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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여행 > 스페인여행 > 스페인여행 에세이
· ISBN : 9788996125273
· 쪽수 : 168쪽
· 출판일 : 2009-09-10
책 소개
목차
1. 해물 빠에야: 에세이 하나. 내게 요리란...
2. 알본가디스(완자요리): 에세이 둘. 미노네 가족
3. 알메하스(조개요리): 에세이 셋. 제3차 대전
4. 가스파쵸(토마토 수프): 에세이 넷. 30cm
5. 상그리아: 에세이 다섯. 몸에 관한 추억
6. 요구르트 샐러드: 에세이 여섯. 사라의 비밀
7. 또띠야(감자 오믈렛): 에세이 일곱. 어떤 하루
8. 단호박 수프: 에세이 여덟. 왜 고향을 떠나야 하지?
9. 홍합 샐러드: 에세이 아홉. 약속
10. 해물 스파게티; 에세이 열. 투우
11. 바나나와 요구르트 디저트: 에세이 열하나. 밀루 이야기
12. 레이나 소피아: 에세이 열둘.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셰리주
13. 버터 소스와 생선살 찜: 도루 씨, 바르바라 씨, 안녕!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그들이 입양한 네 살박이 쌍둥이 민아와 영아에게는 다운증후군 장애가 있었다. 이번에는 베르나르도가 눈물을 흘렸다. 나는 베르나르도가 입양할 아이를 ‘고를 수 없다’는 입양기관의 규칙상, 장애가 심한 외국 아이들을 자식으로 삼게 된 자신의 처지가 실망스럽고 난감해서 눈물을 흘린다고 생각했다. 입양된 고아들과 같은 국적인 한국 사람으로서 나는 마치 하자 있는 물건을 판 가게주인이라도 된 듯, 비참하고 미안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흘러내린 눈물에 콧수염이 흠뻑 젖은 채 베르나르는 나를 보고 말했다.
“내가 왜 우는지 알아?”
“아이들 상태가 실망스러워서 그러는 거 아냐?”
“이 바보야. 그런 게 아냐. 이 어린 것들이 이런 장애를 앓으면서 그동안 고아로서 받았을 고통을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파서 그래. 게다가 친부모도 아닌, 우리 같은 이방인이 얘들을 맡게 되었으니,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하잖아. 우리 부부에게 이 아이들은 축복이야.”
미노 부부가 민아와 영아를 입양하고 나서 나는 그들에게 정기적으로 한국어를 가르쳤다. 아이들이 모국어를 잊지 않게 하겠다는 이 기특한 좌파 부부의 요청으로 나는 뜻하지 않게 미노 가정의 임시 한국어 교사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세상에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고 믿는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싶은 생각도 없으니, 무명으로 사라져도 상관없다. 살아 있는 동안, 더 많은 것을 사랑하고, 즐기고, 기쁨을 더 많이 나누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스페인 여행자에게 투우 관람을 권하지 않는다. 투우장에서 찍은 한 장의 증명사진이 꼭 필요하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무대에는 세 사람만 남았다.
숨 가쁜 열기로 뜨거웠던 파티의 끝에서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늙은 부부의 가볍지 않은 포옹.
그들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다가가 그들을 껴안았다.
‘아… 따듯하다.’
파티의 명분따위는 잊은 지 오래였다.
이 순간 우리 그냥 따듯하기에.
며칠 후면 나는 다시 이 다정한 공간을 떠나야 하지만,
어느 늦은 밤, 혹은 어느 새벽, 무심히 불어오는 바람결에
나는 이들을 기억하리라.
그 시간은 가고 없지만,
추억은 영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