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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근현대사 > 해방전후사/한국전쟁
· ISBN : 9788994606224
· 쪽수 : 444쪽
· 출판일 : 2013-09-02
책 소개
목차
머리말 조선을 냉전의 길로 몰아넣은 이승만의 승리
1 반탁운동 재개와 건국 노선 갈등
1947년 1월 2 ~ 30일
1947. 1. 2. 김구와 한독당, 노선이 보이지 않는다
1947. 1. 4. 입법의원을 둘러싼 동상이몽(同床異夢)
1947. 1. 9. 미군 전용 열차 강간 사건, 당한 것은 그들뿐이 아니었다
1947. 1. 11. 하지의 ‘변절’에 분노한 반탁 세력
1947. 1. 13. 모리배와 탐관오리, 빙산의 일각을 본다
1947. 1. 16. 미군정 ‘조선인화’는 어떤 조선인에게로?
1947. 1. 18. “이승만·김구·하지의 동상이몽”
1947. 1. 20. 우익에게 ‘공공의 적’이 된 김규식과 합작위원회
1947. 1. 23. 맛만 보고 도로 빼앗긴 ‘설날’
1947. 1. 27. “뼛속까지 친미파?” 이승만 앞에 부끄러워하라
1947. 1. 30. ‘반역 집단’으로 몰리는 좌우합작위원회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 “분단만은 안 돼!” 백범께서 나서주셨으면
2 김구·이승만의 동상이몽
1947년 2월 1 ~ 29일
1947. 2. 1. 천도교청우당이 “조선노동당의 외곽 단체?”
1947. 2. 3. 김구, 어디까지 애국자였고 어디서부터 정치인이었나?
1947. 2. 8. 행정권을 맡기며 경제권을 안 주는 ‘조선인화(Koreanization)'
1947. 2. 10. 김구가 반탁운동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
1947. 2. 12. “반탁 세력, 너희들 속셈은 밝혀졌다”
1947. 2. 15. 하지의 ‘소환’에 어떤 의미가 있었나?
1947. 2. 17. 존 하지, 다른 데서 필요치 않아 조선에 보내진 인물
1947. 2. 20. ‘고문(拷問)권 수호’를 위한 경찰서장들의 ‘데모’
1947. 2. 22. 장개석 눈에 이승만이 어떻게 보였을까?
1947. 2. 24. 남조선 해방 정국의 축도(縮圖) ‘국대안 파동’
1947. 2. 29. “가짜 김일성” 설은 박헌영이 시작?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 민정장관, 자신 있어요?
3 외세에 따른 분단 건국 vs. 통일 건국
1947년 3월 1 ~ 28일
1947. 3. 1. ‘도둑적으로 완벽’했던 장택상
1947. 3. 2. 남쪽의 선거와 북쪽의 선거, 어떻게 달랐나?
1947. 3. 7. ‘군대’를 ‘군대’라 부르지 못하고......
1947. 3. 9. 김구, “이승만 없는 사이에......”
1947. 3. 12. ‘해방군’의 허실을 보여준 그리스 내전
1947. 3. 14. 전 세계 공산주의 운동을 배신한 스탈린
1947. 3. 16. 마카오에서 온 ‘보물선’
1947. 3. 19. 한반도로 밀려온 트루먼독트린의 쓰나미
1947. 3. 21. 장택상, 어떤 사람이었나?
1947. 3. 21. 절제된 파업, 절제 없는 검거
1947. 3. 23. 여운형이 뉴델리에 갔더라면!
1947. 3. 26. 친일파 문제를 묵살하는 미군정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 외세에 대한 태도로 갈라지는 정치 노선
4 미군정, 친일파에게 친미파의 길을 열어주다
1947년 4월 2 ~ 30일
1947. 4. 2. 중국의 국공내전에 북조선 군대가 참전?
1947. 4. 4. 테러범, 경찰, 동아일보 합작의 블랙코미디
1947. 4. 9. 미군정의 ‘엿장수 군정 재판’
1947. 4. 11.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미소공위 재개!
1947. 4. 16. 미군정의 친일파 ‘재활용’ 정책
1947. 4. 18. 친일파의 나라, 잔짜 책임은 미(美)에 있다
1947. 4. 20. ‘민족주의 진영’의 허와 실
1947. 4. 23. “외교에는 귀신?” 이승만 방미 외교의 실체
1947. 4. 25. 이승만, 임정을 등지다
1947. 4. 27. 서재필이 오면 이승만을 누를 수 있을까?
1947. 4. 30. 서울시 학무국 마틴 고문, 어글리하지 않은 미국인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 ‘사악함’보다 ‘우둔함’이 더 문제
저자소개
책속에서
1945년 말 반탁운동의 초점은 ‘임정 봉대’에 있었다. 모든 우익이 이에 참여했고 경찰과 군정청 직원들도 집단적으로 이에 동조했다. 김구 등 임정 세력은 1년이 지나 반탁운동을 다시 일으키면서 ‘임정 봉대’를 또 그 초점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그런데 사정은 1년 전과 크게 달랐다. 임정 자체가 비주류의 이탈로 위신이 손상되었을 뿐 아니라 반탁 세력 안에서도 임정 봉대 아닌 다른 목표가 떠올라 있었다. 한민당·이승만 세력의 단독정부 추진이었다. 임정 봉대는 미·소 점령군의 권위를 아울러 부정하며 남북을 아울러 대표하는 ‘민족정부’를 표방한 것인데, 단독정부 추진은 소련을 배척하며 미국에 의지하자는 것이었다.
서중석은 반탁운동의 구호 자체보다 실질적 의미를 분석할 필요를 지적한다. 민족 자주 국가의 ‘즉시 독립’ 요구가 그 구호인데, 그를 위한 구체적 방법과 수단이 제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구호와 별개의 정치적 의도가 그 뒤에 깔려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서로 다른 정치적 의도를 가진 세력들이 하나의 구호로 뭉쳐져 있었기 때문에 반탁운동은 동상이몽의 침대였을 수 있다고 한다(『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527쪽).
1945년 말 시점은 ‘단독정부’란 말을 아무도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할 때였다. 식민지 시대 기득권을 지키고 싶거나 친일파 처단을 면하고 싶은 세력이 3상회의 결정 수행을 어렵게 만드는 반탁운동에 열심히 참여하면서 내놓을 수 있는 명분이 ‘임정 봉대’뿐이었다. 그런데 1946년 5월 제1차 미소공위 정회 후 임정 봉대보다 훨씬 더 그들 입맛에 맞는 방안을 이승만이 제시했다. ‘단독정부’였다.
- 1947. 3. 9. 일기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