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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신학일반
· ISBN : 9788994752211
· 쪽수 : 538쪽
· 출판일 : 2012-07-15
책 소개
목차
한국어판 서문
영어판 서문
서론
1. 저항의 외침과 그 운명
2. 자유교회들: 미래의 교회들?
3. 교회일치적 연구
제1부
제Ⅰ장 라칭거: 교제와 전체
1. 신앙, 성례전, 교제
2. 성만찬과 교제
3. 하나님의 말씀과 교제
4. 직임과 교제
5. 신자들의 교제
6. 삼위일체와 교회적 교제
제Ⅱ장 지지울라스: 성도의 교제, 하나와 다수
1. 인격의 존재론
2. 교회의 인격성
3. 교회적 교제
4. 교제의 구조
제2부
제Ⅲ장 교회의 교회성
1. 교회의 정체성과 동일시
2. 우리가 교회다!
3. 교회와 교회들
제Ⅳ장 신앙, 인격, 교회
1. 신앙과 교회
2. 구원의 교회적 성격
3. 교회적 공동체에서의 인격성
제Ⅴ장 삼위일체와 교회
1. 상응점과 그 한계점들
2. 삼위일체, 보편 교회, 지역 교회
3. 삼위일체적 인격들과 교회
4. 삼위일체적 관계들과 교회적 관계들의 구조
제Ⅵ장 교회의 구조들
1. 은사와 참여
2. 삼위일체와 교회의 제도들
3. 서임
제Ⅶ장 교회의 전일성
1. 전일성에 대한 질문
2. 전일성과 새 창조
3. 지역 교회의 전일성
4. 인격의 전일성
제Ⅷ장 통일성의 삼위일체적 본성에 근거한 수위권
1. 교황의 권고
2. 접속사의 운명
3. 삼위일체적 통일성
4. 교회적 통일성과 공동체적 수위권
참고 문헌
색인
리뷰
책속에서
“우리가 교회다!”라는 저항의 외침은 누군가가 서로 함께 모여서 교회가 되고자 한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많은 교회에서?특히 비서구권 세계의 교회에서?이러한 욕구는 상당히 건실하다. 나는 이러한 교회들에게 그들이 공동체로서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하고 더 잘 살아갈 수 있게끔 하는 교회론적 범주들을 제공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현대성이라는 벌레가 교회적 공동체를 이루고자 하는 의지를 뿌리부터 서서히 갉아먹고 있다. 그래서 교회적 삶을 살아내는 신앙은 개인주의적 삶을 사는 신앙으로 대체되고 있다. 그 자신 안에 종교성의 허다한 형태들의 요소들을 포괄하고 지속적으로 변화할 뿐인 일종의 흐트러진 신앙으로만 대체되고 있는 것이다. 공동체를 향한 열망이 감소하지 않은 사람들은 먼저 “우리가 교회다!”라고 말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로마노 과르디니가 이야기한 잘 알려진 표현같이, 교회는 먼저 자체의 영혼들 속에서 그 잠을 떨쳐내고 깨어나야 한다. 그러므로 공동체로서 교회에 대해 탐구하는 교회론적 토론은 그리스도인 신앙의 공동체적 형태를 오늘날 진정성 있게 살아내고 또한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 올바른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선교학적 토론이기도 하다.
_“서론” 중에서
이 연구는 다름 아니라 “우리가 교회다”라는 자유교회의 저항의 외침을 삼위일체적 틀 안에 자리 잡게 해서 해명하는 것이다. 그 일은 그것을 교회론적 프로그램의 위치에까지 높이고, 가톨릭과 동방 정교회의 교회론들과 대화하는 가운데 진행될 것이다. 또한 나는 이러한 시도가 “우리가 인민이다!”라는 정치적 저항이 사회 철학에 제기하는 문제들을 명료하게 하는 데 미약하게나마 그리고 간접적으로나마 기여하는 신학적 공헌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교회의 재발견에 기여하는 것이 나의 일차적인 목표이다. 나는 교회론적 개인주의의 전형적인 개신교적 형태와, 반대로 교회론적 전체주의의 가톨릭적이고 동방 정교회적인 전통적 형태들이 교회론적 대안들 중 유일하게 적합한 교회론적 대안이 아님을 밝히고자 한다. 더 나아가서 나는 삼위일체에 대한 적합한 이해가 결국에는 우리에게 교회 안의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보다 분명한 의미를 드러내면서도 전망 있는 모델을 제공한다는 점을 밝히고자 한다. 내 목표는 교회일치적 교회론을 제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전통들을 끌어 모으지만 그 어디에도 뿌리를 두고 있지 않은 구성물이라는 점에서가 아니라, 뚜렷한 개신교적 교회론의 가락에 속하는 모든 거대한 주제들이 가톨릭과 동방 정교회의 목소리들에 의해서 더 풍요롭게 된다는 의미에서 교회일치적 교회론이다.
_“서론” 중에서
구원을 위한 외적 보조 수단으로 교회를 이해하는 것은 구원론적으로나 교회론적으로 부적절하다. 교회는 단순히 경건한 개인들의 덕성을 함양시켜주는 훈련의 주체나 장이 아니다. 에밀 브루너(Emil Brunner)가 정당하게 강조한 바와 같이, 교회는 “특정한 신앙의 외적 지지대(externum subsidium fidei)가 아니라, 사태 그 자체이다. 서로에게 연합된 존재는 그 자체로 목적인 동시에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구원과 교회는 분리될 수 없다. 이 점에서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extra ecclesiam nulla salus)는 오래된 정식이 존재하는 것이다. 평판을 낮추며 배타적으로 작용했던 이해에서 벗어나, 이 정식은 실제로 구원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으로 공동체적인 특성을 표현하고 있다. 좀더 정확하게 이해하 자면?또한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가 국가 사회주의 정권기의 교회와 국가 사이의 투쟁에서 이 개념을 가다듬고 정식화한 것처럼?이 정식은 “구원이 교회 없이 생각될 수도 없으며, 또 교회가 구원 없이는 생각될 수 없다”고 진술한다. 신앙을 경험한다는 것은 교회적 존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삼위 하나님과의 교제 속으로 전체 하나님의 백성을 모아 종말론적 통합의 역사 속에서 이러한 경험을 선취하고자 한다면, 교회 이외의 다른 방식으로는 이를 실현할 수 없다.
_“제Ⅳ장 신앙, 인격, 교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