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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94228457
· 쪽수 : 232쪽
책 소개
목차
책머리에 | 죽을 목숨도 살리는 음식의 추억 _임왕준
1. 남루한 음식의 추억 | 모힝가 _장윤선
2. 마음을 데워 주는 어머니의 맛 | 니쿠쟈가 _류화선
3. 꽃보다 두부 | 유도후 _성혜영
4. 일상이거나, 예술이거나 | 차노유 _성혜영
5. 소유하지 않는 사람들의 식량 | 아이락, 아룰, 보르츠 _김정경
6. 소금 간의 철학 | 몽골 음식 _신종한
7. 두 개의 달 | 태국식 볶음밤, 카오팟꿍 _김정묘
8. 개구리, 나의 오랜 미제 | 레몬그라스 버드칠리 개구리 볶음 _구자명
9. 커피도 좋지만, 차이도 나쁘지 않아 | 차이 _윤예영
10. 미각의 추억 | 차쿼이토우 _이화실
11. 대륙을 달리는 뜨거운 바람 | 훠궈 _최예선
12, 가난한 시절의 호사 | 콜레노 _김성래
13. 눈 내린 어느 크리스마스의 추억 | 슈바인스학세 _남기철
14. 파묵칼레에서 | 케밥, 튀르크 카베시, 체리 향 물담배 _배정희
15. 마이클, 미안해 | 타코 _김문영
16. 내 안의 나를 만나는 기쁨 | 치즈케이크 _정인명
17. 서랍 속에서 잠자는 기억 | 뱅쇼 _정세영
18. 조강지처 같은 음식 | 포토푸 _임태운
19. 이것은 행복인가 슬픔인가 | 파테 _임왕준
20. 음식 이데올로기 | 쿠스쿠스 _이나무
21. 앙드레 셰니에의 운명 | 쾨프테 _윤신숙
저자소개
책속에서
먼지로 범벅이 된 얼굴에 콧물을 줄줄 흘리는 아기가 눈에 밟혀서 여인이 애원하는 원 달러를, 아니 우리가 세운 원칙을 지키기가 여간 괴롭지 않다. 남편도 나도 마음이 몹시 심란하다. 이쯤 되면, 원칙이고 나발이고 여인에게 그토록 절실한 원 달러, 줘도 되지 않을까.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발길은 여전히 숙소를 향해 달음질치고 있었다. 원 달러, 원 달러, 끈질긴 구걸과 함께 땟국물이 흐르는 작은 손이 윗도리를 잡고 늘어진다. 줄까 말까, 줄까 말까 망설이면서도 여인과의 거리는 점점 벌어진다. 서둘러 도망치듯 걷는 우리 뒤통수에 여인의 앙칼진 외침이 날아든다.
“베이비 헝그리!”
_「남루한 음식의 추억-모힝가」(장윤선) 중에서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때까지 날 감싸고 있던 겹겹의 갑옷들은 여행 배낭에 미처 다 담아갈 수 없었으니. 타지마할에 해가 뜨길 기다리며, 또 인도의 기차 침대칸 어둠 속에서 이렇게 자신을 다독였다. 괜찮아. 타지마할을 봤으니 이걸로 됐어. 커피에 코가 꿰여 가끔 제정신이 아니더라도 괜찮아, 그게 나니까. 커피가 좋지만, 차이도 나쁘지 않아. 내가 싸구려 커피에 환장
하는 것처럼 여기 어딘가엔 싸구려 밀크티에 환장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거야….
우리가 전쟁 같은 일상을 버티기 위해 선 채로 들이켜는 싸구려 커피의 자리를 그곳에서는 차이가 대신하고 있었다. 그렇게 차이 한 잔을 통해 여행이 일상으로부터의 단절이 아니라, 또 다른 일상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이라는 것을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진짜 여행이 시작되었다.
_ 「커피도 좋지만, 차이도 나쁘지 않아-차이」(윤예영) 중에서
호르호크를 사랑할 수 없었지만, 어느덧 알싸한 취기가 포만감에 앞서 올라온다. 억지 춘향 격으로 양고기를 먹는 내 심정을 혹시라도 몽골인들이 알아챌까 미안해서 얼렁뚱땅 노래 시합을 벌여 놓고는 게르를 나왔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도시의 야광에 찌든 내 눈 가득히 하늘이 차오른다. 하늘은 온통 별들의 축제다. 땅은 어둡고 오히려 하늘은 밝다. 그것이 당연한 이치임에도 나는 그것이 낯설고 그 낯섦은 이내 감동으로 차오른다. 초원에 누워 다시 하늘을 보자 별들이 우르르 쏟아진다.
9백 년 전 유럽을 공략하던 몽골인들도 저 하늘을 보며 초원을 지났을 것이다. 말 등에 올라타고 대륙을 질주하던 그들의 힘은 호르호크의 힘이었을 터.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면서 지극히 단순한 형태와 방식으로 삶을 영위하던 그들이었기에 유라시아 대륙 어디에서든 그들은 몽골의 깃발을 휘날릴 수 있었을 것이다. 복잡할수록, 꾸밀수록 형식은 강해지고 내용은 힘을 잃는다. 그들은 단순함이 내포한 강한 힘을 믿었다. 바람처럼 초원에서 일어나 바람처럼 대륙을 달리고 그들은 다시 돌아와 초원에서 산다.
_ 「소금 간의 철학-몽골 음식」 (신종한) 중에서