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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근현대사 > 해방전후사/한국전쟁
· ISBN : 9788994606323
· 쪽수 : 520쪽
· 출판일 : 2014-12-17
책 소개
목차
머리말 김구의 각성은 때를 놓친 것이었던가?
1. 유엔에서 온 ‘칙사’들
1948년 1월 2~30일
1948. 1. 2. 경찰국가의 새해가 밝았다
1948. 1. 7. 유엔에서 온 ‘칙사’들
1948. 1. 9. 너무 좋아서 입을 다물지 못하는 이승만
1948. 1. 11. 전쟁과 독재는 분단건국의 당연한 결과
1948. 1. 14. 시리아대표 닥터 자비의 활약
1948. 1. 16. 김구가 과연 장덕수 암살의 배후?
1948. 1. 18. ‘족청(族靑)’은 ‘제3의 길’이었던가?
1948. 1. 21. 소련의 협력 거부에 직면한 유엔위원단
1948. 1. 23. 경성전기에서 욕보는 사람들, 누구였나?
1948. 1. 28. 김구, 남북협상의 길로 돌아서다
1948. 1. 30. “모든 것을 바칩니다!” 낙랑클럽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 “사실은 새해를 낙관하지 못하시는 거죠?”
해방의 시공간-일지로 보는 1948년 1월
2. 진면목을 찾은 김구
1948년 2월 1~27일
1948. 2. 1. 당대 대표적 사상가들의 조선 현실 인식
1948. 2. 4. 국익에 충실한 조선위원단 위원들
1948. 2. 8. 남북협상의 길에서 벗어난 남로당 노선
1948. 2. 11. ‘읍고(泣告)’를 통해 진면목을 찾은 김구
1948. 2. 13. 한민당 “전 조선 총선거를 이남에서 치르자!”
1948. 2. 15. 뉴욕으로 건너간 조선의 운명
1948. 2. 18. 건국에 앞서간 이북, 분단건국을 향해서?
1948. 2. 20. 메논 의장, 보고연설까지는 좋았는데······
1948. 2. 22.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의 ‘막장 드라마’
1948. 2. 25. 소련도 미국의 ‘조선 결의안’ 통과를 도와줬다!
1948. 2. 27. 남북협상······ 여운형이 있었다면!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 “김구 선생, 또 바꾸진 않겠죠?”
해방의 시공간-일지로 보는 1948년 2월
3. 남북협상의 동상이몽
1943년 3월 1~29일
1948. 3. 1. 정면충돌로 치닫는 김구와 이승만
1948. 3. 6. 중간파의 태생적 갈등: 원칙론과 현실론
1948. 3. 8. 장덕수의 유령에게 시달리는 김구
1948. 3. 11. 단독선거안에 대한 캐나다대표의 맹렬한 반대
1948. 3. 13. “가능지역 총선거” 드디어 결정되다!
1948. 3. 15. 김구와 김석황, 누가 거짓말을 한 것인가?
1948. 3. 18. 검찰이 경찰의 횡포에 항의하던 시절
1948. 3. 20. “어떤 테러든지 보호해주겠다!” 우리 쪽 테러라면
1948. 3. 22. 핵무기 아닌 ‘돈 폭탄’을 걱정하던 이남 극우세력
1948. 3. 25. 북쪽에서 온 회답, 왜 그리 늦었나?
1948. 3. 27. 남북협상을 둘러싼 동상이몽
1948. 3. 29. 남북회담 성사를 위한 민족주의자들의 양보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 장택상의 ‘빨대질’이야 개 짓는 소리로······
해방의 시공간-일지로 보는 1948년 3월
4. 목소리를 빼앗긴 민족주의
1948년 4월 3~29일
1948. 4. 3. 4·3항쟁, ‘좌익 탄압’ 아닌 ‘제주인 탄압’의 결과
1948. 4. 5. 인권을 거부당한 제주도 ‘인디언’
1948. 4. 8. 도청소재지에 한 번씩 들르는 ‘선거 감시’
1948. 4. 10. 한국여론협회: “자발적 선거인등록은 7퍼센트 미만!”
