야지처럼 함부로 얻어맞고 쫓겨나서 화차에 가까스로 설 자리를 비집을 수 있었다.
소년시절에 왜인 경찰에게 무지스레 얻어맞았고 이제 다시 미국 군인에게 이 봉변을 당했다. 약소민족의 설움이 새삼스레 뼈에 사무친다. 그래도 그때는 일정(日政)을 반항하다가 얻어맞았지만 이번엔 미군정에 빌붙어서 좀 편한 자리를 얻으려다가 이 봉변이다.
그들의 만행을 책하기보다도 내 지지리 못났음이 한스럽다. 아무리 몸이 고달프더라도 다른 동포들과 함께 붐비는 중에 고생하는 것이 옳은 것을, 그들의 증명서를 이용하려던 내 태도가 근본적으로 잘못이었다. 떠나기 전에 아내가 그 비루칙칙한 증명설랑은 쓰지 말라던 것을, 그 말이 옳다고는 생각하면서도 몸의 컨디션이 좋지 못함을 양심에의 변명으로 삼고 차중의 안일을 얻고자 한 내 생각이 무엇보다도 잘못이었다.


김성칠은 대구고보 재학중이던 1928년 15세 나이에 독서회와 동맹휴학 사건으로 검거되어 1년간 미결수로 복역하면서 일제의 극심한 폭력을 겪은 일이 있었다. 그러나 “일정을 반항하다가” 얻어맞은 것이지, 그후 16년간 식민지시대를 지내면서 일상생활 속에서 아무 이유 없이 미군처럼 폭력을 휘두르는 꼴은 보지 않고 살아왔다. 미군정의 질서유지 방식은 일본 식민지배자들보다 더 야만스러운 것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민족의식을 가진 지식인이 어떻게 처신할 수 있었을까? 김성칠의 아내 이남덕은 남편보다도 더 선명한 민족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미군의 증명서가 “비루칙칙한” 것이니 아예 쓰지도 말라고 했단다. 그런 증명서가 미국인의 손에서 나온다는 사실 자체가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김성칠이 내려가는 길에 이 증명서를 쓴 것은 “일부러 이 길을 취해 봄”으로써 상황을 살펴보고자 한 것이고, 올라오는 길에는 여러 날 출장 끝에 편안한 여행을 바란 것이었다고 한다.
아내의 관점이 너무 극단적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겪어보고는 아내의 관점에 동의하게 된다. 그가 두 달 후 금융조합을 그만두고 경성대학 사학과 조수(조교)로 들어간 데도 미군대위를 회장으로 모시는 직장에서 일하기 싫은 마음이 작용했을지 모른다. (경성대학 학장도 미군대위였지만, 금융조합에서처럼 가까이서 모실 필요는 없었으니까.)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이 포스팅은 제휴마케팅이 포함된 광고로 커미션을 지급 받습니다.
도서 DB 제공 : 알라딘 서점(www.aladin.co.kr)
최근 본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