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일본사 > 일본근현대사
· ISBN : 9788994606972
· 쪽수 : 304쪽
· 출판일 : 2025-06-13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_일본의 변곡점 3․11
1부 탈냉전과 걸프전 이후
1장 1990년대 일본의 혼돈
1 ‘돈주고 뺨 맞은’ 걸프전
2 거품이 꺼진 뒤의 혼란
3 ‘위안부’에 발가벗겨지다
2장 실패로 끝난 ‘아시아 회귀’
1 ‘유관순 감방’ 찾은 하토야마
2 ‘민주당의 무덤’이 된 오키나와
3 짧았던 한․일 관계의 봄날
3장 브레이크가 사라진 일본
1 천황제를 넘어서지 못한 좌파
2 사회당은 왜 몰락했나
2부 빗장 풀린 우익들
4장 그들은 어떻게 스스로 ‘피해자’가 되었나
1 “일본인 납치했다”, 김정일이 던진 폭탄
2 해상보안청과 중국 어선의 충돌
3 샌프란시스코에서 센카쿠까지, 영토 분쟁의 정치학
5장 역사수정주의와 넷우익, 그리고 혐한론
1 고바야시 요시노리의 ‘고마니즘’
2 고노 담화와 ‘새역모’
3 넷우익과 혐한론
6장 일본 정계를 뒤흔든 우익들
1 간사이의 좌절을 먹고 자란 하시모토
2 우익의 간판, ‘태양족’ 이시하라
3 ‘신보수주의 총아’ 아베
3부 3․11 이후의 일본
7장 3․11은 왜 일본을 바꾸지 못했나
1 민주당을 침몰시킨 대지진
2 이루지 못한 ‘수국 혁명’
3 “쇼와의 영광을 되살리자”
8장 ‘네오콘 아베’ 시대
1 관료정치는 끝났다
2 평화헌법 내팽개친 일본
3 “더 이상 사과는 없다”
9장 전략국가를 꿈꾸는 일본
1 ‘인도-태평양’ 묶는 미국, 그 뒤엔 일본
2 ‘국체’가 된 미・일 동맹’
10장 동북아시아는 어디로 향하는가
1 안보국가로 질주하는 일본
2 일본의 ‘반도체 굴기’와 애치슨 라인
에필로그
찾아보기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원자로가 ‘멜트다운 melt down’되면서 대량 유출된 방사성 물질로 인한 오염과 피폭 문제는 취재 대상이자 ‘실존’의 문제였다. 동일본 대지진 사흘 뒤 렌터카로 도쿄를 출발해 쓰나미 피해 지역인 미야기현으로 향했다. 본래는 미야기현의 북쪽인 이와테현을 목표로 했고, 내비게이션상으로는 6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됐으나 북쪽으로 가는 도로 곳곳이 지진으로 파여 미야기현 센다이까지 가는 데만 20시간이 걸렸다. 이미 이틀 전 후쿠시마 제1원전 1호기가 폭발하며 방사성 물질의 유출이 본격화되던 시점이었으나 유독 날씨가 더워 창문을 열고 운전을 했고, 도중에 날이 저물어 후쿠시마시의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어야 했다. 출장 목적이 쓰나미 피해의 참상을 취재하는 것이었고, 렌터카를 직접 몰고 가는 처지여서 원전사고 추이에 집중하지 못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관방장관)의 “방사능 유출로 즉시 건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말에 별 의문을 갖지 않을 정도로 원전과 방사능에 대한 지식이 빈약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당시만 해도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얼마나 큰 재앙인지 가늠하지 못했던 것이다.
4일간 쓰나미 현장 취재를 하는 동안 원전에서 추가 폭발이 일어났고, 유출된 방사성 물질이 바람을 타고 도쿄의 정수장까지 오염시키면서 원전과 방사능의 공포는 현실화됐다. 생수를 사 먹고 장을 볼 때도 원산지를 꼼꼼하게 챙기는 것이 습관이 됐다. 단신부임이어서 마음의 부담은 동료 특파원들에 비해 덜한 편이었지만 ‘신경과민’ 상태는 지속됐다. 특집 기사를 쓰기 위해 출장 간 후쿠시마 현지에서 몸에 지니고 간 러시아제 방사선량계가 삑삑거리며 경고음을 낼 때마다 가슴이 철렁거렸다.
3․11은 일본이라는 국가의 존재 방식을 근본부터 성찰한 끝에 개혁의 문을 여는 ‘결정적 국면’이 될 것으로 기대됐다. 3․11은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패전을 대신할 새로운 시대 구획선이 될 터였다. 3․11 직후 일본 신문에는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를 줄인 ‘전후’ 대신 ‘재후災後’ 즉, 동일본 대지진 이후라는 조어가 등장했다. 원전사고 이후 대국주의에서 벗어나 ‘작고 안전한 나라’가 일본의 새로운 미래로 제시됐다. 언론의 원전 보도에 대한 책임을 묻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태평양전쟁 말기 불리한 전황은 감추고 보는 대본영 발표를 검증 없이 보도하던 것과 ‘원전은 안전하다’는 전력회사의 선전을 검증 없이 받아쓰기한 행태가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2년이 채 되기도 전에 일본 사회는 의미 있는 변화를 이루지 못한 채 ‘일상’으로 되돌아갔고, 역사수정주의와 내셔널리즘이 발호하는 우경화로 기울었다. 패전에 버금가는 충격에도 불구하고 그 원인을 제거하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대신 급격한 ‘퇴행’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 왜 3․11은 퇴행의 변곡점이 됐을까. 이 책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시도다.
권혁태 전 성공회대 교수는 고도 경제성장에 의해 소비사회가 출현하면서 파편화된 개인들이 ‘자기 찾기’를 통해 안식처를 찾아 헤매던 끝에 결국 ‘국가’에 자신을 맡겨 버리는 현상이 1990년대에 출현했다고 본다.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 서브컬처에 1990년대 이후 정보화로 생성된 새로 운 관계망이 합쳐지면서 파편화되고 부유하는 개인들이 삶의 안식처로 일본이라는 공동체에 몸을 맡기는 현상이 새로운 내셔널리즘의 기반이 됐다 는 것이다. 이들에게 평화, 민주주의, 고도성장으로 상징되는 전후란 자 신의 삶을 규정지은 거대 서사이면서도 자신들의 ‘끝없는 일상’과는 무관 한 ‘딴 세상’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이런 세상에 사는 아카기나 아마미야에게 민주주의, 시민운동, 인권은 학교에서나 접할 수 있는 질감 없는 언어였고, 그들은 이런 언어들을 구사하며 ‘멋진 척하는’ 좌파들에게 적의를 품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