1948. 4. 12. 중간파의 선거 참여를 ‘기회주의’라니, 뭐 묻은 개가······
1948. 4. 15. 김규식, “평양에 가기는 가야겠지만······”
1948. 4. 17. 남조선을 무법천지로 만든 조병옥의 ‘향보단’
1948. 4. 19.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 김구
1948. 4. 22. 되돌아온 콤비, 김구 주석과 김규식 부주석
1948. 4. 24. 홍명희는 왜 ‘연석회의’에 들러리로 나섰을까?
1948. 4. 26. 민족갈등과 좌우대립이 겹쳐진 ‘한신(阪神) 교육투쟁’
1948. 4. 29. 목소리마저 빼앗긴 민족주의자들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 “미국의 잘못입니까, 조선인의 잘못입니까?”
해방의 시공간-일지로 보는 1948년 4월
저자소개
책속에서
‘낙랑클럽’이란 이름부터 참 고약하다. 우리 역사 초창기 이민족의 침략과 지배를 상징하는 이름이 ‘낙랑’이다. 해방 조선에서 외국인 접대를 목적으로 모인 엘리트 여성 집단이 하필 ‘낙랑’이란 이름을 쓰다니, 2,000년 전 토착문화보다 우월한 중국 문명을 이민족 지배 아래 누리던 ‘식민지 낙랑’이 이 집단의 소망이었다면 더 할 말 없다.
더 고약한 것은 ‘낙랑’과 ‘여성’이 합쳐질 때 바로 떠오르는 것은 ‘낙랑공주’의 이미지다. 이웃나라 왕자와 사랑에 빠져서 침략의 길을 열어주는 데 목숨 바친 ‘미친 년’ 아닌가. 정말 ‘문학적·문화적 교류’가 이뤄져 낙랑공주 설화를 알게 된 외국인이라면 낙랑클럽 멤버의 환대를 받으면서 상대를 어떤 눈으로 보았겠는가.
낙랑클럽과 모윤숙의 이름이 유엔조선위원회에 대한 로비활동으로 회자되는 것은 ‘매춘’의 선정성 때문이다. 나는 모윤숙의 성적 매력이 한국현대사의 전개방향에 결정적 작용을 했다고 믿을 수 없다. 중국고대사에는 말회니 달기니 포사니 하여 성적 매력으로 나라를 멸망시킨 여성의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있어서 ‘경국지색(傾國之色)’이란 말까지 만들어지기에 이르렀는데, 대중적 설화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 1948. 1. 30. 일기 중에서
소련의 역할보다는 이북 지도부의 내부문제를 생각할 여지가 많다. 우선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북로당 측에서 이남의 남북협상파에 대해 주도권을 잡고 싶어했으리라는 점을 생각할 수 있다. 김구와 김규식이 2월에 보낸 편지는 4김 ‘지도자회담’을 제안한 것이었는데, 3월 25일 평양방송이 전한 것은 ‘연석회의’ 초청이었다.
실제로 4월에 김구와 김규식이 평양에 갔을 때 김구는 연석회의에 한 차례 나가 인사만 했고 김규식은 얼굴도 비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지도자회담에 집착했던 것이다. 그런대 ‘지도자회담’이라 할 때 북로당과 인민위원회를 대표하고 영도하고 있던 김일성과 김두봉에 비해 김구와 김규식의 이남 ‘지도자’로서의 무게에는 차이가 있었다. 이북의 총체적 지도자들이 이남 일부 세력의 지도자들과 대등하게 참여하는 ‘지도자회담’이 남북협상의 보조적 역할은 몰라도 중심적 역할을 맡을 수는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남북협상에 임하는 김구와 김규식의 선의를 아무리 존중한다 해도 4인 회담에 집착한 자세에는 비판할 점이 있다. 이북 지도부는 선거 등의 절차를 통해 인민의 지지를 확보해놓은 집단인데, ‘영수’들끼리의 합의만을 통해 남북협상을 진행한다는 데는 명분과 실제 양쪽으로 한계가 있었다. 협상의 주 무대로 연석회의를 이북 측에서 준비한 것은 타당성 있는 조치였다. - 1948. 3. 25. 일기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